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회사에 아침체조 시간이 있었다. 7시 50분이면 모두가 사무실 기둥에 걸린 TV를 바라보고 서서 유명 트레이너의 짧은 스트레칭 영상을 따라 하곤 했다.
입사 3년 차 때였나. 그날은 체조를 끝내고 곧장 탕비실을 찾았는데 창가 라디에이터에 누군가 걸터앉아 있었다. 밖을 쳐다보며 한가로이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 사람은 같은 팀 대리님이었다.
“대리님 여기서 뭐하세요??”
특유의 잔잔한 미소와 함께 ”체조하기 싫어서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렇게 정직한 반응이라니. 평소에 일 잘하고 자기 관리도 철저한 사람인데 의외로 엉뚱한 면이 있네. 속으로 웃으며 물을 한 잔 마시고 자리로 돌아와 일과를 시작했다.
그땐 선배의 그런 행동이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잘 모르겠다. 애 같은 게 뭐고, 어른스러운 건 또 뭘까.
나이 서른일곱이 되어도 어른이라는 정체성은 여전히 버겁다. 부모님과 떨어진 지 17년이고, 회사 다니며 돈을 벌고, 결혼을 했고, 아이도 키우고 있지만 여전히 산다는 것에 서툴고 자신이 없다.
어영부영 흘러온 삶이라서 그런가 싶다. 일상이 대단히 특별한 모습이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은 일 하나라도 더 고민해 보고, 직접 결단해 볼 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른의 밀도는 그런 자기주장과 책임짐의 경험들로 채워지는 게 아닐까. 하다 못해 체조하기 싫어, 같은 우스운 고집에도 자기 다운 이유가 있다면 그건 분명 어른의 행동이 아닐까.
살면서 감당해야 할 일들이 있다. 하지만 스스로 길어 올린 이유와 목적 없이 그저 살아지는 대로 견디는 시간은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 같다. 내 몫의 삶을 고민하고 살아내는 것이 버거운 요즘, 한번 더 나를 듣고 조금 더 나를 알기로 한다.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움, 주어진 역할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들을 게으름에 대한 변명으로 삼지 않고 나를 사는데 성실하기로. 그렇게 어른이라는 껍데기 안쪽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