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몇 달 전, 오빠랑 남동생과 함께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셋이서 해외여행을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종종 얘기를 나눈 적은 있었지만 다들 귀차니즘이 심해 말에서 그칠 뿐이었다. 그러다 이제서야 가게 된 이유는 앞으로는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 새로운 가정에 충실해야 할 터였다. 난 여전히 우리 가족인데, 우리 가족은 자꾸 나를 출가외인이라며 떠나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출발해 몇 시간 후 세부에 있는 공항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둔 차를 타고 리조트로 향했다. 그곳의 직원들은 한밤중에 도착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친절한 직원들과 세련되지 않은 객실, 뜨거운 공기가 참 좋았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일찍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스노쿨링을 해 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삼 남매는 수영도 못 하는 주제에 난생 처음 해 볼 물놀이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배를 타고 육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스노쿨링 스팟에 갔다. 생각보다 바다가 깊었다. 과연 우리가 이걸 하기로 한 것이 잘 한 선택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구명조끼를 입기는 했지만 이 넓고 깊은 바다에서 달랑 한 겹의 구명조끼에 내 생명을 맡긴다는 것이 영 못미더웠다. 무서워 떨고 있는 우리에게 필리핀 소년들이 다가왔다.
‘컴온~! 잇츠이지!’
그 조그만한 소년들이 구명조끼도 없이 바다에 풍덩 뛰어드는 모습이 왠지 멋있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우리도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 만난 세부의 바닷속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깨끗하고 투명했다. 자기를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 물고기들은 우리를 상관하지 않고 유유자적했다. 때때로 그 소년들이 밥을 주면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달려오는 것이 조금 공포스럽기도 했다.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인간은 숨쉴 수 조차 없는 공간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스노쿨링을 마치고 나와, 나는 너무 추워 덜덜 떨었다. 늘 뜨거운 섬이지만, 차가운 바닷물에 오래 있어서였는지 너무너무 추웠다. 평소에도 무뚝뚝한 오빠는 별말 없이 내게 담요를 건내주었다. 평소에도 다정한 동생은 으이구-하며 내 어깨를 꼭 안아주었다. 덜덜 떨면서 낚시를 하고 겨우 잡은 손가락 두 개 만한 물고기에 신나게 웃으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진작 해볼 걸. 진작 함께 올 걸. 그렇게 내 혈육인 두 남자를 보고 있자니 앞으로 영영 못 볼 일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울렁해서, 참 행복하지만 조금은 슬프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