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리뷰
오시마 나기사의 1983년 영화로 장편소설 <씨앗과 피종자>를 원작으로 하였으며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정작이다. 소재의 논란으로 국내에서의 개봉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2024년 11월 20일에 극장에서 개봉한다. 작가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중 자바섬에서의 포로 생활 이야기를 담았으며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 유명한 영화이다.
1942년 인도네시아 자바섬에는 일본군이 관리하는 연합군 포로수용소가 있다. 영국군과 네덜란드군 포로로 가득한 이곳은 대위 요노이가 관리한다. 그러던 중 게릴라전 중 항복한 영국군 소령 잭 셀리어스가 수용소에 들어오게 된다. 대령 요노이는 그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잭은 반항적인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한편, 유일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영국군 중령 존 로렌스는 영국군과 일본군, 양측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 쉽지 않았다. 수용소와 포로들의 대립이 고조화 되는 가운데,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전쟁의 참혹함은 전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인명 피해와 문명 파괴는 물론 인간의 존엄성까지도 파괴되기 때문에 더욱 참혹하다. 순식간에 입장이 달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 비극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줬다.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전시 상황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인간의 모습을 조명한다. 전쟁 속에서 인간을 짓밟는 건 인간이지만 인간을 일으키는 것 또한 인간임을 보여주는 전쟁의 모순 속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수없이 쏟아지는 기억만큼이나 길게 나열된 역사를 온전히 기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후에는 올바른 역사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독일과 일본이 전쟁 범죄에 대한 역사 인식과 전후 처리에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독일 전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나치의 반인륜 범죄가 단죄된 반면, 일본의 도쿄 전범 재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또한, 독일은 유럽 지역 내에서의 교역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끊임없는 사죄와 보상 노력이 필요했으나 일본은 미국의 묵인 하에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보다는 강대국인 미국이나 서유럽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했다. 일본과 독일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의 불편한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에 온전히 녹아들 수 없게 만들지만 이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는 명확하다. 이 영화에서는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전쟁이라는 전제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당시 일본 영화가 수없이 시도했던 전쟁 미화는 그릇된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모두가 같은 명령을 수행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험해 본 적 없는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 이상을 뛰어넘는 건 오로지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차라리 피어나지 않길 바라는 그들 사이의 온기는 어정쩡하게 피어나고 만다. 단순한 답처럼 내려지지 않는 인간 군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그들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엔 좀 부족했던 연출이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지루해서 2시간을 온전히 집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원작 소설 작가의 허언증 의혹과 14세 소녀와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과 출산 후 관계를 부정한 사실이 밝혀져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