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들의 행렬
- 연애하고 싶다.
- 무슨 소리냐. 지금 너를 봐라. 얼마나 멋지냐.
- 그렇긴 해. 근데 혼자 잘 때 무서워.
- 원래 혼자 자는 게 디폴트야.
- 맞아. 혼자서도 잘했잖아.
내 머릿속에는 내가 한 다섯 명쯤 산다. 하루에도 오만가지 대화를 나누는 그들 덕분에 내 머리는 포근포근 김이 난다. 하루에 몇 번씩 하는 생각인 줄 알고 끄적였던 몇 가지 후보군은 수십 번이라는 말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물러섰다. 너희들은 아직 자격이 안 된다. 주인공이 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죽음을 생각한다. 빗길을 뚫고 온 버스에 오르며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 물음표를 던진다. 비가 오는 날 버스를 타는 건 위험한 선택이었나. 버스가 사고 날 확률은 얼마나 되지. 최근에 그런 사건이 있었나. 그런데 인간이 그렇게 쉽게 죽을까. 만약 그렇다면 내 삶에 후회는 없을까. 온갖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부유하다 그만, 답을 찾기도 채 전에 열리는 버스 문에 나와 함께 뛰어내린다.
죽음과 삶은 세트다. 죽음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삶이 떠오른다. 멀어져 가는 버스를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물음표를 그린다. ‘당장 죽어도 후회가 없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러면 어김없이 작가 정혜윤의 말이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신념이나 가치를 위해 시간을 얼마만큼 쓸 것인가.’
나는 그녀의 말을 통해 처음으로 죽음을 인지했다. 그리고 유한한 시간 속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때마다 이 문장이 내 앞에 나타난다.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때때로 필요하다고, 삶의 태도를 다시금 상기해야 한다고 내게 말하는 것만 같다.
곧 내 마음속에는 몇 가지 목소리들이 차례로 피어난다. 젊음의 특권이라면 아무리 무모한 일이라도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 거절보다 좋다는 말을 더 많이 하라는 한 노인의 말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라는 엄마의 말이, 사랑한다며 마음을 끄적였던 아빠의 글이 떠오른다. 나는 그 말들을 믿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