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선 Dec 16. 2023

금사빠의 사랑 이야기 2탄

Step 02. 사랑에서 빠져나오기

반면,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건 어렵다. 나는 금세 사랑에 빠지지만 금방 사랑이 식지는 않는다. 한번 연애를 시작하면 점점 더 깊이 사랑하고, 끝이 보인다고 느끼기 전까지 헌신적이다. 어떤 일을 할 때 나보다는 상대의 취향이 기준이 될 때도 많았다. 누군가 정이 떨어진다고 말할 법한 일들도 내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심지어 상대의 원나잇까지도 이해해 보겠다고 나선 적이 있기에, 이런 나의 태도는 때때로 내게 상처가 되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리 좋은 태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정도로 헌신한 적이 있기에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보며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누군가는 고맙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한 가지 확실한 건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는 그런 나의 모습을 익숙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때, 내 마음속에는 버튼 하나가 툭 눌린다.


‘사랑에서 빠져나오기’ 버튼은 상대가 더 이상 내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눌린다. 내가 그의 연인으로서 몫을 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 나는 가장 먼저 속상함을 모으기 시작한다. 나는 웬만한 일들을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 당시의 속상함이 기억나지 않아 억울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 단계에 돌입하면 의도적으로 속상함을 저장한다. 상대에게 털어놔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드니 싸움도 자연스레 줄어드는데, 대신에 그것들이 하나둘 모여 작은 눈덩이가 된다.


그다음 단계는 시소 타기이다. 누가 시소를 타냐면 좋아하는 마음과 지치는 마음이. 연애의 전 기간을 통틀어 보통은 좋아하는 마음의 발이 땅에 닿아 있다. 그런데 마음에 겨울이 찾아오면, 시소 반대편에 앉아있던 눈덩이에 자꾸만 눈들이 붙기 시작한다. 결국에 시소는 반대쪽으로 기울어지고, 발이 뜨기 시작한 마음은 어느새 높이 튕겨 버린다. 그러면 내 사랑은 헤어질 준비를 마친다.


첫사랑과 헤어질 때 나는 조금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금세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그 두 번째 연애도 막을 내렸다. 두 번의 헌신적인 연애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줄 수 있는 사랑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던 기억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희미해지고, 아름다웠을 대부분의 순간이 강렬한 몇몇 순간을 제외하곤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 긴 연애의 끝에 과연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사랑을 쉬었던 적이 없었기에, 그러니까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조금은 허한 기분이다. 하지만 상대를 찾아 헤매던 두 눈을 나에게로 돌리기 시작한 뒤부터 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하나둘 찾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금사빠의 사랑 이야기 1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