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종이책이 더 좋다.

by 부뚜막위고양이

나는 종이로 된 책을 좋아한다. 손에 들고 내가 읽은 쪽과 앞으로 읽을 쪽의 두께를 느끼며 내용에 집중하는 일. 딱 그 정도의 독서하는 무게가 좋다. 요즘엔 그 무게를 감당하지 않아도 가벼운 기계 안엔 도서관 혹은 서점에 버금가는 양의 책이 들어있다. 광고에 적힐 법한 이 장점은 나에겐 치명적이다. 내가 지나간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늠할 수 없으니 아쉽다. 내가 읽은 쪽이 두꺼워질수록 내 뿌듯함 또한 두꺼워지고 읽을 쪽이 점점 얇아질수록 책에 대한 아쉬움은 커 간다. 아무래도 종이의 질감, 향, 촉감, 무게감은 포기 못할 것 같다.

마음에 드는 부분을 찾아도 아래쪽을 살짝 접어 나만 알 수 있는 곳을 표시 해 두는데, 기계로는 북 마크 표시 한 번 누르면 되니 간편하다. 하지만 종이를 접어 누르면서 내용을 읽는 그 느낌은 상당히 고소하다. 아몬드를 씹는 느낌이랄까. 겉껍질을 딱 씹어 아몬드의 맛을 음미하듯 아래 부분을 탁 접어 책 내용을 음미한다.


요즘엔 전자책이 미니멀리스트들 사이에선 필수 덕목 같은 존재가 됐다. 아무래도 실존하는 책들은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어야 집안에서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그러려면 일단 책장이 필요했고 그 책장만큼의 가격과 공간이 필요하고, 그 공간에 알맞은 집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자책은 단순히 기계 하나 a4용지 정도 혹은 그보다 작은 모양에도 내가 읽고도 남을 만큼 저장되지만 난 책장 앞에서 책의 제목을 보는 것도 행복하다. 그 책의 표지와 제목의 색깔부터 약간의 낡음과 새 것이 공존하는 공간을 바라보면서 내가 그동안 이렇게 많은 걸 읽었구나.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어렴풋이 내용을 더듬어 화자가 말하는 내용을 조각조각 주워 담아 다시 한번 열정에 불타기도 하고, 주웠던 것들을 다시 흩뿌리며 슬퍼하기도 했다.

이제는 연인을 위한 책이 어느덧 주인 없는 집처럼 점점 바스러져가는 내용도 존재했다. 참 이래서 책을 못 버린다. 책만 봐도 행복하고 슬프기도 한데. 앞으론 월등한 기계들이 내 추억보다 앞서겠지만 제자리걸음이라도 내 추억을 보존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전 21화비가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