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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다 Nov 21. 2023

노인의 눈을 빌리고 싶다

세상의 내면아이를 보는 눈

입김이 번지는 겨울 골목길.

도로록. 도로로로. 아스팔트를 구르는 바퀴 소리가 들리자 감색 털모자를 쓴 할머니는 구부정한 자세로 대문을 열었다. 


멀리서 한 남자가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이리로 오고 있다. 노인의 얼굴에 옅은 반가움이 스친다. 남자는 온종일 찬 바람에 시달렸는지 어깨를 움츠린 채 할머니 앞에 섰다. 그녀는 서둘러 들어오라는 시늉을 했다.  허리를 더욱 이 수그려 그의 발 앞에 가지런히 실내 슬리퍼를 내려놓는다.


"아가야, 이거 신어."


못해도 사십 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늙은 아가는

고분고분 신발을 갈아 신고 익숙한 듯 식탁에 앉았다.


92세 화가, 박정희 할머니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다. '아가~' 부르는 음성이 묘하게 저릿해서 서너 번쯤 돌려본 부분이다.


<출처: EBSCulture 장수의비밀_수채화 할머니의 기쁜 날>


내레이터는 두 사람의 만남을 설명했다. 

작년, 할머니는 언어 장애가 있는 아저씨가 폐지로 주운 전집을 단돈  만원에 샀다. 좋은 책을 싸게 산 게 고마워서 커피를 대접하다가 연이 되었단다.


테이블에는 김이 나는 믹스 커피와 과자가 놓여 있었다. 저씨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뜨거운 걸 들이켠다. 할머니는 마주 앉아 외투가 따뜻한지. 오늘은 얼마를 벌었는지. 더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부드럽게 물었다.


 따끈한 게 아저씨식도와 위를 데워서인지, 자신을 훑는 할머니의 나긋한 눈길 탓인지 뻣뻣하게 솟은  어깨가 슬그머니 풀어진다. 다과 시간이 끝나자, 할머니는 의 양쪽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귤을 챙겨 주고는 손을 잡았다.


"손이 차다. 장갑 꼭 껴라."


아저씨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거뭇거뭇 때 묻은 목장갑을 끼면서 대답 대신 잇몸을 드러내어 환히 웃었다.


<출처: EBSCulture 장수의비밀_수채화 할머니의 기쁜 날>



구십 세  노인의 시선 자애롭다. 

주름이 진 중년의 사내도, 머리가 희끗한 아줌마도 부랑 노인에겐 보드라운 아가일뿐이다. 


세상에 온통 아이만 가득하, 못난 놈이든 나쁜 놈이든 모질게 보기가 어렵겠다. 열심히 폐지를 줍는 은 마냥 기특하고 차게 식은 손은 그저 안쓰럽겠다.


나만해도 그렇다. 언성을 높여 떠드는 어른에게는 눈살을 찌푸리지만, 뛰고 고함지르는 아이들의 소음에는 인심이 후한 편이다. 여유가 있는 날에는 불상의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기다.


그래서 생각했다.

살다가 미운 사람이 생기면 노인의 눈을 빌리면 좋겠다고.


아이처럼 서툴러서. 불완전하고 미숙해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서. 두렵고 불안해서. 당신의 상처가 아물지 못해서. 우리는 여전히 연약한 아이일 뿐이라서...

넉넉한 시선으로 나와 당신을 쓰다듬고 변호한 후에 다시 서로를 마주 하면 한결 둥그레져 있을까.


'아가야.'

달래듯이 나를  할머니의 름에 속절없이 유순한 아이가 되고 싶어 지듯, 노인의 눈으로 세상을 살면 지독한 일들이 반절은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잘 늙는다는 건 깊고 느슨하게 품는 거라고... 그렇게 평화로워지는 일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출간 도서: [일단 좀 울고 시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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