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침범> 리뷰
김여정, 이정찬 감독의 <침범>은 2025년 3월 12일 개봉 예정이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부문-파노라마 섹션에 공식초청되었다. 곽선영, 권유리, 이설, 기소유, 이 네 배우들의 미스터리 스릴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수영 강사 영은은 딸 소현과 단둘이 살아간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영은은 소현의 문제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소현의 싸이코패스 성향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상황이 여러번 벌어지면서 학교를 몇 번 옮기기도 했지만 해결되지 않는다. 처음엔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엄마인 영은 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다. 소현에 대한 두려움은 점차 커져가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던 두 모녀에게 기어코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20년이 지난 현재, 고독사 현장 처리 업무를 맡고 있는 민과 새롭게 들어온 신입 혜영이 만나게 된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일상을 조금씩 비집고 들어오는 해영에게 민은 묘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며 갈등을 겪는다.
극 중 소현은 선천적으로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지만 학습을 통해 본능을 감추고 학습된 감정을 표현해낸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으로도 본연의 모습을 숨기는 건 쉽지 않았다. 거짓을 웃음으로 감췄지만 본능이 이끄는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다. 애초에 죄책감도 없었던 그녀의 행동은 방향을 잃은 채, 계속해서 이어진다. 하지만 소현의 행동보다 더 무서운 건 엄마 영은의 삐뚤어진 모성애였다. 소현을 통제하면서도 사랑으로 덮어주려는 시도가 상황의 해결이나 감정의 보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맹목적인 사랑이 '독'이 되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선천적인 폭력성과 사랑이 사람을 병들게 만드는 이 상황이 합쳐져 재앙을 불러왔다. 그렇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 폭력의 상흔을 견디는 건 누구의 몫이 될까.
하지만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러한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지만 인간이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사랑이 어떻게 이성을 흐리고, 때로는 그 사랑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게 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소현과 영은의 관계는 우리가 사랑의 본질과 그에 따른 책임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중요한 화두가 된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20년 사이의 공백을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후에 나오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갈등과 상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극 중 소현은 태어날 때부터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주변의 반응을 통해 감정을 모방하는 법을 익혔다. 하지만 배운 감정을 연기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본성을 완전히 감출 수 없었다. 억지로 지어낸 미소 뒤에 숨겨진 본능적인 행동들은 점차 통제 불가능한 형태로 표출된다. 그녀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채, 멈출 수 없는 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이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는 그녀의 어머니, 영은이다. 영은은 딸을 억제하려 하면서도 동시에 보호하려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며, 그 집착 어린 사랑은 결국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영화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선천적인 폭력성과 맹목적인 사랑이 뒤섞이며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결국 그 상처를 감당하는 건 누구의 몫일까.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지옥을 안고 살아간다. 상처에 부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형태로 상황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설령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모성에 의해 상처받으면서도 사랑을 갈구하고, 상처에 부유하며 거듭된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자세한 사정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들이 오직 알 수 있는 건 미지의 인물이 '침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침범으로 인해 진정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다. 끝내 어디에서도 답을 찾지 못한 채, 또다시 '침범'의 기회를 노릴지도 모른다. '침범'은 외부의 위협에 대한 의미 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발생하는 파괴적 감정과 관계의 틈을 의미하기도 한다.
때론 드러나지 않은 말들이 큰 힘을 가지곤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큰 관심을 가지는 건 드러난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포용력과 친화력 사이를 파고드는 폭력은 무척이나 날카롭다. 불운한 사고라고 치부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종적을 감춘다. 이 교묘한 술수는 점차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긋난 선의라고도 볼 수 없는 흔적들이 조금씩 지워져 간다. 늘 사랑을 갈구했지만 결국엔 그 결핍에 집어삼켜지는 것은 본인이었음을 끝내 알아채지 못한다. 어떤 모성의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결핍은 서로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결국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조차 고통으로 변하게 만든다.
그 틈새를 '침범'하는 미지의 인물이 살아가기에도 벅찬 일상을 파고들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20년 전 멈춰버린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며 다시금 그 흐름을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인물을 찾아 나서려는 노력과는 별개로 서서히 드러나는 비밀은 관객들을 더욱 깊은 혼란에 빠뜨린다. '소현'은 누구일까. '영은'은 어떻게 된 걸까. 이 영화는 균열과 붕괴를 다루며, 그 안에서 서슬 퍼런 공포가 휘몰아친다. 인물들의 공포와 두려움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도무지 아이가 저지른 행동이라고 볼 수 없는 행동은 영화가 끝나도 소름 끼치는 감정을 남기고 그녀의 눈빛, 목소리가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엄습하는 불안감과 함께 찾아오는 감정의 여운은 관객들의 내면에 깊숙이 파고든다.
영화 <침범>은 린 램지 감독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와 많이 닮아있었다. 관점이 다르다는 것에 차이가 있지만 모성의 복잡한 감정과 삐뚤어진 애정의 형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영화를 연상하게 만든다. 사건에 대한 판단보다는 인물의 감정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그 침범이 가져온 상처와 그로 인해 발생한 갈등이 인물들의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모성의 본질이 가끔은 잔혹할 수 있음을 드러내며, 그러한 감정의 무게는 지나치게 무거워서 단순한 말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감정에 치중한 만큼 영화는 나아가야 할 해결점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고, 영은과 소현을 제외하면 각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 대해 몰입하기 힘들게 만들어져 깊이 공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