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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얼음 May 16. 2021

일요일 저녁마다 찾아오는 직장인 블루

월요병을 넘어서는 공허함을 해결하기 위해

지하철 역에서 밖을 향한 계단 위를 쳐다보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작 8시도 채 안되었는데 벌써 어두컴컴하다니. 중국 발 미세먼지 때문인지 이상기온 때문인지 요즘 날씨는 이상하다 못해 몇 달에 걸쳐 좋은 날이 손에 꼽는 듯하다. 이런 곳에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미 젖어버렸던 축축한 우산을 다시 꺼내 펼쳐 들고 집으로 걷기 시작한다. 운동화 사이로 스며든 축축한 양말 앞쪽이 느껴져 찜찜하다.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싶은데 걸어가는 길목에 있는 동네 마트 앞에 진열해놓은 오렌지가 눈에 띈다. 배는 고프지 않은데 갈증이 느껴져 뭔가 상큼하고 수분감 있는 것이 먹고 싶었던지라 잠시 발길을 멈춰 오렌지를 집어 들었다. 여섯 개에 오천원인 오렌지 한 봉지를 들고 계산대 앞에 조용히 서있는데 담당 아주머니가 손님을 없던 틈을 타 바닥 청소에 여념이 없으신 모양이었다. 잠시 기다리면 보시겠지 싶어 가만히 서있었는데 전혀 눈치를 못 채시길래 계산해달라고 굳이 말을 걸었다. 계산한 뒤 기력 없이 느릿느릿하게 지갑에 카드를 넣고 있었더니 눈치를 보며 봉지 필요해요?라고 물으시길래 괜찮다고 말하고 오렌지를 품에 안고 우산을 다시 펴 들었다. 봉지 때문이 아니라 일요일 저녁인 것이 나를 힘없게 만드는 원인이다.


일요일 저녁 오렌지를 품에 안고 집으로 걸어가는 지금  모습을 10년이 지나 떠올리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라는 생각이 들게 될까 아니면 그때보단 지금이  낫네 라는 생각이 들게 될까.   어떤 쪽에  가까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자주 던진.


 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걷는데 젖은 콘크리트 바닥에 반사된 신호등의 초록빛과 네온사인 불빛들이 번져 주변을 환하게 비춘다. 그래 이게 서울이라는 도시의 느낌이었지.  도시에 살기 위해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하고 매달 스스로의 지출비와 생활비를 책임지기 위해 회사를 다닌  벌써  년이 되었지만 어떻게  년째  일요일마다 이런 공허한 기분이 똑같이 드는 것일까. 주중에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지만 아침잠이 절대 줄지 않고 항상 알람 소리에도 일어나기 힘든 미스터리와 동일하다.


회사에서 인간관계 때문에 힘든 것도 아니고 회사 일을 감당 못해 힘든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어떤 안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람쥐 쳇바퀴 같은 똑같은 일상이 누군가에겐 부러울지 몰라도 이렇게 사는 삶이 인생을 허비하는 듯한 기분이 가득 나를 메운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도전적인 모험을  만큼 패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계획 없이 어떻게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수입 없이 지낼 만큼 미래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반복되는 지루한 삶을 살기에  시간이 아까운  맞다. 그런 주중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에 열심히 놀기만 하는 주말이 지나고  시간이 되면 또다시 공허함이 몰려오는  이젠 익숙한 패턴이다.


단순히 내일 일해야 되서가 아닌 본질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다 보면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둘 중에 하나다. 부정적인 마음가짐을 바꿔서 긍정적인 사고 회로를 탑재해 이런 생각을 멈추던가 아니면 회사 외의 다른 것을 배워서 나를 발전시키던가.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일을 해야 생동감을 느끼는 나는 뭔갈 해야 한다. 첫 번째 방법으로 살려면 다시 태어나야 할 것 같아서 두 번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몇 개월 동안 퇴근 후 가던 필라테스 수업이 끝이 나버려 퇴근 후 무얼 할지 고민 중이었던 참에 친구 따라 도자기를 배우기로 했다. 기왕이면 도자공예 기능사를 딸 생각이다. 어차피 배우는 거 제대로 해서 자격증까지 따면 언젠가 써먹을 수 있지도 모르니 그런 전형의 수업으로 등록했다. 주중에 퇴근 후 삼일 동안 세 시간씩이나 들어야 하는데 집에서 거리도 좀 멀어 온 체력이 다 빨릴 예정이다. 차라리 이런 잡생각을 하지 않으려면 몸을 혹사시켜서 정신을 쏙 빼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직장인 블루에 빠져 무기력했던 마음이 내일 도자기 수업에 필요한 앞치마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덮어졌다.


나란 사람 정말 단순하네.


그래도 내일 출근하기는 여전히 싫다. 수요일에 석가탄신일이라 하루 휴일이니까 봐준다. 빨래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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