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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Jul 02. 2022

우리의 안개, 당신의 파도, 나의 잉크

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좋을 수 없는 첫 만남 속의 의심 그리고 관심까지 이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같은 결을 이루고 있다가 결국엔 결심으로 다다른다. 1부 산, 2부 바다 그 사이의 두 사람은 누군가의 행동으로 인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또다시 가까워진다. 박찬욱 감독만이 낼 수 있는 미장센이 극대화되어 한 사람은 볼 수 있지만 한 사람은 볼 수 없는 만조가 들이닥친다. 대사, 표정, 분위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지도 모를 것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이 모호함까지도 완전함이 된다. 이 영화는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고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이 있는 거야.” 이 대사처럼 관람 후에 고운 모래가 밀려오듯 파도가 밀려온다.



해준은 잠이 오지 않아서 잠복수사를 하고 수사를 하기 위해서 잠을 자지 않는다. 살인과 폭력이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은 것 같은 해준이 서래를 만나며 감정을 채워 넣고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추방될까 봐 신고하지 않고 살아온 서래가 해준을 만나며 사랑을 채워 넣는다. 수사극의 일종이지만 이 영화에서 펼쳐지는 수사는 사랑을 파고드는 수단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극 중 등장인물들이 언어의 차이를 넘어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지만, 서로를 향해 “사랑해”라는 그 흔한 말을 내뱉지 못한다. 술을 먹으면 다음 날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안개가 눈을 가리는 것처럼 사랑은 망각과 같았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산에서 바다로 끝나는 영화는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펼쳐진다. 해준의 감정이 그때도 해준의 와이프인 정안과 함께 할때보다 서래와 함께 있을 때 좀더 안정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드러낸다. 인공눈물도, 기계도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헤어질 결심은 해준에게 있어서 사건 해결, 서래에게 있어서는 결혼이었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을 굳게 다짐해 보아도 붕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서로의 마음은 안개가 짙던 곳에 해가 들어서서 서래는 해준에게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미결 사건’으로 남았고 또 남을 수밖에 없었다.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을 박찬욱 감독이 왜 그렇게 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정말 잔잔하면서도 내면의 감정을 표정으로 세밀하게 연기하는 탕웨이 배우와 박해일 배우의 조합이 완벽했고 이를 화면 밖에서도 느껴지게 한 박찬욱 감독의 능력이 새삼 놀랍다. 한 번 보기는 아쉬운 영화 헤어질 결심이었다.


주의사항이 하나 있다.

※ 아이폰 사용자라면 이 영화를 보기 전, siri 설정을 꺼두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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