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직장인이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취기가 오른 후배가 질문을 던졌다. 팀장님이 웃으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되묻자, 자기 일을 꿰차고 지지 않는 논리를 갖춘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맞은편에 앉은 차장급 선배가 한 마디 얹었다.
“너희도 이제 곧 책임이잖아. 그 정도 되면 어떻게 하면 ‘내가’ 잘할까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조직이’ 잘할까를 생각해야 해.”
익어가는 고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둘 다 마음에 딱 달라붙는 말은 아니었다. 자기 일을 빈틈없이 잘하면, 큰 그림을 보며 조직에 기여하면 멋있는 직장인인가? 그걸로 충분한가? 고기 한 점을 씹으며 생각에 잠긴 사이 대화는 다른 주제로 흘러갔다.
일을 하다 보면 그날의 대화가 종종 떠올랐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나의 답은 ‘의미’였다. 일에서 생계수단 이상의 어떤 가치를 분명하게 느끼는 사람. 시키는 일을 잘하는 사람을 넘어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 나에게 멋있는 직장인은 그런 모습이었다.
대단한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변화시킨다거나, 큰돈을 번다거나 하는. 그래서 참 멀어 보였다. 책상 앞에 앉아 자동차 부품 몇 개의 원가를 따지는 일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어 보이는 이 일 속에서 삶의 중요한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일은 왜 이렇게 작을까. 의미라는 주제를 대면하며 내가 주로 떠올린 것은 현실, 한계, 박탈감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진 않았고, 여전히 고민을 이어가는 중이다. 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어쩌면 일의 의미라는 건 대단한 걸 이뤄내는 데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나와 우리에게 서비스란 거래가 아니다."
"우리가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 Ari Weinzweig, Zingerman's 공동설립자
달려서든, 아니면 떠밀려서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라니.
오늘도 나는 일을 한다. 회사일, 집안일,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을 통해 가진 능력을 발휘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감정을 나누고, 때론 부족함을 느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다짐도 한다. 그렇게 세상 속에서 나를 인지하고, 오늘에 존재한다. 일의 의미에 있어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없겠구나.
어찌 보면 '존재'는 철저히 현실을 설명하는 단어이지만, 나는 그것을 미래라는 비현실에 놓아두고 불안을 자초했다. 나이가 들어도 세상 속에서 잘 존재할 수 있을까. 시간 앞에 속절없이 무능해지지 않고, 여전히 스스로를 돌보고,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며 당당할 수 있을까. 의미 있는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욕구 뒷면에 항상 두려움이 있었다. 현재 내 삶의 의미보다는, 안락한 미래를 보장해 줄 듯 보이는 성공과 성취를 손에 쥐고 싶은 마음이었다.
솔직히 그 마음을 모두 떨쳤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이제는 의식적으로라도 다른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나는 오늘 최선을 다해 존재했을까. 조금 더 돕고, 조금 더 친절했을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을 찾고, 해내고자 충분히 애를 썼을까. 무엇보다 그 과정이 나다웠을까. 물론 직장생활에 국한하지 않은 총체적인 내 삶에 대한 질문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그룹사에서 모집하는 대학생 멘토링에 지원했다. 아차 나 벌써 서른일곱이지,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 민망하긴 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과 줄 수 있는 도움이 왠지 거기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떨어졌다. 하지만 괜찮다. 시도한 것 자체로 칭찬해. 경주하듯 매진할 어떤 목표가 아니라, 내 정체성을 마음껏 표현하며 만족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일과 관계를 계속 고민할 테다.
오늘에 더 잘 존재하려는 사람에게 일의 더 큰 의미와 안온한 미래가 선물처럼 주어지리라 믿어보련다. 아니어도 별 수 없고. 아무튼 나는 일을 잘하는 걸 넘어서, 삶을 잘 사는 직장인이 되고 싶다. 그게 더 멋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