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가 곧 끝난다고 하여, 올해 두 번째 덕수궁 나들이. 날이 제법 풀려 초봄처럼 포근하고 날이 썩 맑진 않아 구름이 조금 끼었는데, 따뜻하고 흐릿한 것이 덕수궁에도 박수근에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 첫 주에 전시를 보았을 땐 겨울이 한창이었던지라, 묵묵히 봄을 기다리며 웅크린 겨울 나목의 모습과 전후 혹독한 삶 속에서도 삶을 살아내는 이웃들의 모습, 그 안에 담긴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잔잔한 감동이 일었었는데. 겨울보단 봄에 더 가까운 때에 다시 찾으니, 화백이 바라던 희망에도 한 걸음 가까워진 것 같아 또 뭉클한 마음이 인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아이를 업은 소녀, 빨래터의 여인들, 아이를 업고 절구질하는 여인 등 화백은 당시 일상 속 여인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내었다. 그림 속 여인들을 보면 이들을 바라보는 화백의 따뜻한 시선과 마음이 느껴진다. 사진을 찍을 때 내가 관심을 두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들을 주로 담아내는 것처럼, 일하는 여인들(주로 가사노동하는 여인들)을 바라보는 화백의 마음에도 무언가 따뜻함, 애틋함 같은 감정이 있었기에 그림으로 남겼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여인들을 그린 그림
지금보다 가부장적 문화가 훨씬 많이 남아 있던 1950~60년대의 시기에 이웃의 여인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관점에서 해방시켰을까 궁금증이 있었는데, 전시 초입에 적힌 문구를 보니, 어렸을 적 어머님께서 유방암으로 병원에 오래 계시다 돌아가셔서, 화백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과 아버지를 돌보고 집안 살림을 맡아했다고 한다. 그런 경험과 가사노동, 돌봄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화백은 주변의 여인들의 모습이 눈에 밟혀 차마 그리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짐작이 들었다. 그렇기에 아내에 대한 고백을 담은 편지가 그렇게도 애틋했나 싶기도 하고.
박수근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
2전시실에는 박완서의 소설 『나목』의 문장들이 큐레이션 되어 있다. 박완서는 소설 『나목』의 후기에서 6·25 전쟁이 진행 중이던 당시 박수근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예술가가, 모든 예술가들이 대구, 부산, 제주 등지에서 미치고 환장하지 않으면, 또는 독한 술로라도 정신을 흐려 놓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1·4후퇴 후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텅 빈 최전방 도시인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살았나, 생각하기 따라서는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과 모습을 증언하고 싶은 생각을 단념할 수는 없었다.”
모국에 전쟁이 한창인 시대를 견뎌야 했던, 전쟁 통에도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예술가이자 가장으로서 화백의 현실은 어땠으며, 그럼에도 예술도 현실 감각도 어느 하나 놓거나 잃지 않고 지켜낼 수 있었던 화백의 힘은 어디에서 왔던 것일지? 그 와중에도 이웃들을, 일하는 여인들을 계속해서 묵묵히 그리고자 했던 화백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전시를 보는 동안 어제오늘 보았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폭격 장면, 피난길에 오르고 스스로 무장하며 전쟁의 현실을 마주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모습이 중첩되어, 내내 마음이 복잡하였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는 말만을 되뇌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니, 무력하고 부끄럽다.
박완서 소설 『나목』의 후기
전시가 곧 종료된다고 하니, 그림 하나하나 쉬이 넘기기가 어려웠다. 양구 박수근 미술관에서 온 그림들이 대부분이나, 개인 소장 그림, 미국에서 온 그림, 이건희컬렉션 그림 등등 출처가 제각기 달라서, 박수근 특별전이 다시 개최되지 않는 한, 이 그림들을 한데 모아 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애석하게도 마감 시간이 가까워 오고, 처음 전시실에 들어갈 때부터 보조를 맞춰 관람하던 방문객들의 발걸음은 빨라지고, 아쉬운 대로 그림들을 휘리릭 눈에 담은 후 미술관을 나왔다.
저녁이 가까워 조금은 더 어둡고 흐릿해진 덕수궁 경내. 화백의 그림들을 눈에 들이고 나니, 덕수궁의 저 많은 나무들도 화백이 그린 나목과 사뭇 다르지 않아 보인다. 봄을 기다리는 나목들에게 봄이 가까워온 듯하다. 화백은 "겨울을 껑충 뛰어넘어 봄을 생각하면 가슴에 오월의 태양이 작열"한다는 말을 남겼는데, 화백의 봄은 시간이 지나면 오는 계절로서의 봄만은 아닐 것이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나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모든 봄을 기다리는 나목들에게도, 겨울이라고 꼭 혹독한 것만은 아니었길. 머지않아 저마다의 봄이 찾아오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