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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선 Jan 22. 2024

첫 자취'방'

시골 소녀의 방 투어

나에겐 언제부턴가 집이 없다. 학교 주변 수많은 원룸 중 하나가 내가 오가며 머무는 자취방이 되었다. 첫 자취방의 추억을 떠올리래도 화장실에서 나던 악취가 떠올라, 그것과 일 년간 함께 생활한 어린 내가 떠올라 생각을 멈추고 싶은 지경이다.


그곳은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가 58만 원인 방이었다. 서울에 처음 와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 엄마와 나는 발품을 팔다 지쳐 마지막에 간 그 방을 계약하고 말았다. 신촌 CGV 뒤, 모텔이 즐비한 언덕 위의 방이었다. 이곳이 대학가의 중심이란 걸 잊게 만드는 계단을 지나 죽 늘어서 있는 낡은 집 중 유난히 더 낡은 단독주택을 찾으면, 그곳 2층에 나의 방이 있었다. 드라마 속 가난한 주인공이 끝없는 계단을 오르다 고개를 떨구며 한탄하는 장면이 떠오른다면 맞다. 그런 곳이었다.


202호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세 개의 방이 나를 반겼다. 아마도 방 하나에 가벽을 세워 202-1호, 2호, 3호로 개조한 듯 보였다. 나는 그중 하나인 202-1호에 살게 되었다. 그 방은 4평 남짓 되는 길고 좁은 직사각형 모양의 방이었다. 방문을 들어서면 왼쪽에는 화장실이 오른쪽에는 침대가 있었다. 편의상 좌우로 표현했지만 사실상 그 둘의 거리는 1m 채 되지 않았다. 아무튼 그것들을 지나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나아가 봤자 세 걸음에 불과하지만, 책상과 싱크대 그리고 냉장고가 있었다. 나중 얘기지만 그 셋 사이에서 빨래를 말렸어야 했는데, 당최 빨랫대를 펼 공간이 나오지 않아 한쪽 날개만을 펼치고는 빨래가 다 마를 때까지 요리를 하거나 책상에 앉는 일을 포기했어야 했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청년, 그러니까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런 쪽방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는 쌓여만 갔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모든 게 다 좁아터진 이 방 때문이라며 탓을 돌려놓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그 방에서 추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는데, 저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 신났는지 친한 친구들을 한 번씩은 초대해 맛있는 걸 대접하고 재우곤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친구는 중학교 동창 A였다. 그 애는 편입 학원에 다니느라 서울에서 지낼 곳이 필요했는데,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내 사정 딱한 것은 잊은 채 필요하면 우리 집에 와서 생활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두 달을 함께 살았다. A는 학원에서 밤늦게 돌아오곤 했는데, 마침 그때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넷플릭스에 업로드되는 시간과 맞아떨어져 우리는 매번 맥주와 안줏거리를 사다 놓고 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A가 학원에 갈 때면, 밥을 든든히 먹고 다녀야 한다며 콩나물밥을 해 먹이기도 했다. 코로나 때문에 우울하던 내게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가 생겼다는 건 귀찮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그저 행복한 일이었다.


A가 떠나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 뒤로는 거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괜히 친구네 집에 놀러 가거나 본가에 가서 시간을 때웠다. 계약 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여기저기 떠돌 뿐 나의 방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해가 어느덧 4년 전인 2020년이다. 돌이켜 보면 바라는 것도 이룬 것도 없는 그런 해였는데, 그저 흘러가는 대로 의욕을 잃은 채 살았다. 흔히 말하는 대2병이 내게도 온 건가 생각했지만, 코로나와 함께 꼼짝없이 볕도 들지 않는 골방에 갇힌다면 찌그러져 우울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 아니었을까.


'임대차 기간은 인도일로부터 2021년 3월 1일까지로 한다'


계약 만료를 알리는 디데이 앱이 울리자 나는 도망치듯 다른 방을 계약했다. 나의 두 번째 자취방은 다행히도 정사각형 모양에 볕도 들어 금방 정을 붙였다. 회색빛의 첫 자취방과 비교하자면, 이곳은 초록빛 방이었다.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쳐 오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니 말이다. 그 뒤로도 몇 번이고 새로운 방과 친해질 기회가 생겼다. 타 동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벗어나지 못했던 신촌이지만, 용기를 주는 인연을 만나 대학가가 아닌 당산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옥탑에 널어놓은 빨래가 눈에 흠뻑 젖어버린 모양을 보며 웃기도 하고, 눈사람을 크게 만들어 놓고는 배스킨라빈스 숟가락을 코에 쿡 꽂아두기도 했다. 그러다 이태원 옥탑방으로 이사해 하늘을 보며 위로받기도 했다. 정처 없이 떠돌 때는 어느 시골 마을에 한두 달씩 머물며 그곳의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다 별안간 고립되고 싶다는 생각에 제주도 동쪽 끝으로 향해 나무로 둘러싸인 방을 덥석 구하기도 했다. 마음대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해가 갈수록 공간에 대한 욕심은 커져만 간다. 언젠가 방이 아닌 집에 머물 날이 오겠지. 아마도 근사할 다음 행선지를 마음에 품고 시동을 드릉드릉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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