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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기쁨과 슬픔

by 광현

“생일 축하해 사랑해”

“성장은 기쁘지만 왠지 슬프다”


언젠가 추성훈 님이 딸 사랑이의 생일을 맞아 인스타그램 피드를 올린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 아래에 걸린 짧은 문장이 눈에 밟혀 좋아요를 누르고 캡처도 해두었더랬다.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


여덟 살 된 아들이 지금보다 많이 어릴 때, 아내는 자기 손으로 한 뼘 두 뼘 짚어가며 아이의 키를 재보는 걸 좋아했다. 접었다 폈다 서너 번이면 충분한 이 작은 존재가 울고, 웃고, 걷고, 말하는 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병원에서 해주는 영유아검사 결과지보다, 우리가 직접 안아보고 만져가며 온몸으로 확인하는 아이의 성장이 더 기쁘고 신비롭게 느껴지곤 했다.


아이가 제법 크고부터는 그 재미를 자연스럽게 잊고 지내다 며칠 전 정말 오랜만에, 자려고 누운 아들의 머리 위에서 아내가 손바닥을 펼쳤다.


“네가 아기일 때는 엄마아빠가 이렇게 손으로 한 뼘, 두 뼘 키를 쟀었어. 그땐 세 뼘 네 뼘 정도였는데, 이제는 다섯 뼘 여섯 뼘 엄청 커졌네~ 언제 이렇게 컸어~!“


아이는 그게 왠지 재밌었거나,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엄마, 나 스무 살 돼도 이렇게 한 뼘 두 뼘 해줘, 알았지?“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아내와 나는 빵- 하고 터졌다. 그때면 튼실한 다리에 털까지 숭숭 나있을 아들을 눕혀놓고 우리가 한 뼘, 두 뼘 하겠다고 하면 이 녀석이 뭐라고 할까. 지 아빠보다 굵은 목소리로 “아 엄마 왜그래~” 하지 않을까. 아내는 증거를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너 그때 돼서 싫다고 하면 안 된다? 동영상을 찍어놔야겠어. 다시 말해봐, 어떻게 해달라고?”


아들은 엄마가 왜 이러지, 싶은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했던 말을 순순히 반복했다. 아내와 나는 한번 더 깔깔대다가, 이내 웃음을 멈추고 애틋함이 섞인 눈길을 주고받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직 지나지도 않은 이 밤을 우리가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요즘 내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언제까지’이다. 우리 아들이 언제까지 아빠 무릎 위에 앉아주려나, 언제까지 아빠한테 뽀뽀해 주려나, 언제까지 아빠랑 놀아주려나 같은. 일종의 이별준비다. 예정된 그리움과 쓸쓸함에 대한 연습이다. 때가 되면 생길 마음의 빈자리를 미리 조금씩 좁혀두는 일이다. 이렇게라도 해두지 않으면 아이가 훌쩍 떠날 때 적잖이 슬플 것 같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절대적인 사실이, 내가 가진 능력 이상으로 아이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도 내 마음속에서는 아이의 자라남에 대한 기쁨과 아쉬움이 셀 수 없이 교차한다. 성장하는 존재를 사랑하는 일은 이렇게나 오묘하다. 그런 양가감정 속에서도 이 일을 행복이라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논리적인 이유도 아니고 그저 내 눈앞에 있는 아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나에게는 정말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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