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이트 버드> 리뷰
감기 몸살로 인해 개봉 당일에 보지 못했지만 아직 상영 중이라 마침내 극장에서 보게 된 영화는 바로 <화이트 버드>다. 영화 <원더>의 속편으로, RJ팔라시오의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마크 포스터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어기를 괴롭혀 전학을 간 줄리안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처음에는 어기를 괴롭혔던 인물이 주인공이 된다는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점차 그 이유를 납득하게 되며 다정함의 힘이 서서히 스며드는 순간을 마주한다. '다름'의 미덕을 보여줬던 <원더>, <화이트 버드>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까. 현실에도 필요한 따뜻한 동화 같은 이야기 <화이트 버드>는 3월 12일 개봉했다.
<화이트 버드>는 영화 <원더>에서 어기를 괴롭혔던 소년 줄리안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줄리안은 어기를 괴롭혀 전학을 가게 되었고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다. 그런 손자에게 할머니는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손자 줄리안이 듣게 되는 이야기 속 주인공 역시 줄리안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1942년, 프랑스.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여 북부는 군정 치하, 남부에는 괴뢰 비시 정부가 들어선다. 비시 정부는 나치 독일에 항복하여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죄 없는 유대인들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희생되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라의 가정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사라는 유대인 출입 금지 가게, 친했던 친구들에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조롱당한다. 사라의 부모님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도피 준비를 하지만 나치는 유대인을 잡아들일 준비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 사라의 학교에 유대인 학생들을 잡기 위해 나치 독일군이 학교에 들이닥친다. 그렇게 겨우 도망쳐 살아남은 사라는 갈 곳이 없어 절망하다 줄리안의 도움을 받게 된다.
줄리안은 바로 소아마비로 인해 절뚝거리며 학교에서 놀림거리가 되곤 했던 소년이었다. 사실 사라는 옆자리에 앉으면서도 그의 이름도 몰랐고 그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줄리안은 위험에 처한 사라를 도와준 것이다. 그렇게 줄리안의 곳간에서 신세를 지게 된 사라는 줄리안과 그의 부모님에게 지극정성으로 돌보아준다.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고 곤란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줄리안은 늘 똑같이 자신을 대해주었다. 유대인인 사라를 도와준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늘 자신에게 말해주었던 다정함이라는 용기, 어둠을 몰아낼 내면의 빛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우린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증오의 끝을 보았고 다정함엔 큰 용기가 필요하단 걸 알았어. 그 용기로 인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세상에서 다정함을 본다는 건 기적과도 같으니까.
이 영화가 동화 같은 이야기라는 평이 많았는데,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만은 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생존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긴 했으나 그 과정에 일어난 일들은 비극과 맞닿아 있어 너무나 서글펐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과 어둠으로 가득한 과거가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혐오를 조장하고 학살을 자행한 이들이 아닌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목숨을 잃고 희생당하는 그 과정이 화가 나기도 했고 슬프기도 해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특히 바깥의 현실과는 많이 다른 상상 속의 공간이 너무나도 희망적이라 비극적인 모습이 더욱 대비되어 다가왔다.
이 영화는 현실세계와는 다르게 수많은 다정함이 녹아있다. 그래서 동화 같고,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불신과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서 그들이 건네는 다정한 용기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줄리안은 평소에 겪던 조롱을 또 다른 약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다정함과 용기로 대응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내면의 결핍과 열등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열등감은 비겁함으로 번져 타인을 괴롭히는데 힘을 쏟는다. 특히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 그 비겁한 힘은 더욱 강해진다. 그 힘은 결코 영원할 수 없다. 누구보다 초라하고 용기 없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다정함이라는 용기로 더욱 단단하게 만들며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나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사랑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줄리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원더>에서 어기를 굉장히 못살게 굴었던 한 소년이었기에 <화이트 버드>가 줄리안의 시점을 택한 이유가 솔직히 잘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는 과연 바뀌었을까? 줄리안은 낯선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됐고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돕는다거나 안 좋은 소리를 듣는 친구의 편을 드는 일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줄리안은 할머니에게 오로지 나의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하며 적응해 가겠다고 말한다. 그런 할머니는 너는 네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냐고 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기 잘못을 알고 있는지, 반성하고 있는지는 사실 확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풀이 죽어있었고, 과거처럼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려 하는 신중한 태도가 그의 내면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힘든 일이지만 주변의 환경을 바꾸거나 개인의 엄청난 노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원더>에서도 보았듯이 줄리안의 경우에는 그것을 가르쳐주거나 도와줄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그는 전에는 알지 못했던 진리를 깨닫게 된다. 다정함이란 어떤 것에서부터 나오는지, 그것이 왜 용기인지도. 그는 마침내 자신이 무엇을 과거에 잘못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타인을 배척하지 않고 함께 어울리고 돕는 모습을 곧바로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의 역사는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 아픔을 겪고도 세상은 여전히 혐오로 가득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차별을 구호로 내세운 지도자가 지지를 받고, 학살의 고통받았던 이들이 또 다른 학살을 저지르며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전쟁이 끝없이 이어지고 또 반복되고 있다. 역사가 남긴 경고를 무시한 채, 혐오는 너무나도 쉽게 퍼지고 차별은 당연한 듯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혐오와 차별은 더 큰 혼란과 고통을 낳을 뿐이다. 이 아픔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과거를 '기억'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무관심이나 중립은 방관의 또 다른 이름이며 다정함과 용기는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살면서 많은 것을 잊게 되지만 다정함은 결코 잊지 못한단다. 사랑이 그러하듯 영원히 함께 하니"라는 말처럼 낯설지 않은 영화의 주제와 따뜻한 메시지가 마음을 울린다. 다소 투박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힘을 보여준 영화 <화이트 버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