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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선 Nov 23. 2023

그리 최악은 아니었던 여수

I wanna dance with somebody

판도라의 상자처럼 건들지도 않던 그때의 사진을 들춰 봤다. 평소에는 저릿할 정도로 화면 위를 넘나들던 두 손가락이 어쩐지 또렷이 쓰인 ‘사진’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가만히 멈춰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신히 찾은 평화를 깨는 행동이진 않을까 걱정됐다. 그러나 궁금했다. 누군가에겐 다시 살아가도 좋겠다고 느낄 만큼 위로를 준 도시라는데, 내게는 어째서 이리도 최악으로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눈앞은 어느새 투박한 그리드로 가득 찼다. 스크롤을 죽죽 올려 그날에 도착했다. 10월 5일, 헤어짐을 결심한 그날의 여수에.


수많은 풍경 사진 속 간간이 보이는 내 얼굴. 살짝 부어 쌍꺼풀이 없어진 눈에 양념게장 한쪽 다리를 들고 찍은 거울 셀카를 보았다. 괜찮아지려고 기를 쓰고 노력했구나. 감정이 뒤섞인 사진을 보며 그때의 복잡함이 떠올랐다. 나를 더 안쓰러워하고 싶지는 않아 사진을 넘겨 오동도로 향했다. 나무가 자라기를 방해하지 않도록 깔린 등산로, 등대 앞을 지나가는 누군갈 붙잡고 배시시 웃어 보이는 나, 낮잠 자는 고양이까지.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지금은 왜곡되어 보이는 표정들을 더 또렷이 기억하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10/5. 1. 우울함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마음 같지 않다. 왜 관계가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 나는 왜 매일 울까. 매일 힘들까. 왜 이렇게 답이 없고 힘든 일이 나에게 생긴 걸까. 2. 노트북 충전기를 두고 왔다. 미리 짐을 싸지 않은 내 책임이지 누굴 탓할까. C타입으로도 충전할 수 있단다. 감사하다. 돌산 다이소에 가서 쇼핑하고 밥 먹자.


시간이 이리도 지났나. 다이어리를 한참 앞으로 넘겼다. 감사의 자리를 빼앗은 수많은 한탄. 완벽한 위로가 되길 바라며 떠난 여행길에 시작부터 실수를 저질렀다. 안 그래도 나쁜 마음이 더 나쁜 마음으로 향해가자 나는 생각을 멈췄다. 관광안내소에 들러 눈에 띄는 지도를 한 장 손에 쥐고 호텔로 향했다. 오늘 일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그저 침대에 누워 노을을 바라보며 쉬고 싶었다.


호텔로 가는 길, 손에 쥔 휴대폰에서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Oh, I wanna dance with somebody

I wanna feel the heat with somebody

Yeah,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ith somebody who loves me


자자, 잡생각은 그만하고 춤이나 추자. 누군가 내게 손을 건넨다면, 나는 그 손을 붙잡고 고개를 뒤로 젖힐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입가에는 웃음이 번지고 내 마음은 좌우로 흔들리는 머리카락처럼 자유롭겠지. 어느새 호텔에 도착한 나는 웰컴드링크 쿠폰을 손에 꼭 쥐고 16층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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