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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mundus Mar 09. 2023

어떤 다리 저는 남자와 신촌의 택시운전사

7년 전 오늘의 해석

어쩌다 저쩌다 가늘고 길었던 연락 끝에 7년 만에 만난 친구와 저녁 시간을 보내고서. 12분이면 도착한다던 버스는 20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고, 날이 추워 지하철역에서 테이크아웃해 온 900원짜리 커피는 이미 식어 바닥을 드러낸다. 서둘러 장갑을 끼고서 테이크아웃 컵에 박아두었던 고개를 들고 막 주위를 둘러볼 때.


건너편 길가에서 어떤 남자가 택시를 잡고 있다. 한동안 제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다가, 다가오는 택시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남자는 다리를 절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여자가 남자 앞으로 뛰쳐나와 서더니 남자가 잡으려던 택시를 타고 가버린다.


남자는 잠시 고개를 떨궜다가, 옆에 막 사람이 내리고 있는 검정 모범택시를 잡으러 다시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다. 하지만 버스 한 두 대가 내 시야를 가리며 지나간 사이 택시는 이미 떠나고 없고, 남자는 여전히 그대로 길가에 있다. 그러고는 다시 저 멀리 희미하게조차 보이지 않는 택시의 빨간 등을 기다리며 손을 흔든다. 다리가 불편해서인지 저 앞까지 나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채로.


다시 세 번째 택시가 온다. 이번에는 어떤 남자 두 명이서 그를 제쳐두고 택시 앞에 선다. 택시는 다리 저는 남자와 오 미터 남짓의 거리를 두고 두 남자 앞에 멈추고, 남자는 한 두 걸음 다가가다가 또 실패했다 생각했는지 단념하여 걸음을 그만둔다.


그럼 그렇지.. 처음에 택시를 타고 간 여자가 참 나빴다, 저 두 남자도 참 나빴다, 택시기사 아저씨들도 참 야속하시지, 하는 원망으로 가득 찬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씁쓸한 미소를 짓고 버스가 들어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려던 순간, 택시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다리 저는 남자 앞에 멈추고는, 그를 태우고 출발한다.


순간 누군가 망치로 머리를 쾅. 쾅. 쾅.


마지막 택시운전사는 왜 멈췄던 바퀴를 다시 굴려 남자 앞에 섰던 것일까, 그의 이마에 더 많은 미터기의 요금이 찍혀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과연 나는 앞서 택시를 먼저 타고 간 여자와 두 남자가 나쁘다며 쉬이 비판을 던질 수 있을 만큼 떳떳했던가, 그들이 옆의 다리 저는 남자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던 건 아닌지,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 탔어야 할 택시를 뺏어 탄 적이 있지는 않았는지 자문조차 해보지 않고서 말이다.


그들을 보며 뱉었던 짧은 탄식은 결국엔 새어 나올 자격도 없이 내 안에 머물러야 했다.


뭔가 거대한 톱니바퀴 날이 닳아가는 듯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뒤틀리고 뒤엉켜가는 세상 속에서, 차가운 도시의 단면이 될 수도 있었던 장면은 세상에는 여전히 그 차가움만큼 대비되는 따뜻함이 존재함을 묵시해 주는 결말로 끝이 났다. 밤공기의 차가움보다 더 살을 에는 따뜻함과 부끄러움으로 마치는 하루 끝이다.


(2016년 3월 9일의 이야기)




이상 7년 전 3월 어느 날, 신촌에서 어떤 장면을 마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남겨 둔 기록. 그때 마지막 택시운전사 분이 어떤 이유로 다리 저는 남자분을 태워 갔는지는 알 수 없다. 앞선 상황을 아는 것은 나뿐이었고, 택시 운전사는 다리 저는 남자의 택시 놓친 사연을 알지 못하였다. 혹 두 남자와 택시운전사의 이해가 달랐거나 수지가 맞지 않아 정황상 두 남자를 태우기 어려운 여건이 되었을 수 있다. 그러니 위의 이야기는 그날 저녁 신촌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나의 해석일 뿐이다. 당시 대학 4학년 첫 학기가 막 시작하고 여러 문학 작품들을 가까이 접하던 즈음이라, 내 눈앞의 광경을 뭔가 좀 더 극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충동이 마음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한 해석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날이 남긴 인상과 기록 덕분인지 그해 3월은 쌀쌀한 와중에도 유독 마음만은 단단히 따뜻이 보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때의 나만큼 지금 난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 삶을 충실히 해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무뎌지고 게을러진 나 자신은 좀 더 부지런히 해석하고 반성하며 부끄러움을 알며 살아야겠다, 는 한없이 가벼운 다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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