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컴패니언> 리뷰
방심하지 말 것.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반전을 예상하지 말 것.
드류 행콕이 연출한 <컴패니언>은 2025년 3월 19일 개봉한 영화이다. 로맨스 드라마부터 SF 스릴러 장르는 넘나드는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충격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완벽한 사랑 속 숨겨진 끔찍한 비밀의 정체를 파헤치는 순간이다. 모든 예측을 뒤엎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아이리스는 완벽하고도 운명적인 사랑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조시. 그리고 아이리시는 고백한다. 자신이 한 일들과 어떤 운명적인 만남에 대해서. 아이리스와 조시는 호수가의 별장으로 휴가를 떠나게 된다. 조시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만남은 아이리스를 긴장하게 만든다. 조시는 항상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라며 아이리스는 달래지만 부담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런 어려움에도 아이리스는 사랑하는 조시를 위해 그의 친구들과 잘 어울리려 노력한다. 하지만 다음 날, 호숫가에서 벌어진 일은 아이리스의 삶을 뒤흔들어놓는다. 믿을 수 없는 진실이 드러나며 별장은 더 이상 평화롭지 않은 공간으로 변한다.
이 모든 것은 조시의 계획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통제되지 않는 것들을 투영하며 처음과는 전혀 다른 도구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욕망에서 비롯된 일임에도 그 사실을 애써 감추며 자신의 정당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모든 일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는 그저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한다. 그의 본성이 점차 드러난다. 그는 자신만을 바라보는 존재를 자신의 방식으로 '자유'를 내어주고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는 도구로서 이용한다. 하지만 완벽할 것 같았던 계획이 점차 틀어지고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굉장히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불안감은 곧 분노로 이어지고 그 분노는 광기로 변질되어 간다.
처음엔 아이리스의 감상 젖은 모습에 사람들이 비호감을 느낀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게 좀 이상했다. 은근한 명령조, 가스라이팅 그 모든 게 의심할만한 것들이었음에도 '사랑'이라는 이름에 가려져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것뿐이다. 진실을 알게 된 후에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질적인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고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조시의 말대로 아이리스는 그저 프로그래밍된 로봇에 불과한 것일까. 하지만 그녀가 느낀 감정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프로그래밍은 말 그대로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고, 자연스러운 감정의 연결과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조직되어 있다. 그래서 언제든 삭제될 수도 있고, 새로운 자아를 생성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인간과의 차별성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의 파편을 모으고, 존재 자체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만큼 통제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자아가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다른 영화였다면 섬뜩했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특이하게도 감동적이게 다가왔다.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의 대화가 모두 진심이었고 진실을 알게 된 후에도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악의를 전혀 담지 않고 현재의 상황에 집중하는 모습이 뭔가 흥미로웠다.
감독이 의도한 대로 캣과 아이리스의 서사가 평행을 이루고 있었다. 캣은 세르게이라는 남자와 교제하며 그의 부속품으로 살았고, 아이리스는 조시를 위한 로봇이었다. 두 존재 모두 남성의 통제 아래 놓여 있었고 기계화된 여성이라는 공통된 서사를 공유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사실을 공유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두 사람 간의 차이는 별로 없었지만 아이리스는 로봇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점이 큰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특히 타인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떤 노력은 여성의 주체적인 삶과 자아 성장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되는 역할과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그 관점에서 벗어나야 함을 보여준다. 캣의 이야기가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초반부에 수동적이게 묘사되었던 아이리스가 동경하는 성격임을 보여주며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기술은 발전할수록 인간에게 편안함을 제공하지만 그 사용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는 로봇을 철저히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서 등장한다. 점차 자아가 생겨나며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감정을 도구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이 지점에서 명확하게 마침표를 찍는다. 아무리 막으려 해도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적절한 통제와 기준 없이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미 생성형 AI는 여러 분야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으며 위협보다는 새로움에 적응하기 시작한 모습이다. 어떤 위험성도,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작된 AI와의 공존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서브스턴스>가 생각이 났다. 두 영화 모두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박과 통제를 다루고 있지만 <컴패니언>은 로봇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자아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자아를 형성하는 것보다는 사회가 규정한 모습에 자신을 맞추게 되고, 그 규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서브스턴스>는 사회적 압박에 굴복하는 개인의 모습을, <컴패니언>은 사회적 통제에 저항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 두 개가 맞닿아 있었다. <서브스턴스>를 본 '일부 사람들이 저렇게 늙지 말아야겠다', '저것은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며 개인의 선택이다.'라는 리뷰를 남기기도 했는데, 그것조차 영화의 완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영화는 개인의 욕망에 의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주류인 사회에서 강요로 다가오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유독 여성에게 엄격하고 기괴한 미의 기준이 적용된다는 점이 이상하.
영화의 주제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스포가 될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흥미롭게 봤던 영화였기에 글로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의 시작은 여느 로맨스 영화처럼 전개되어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 이야기가 전개되고 배경이 바뀌면서 사건은 예상할 수 없는 지점으로 나아간다. 그 중간 지점에서 깜짝 놀라 입을 한참 동안 벌렸던 기억이 있다. 점차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납득할만한 결말을 내어준다. 중간중간 개연성이 허술한 부분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재미있어서 그러한 부분은 감안하고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이 상황을 통제하려던 사람을 잘게 부숴서 그가 원치 않는 갈림길로 나아가고 마침내 자아를 얻어 자신이 가야 할 길로 나아가는 영화의 결말은 여운이 남게 만들었다. 통쾌하면서 짜릿한 이 결말은 아이리스가 어떻게 또 살아갈지 상상하게 만들고, 또 다른 아이리스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이리스는 진짜 자유를 되찾았을까? 또 다른 통제 속에 놓이게 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