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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꿈 Aug 31. 2022

나는 민들레꿈

상담실을 시작하면서, '민들레꿈'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강의를  때도, 민들레꿈 ***이라고 소개한다. 지인이 예쁜 이름이라고 칭찬하자, 나는 그저 미소로 화답했다. 민들레꿈은 내게 특별한 의미이다. 나는 일부러 이름 앞에 민들레꿈을 붙이고 있. 예전에 붙였던 말을 대체하기 위해서.


나는 십여 년 넘게 내 이름 앞에, 가정폭력 피해자/생존자란 말을 붙였다. 물론 공공연히 드러낸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친해졌다 싶으면, 내가 가정폭력 생존자임을 밝혔다. 따라서 내가 가정폭력 생존자임을 모르는 이는 나에게 친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 세상은 가정폭력 이력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나뉘었다. 누가 나에게 부정적이거나 불편한 이야기를 하면, 내 잘못이 아니라 가정폭력 생존자로서 어쩔 수 없는 것을 비난받는 것 같고, 이해받지 못한 것 같았다. 가정폭력 생존자로서 나는 더욱 존중받고 더욱 섬세하게 대우받고 고생했던 과거만큼 더욱 특별대우받아야 했다. 나와 가정폭력 생존자로서 정체성은 떼어낼래야 뗄 수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날, 나를 내 의지가 아닌 사건으로 규정하기 싫어졌다. 가정폭력이 내게 많은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폭력을 경험한 일은 내 의지가 아니다. 내 정체성 핵심에, 어쩔 수 없이 타의로 경험한 사건을 두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내가 정한, 내 이름을, 내 의지로 두고 싶었다. 그래서 민들레꿈을 이름 앞에 붙였다.


가정폭력 생존자로서 정체성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이유는, 상담을 공부하고 직접 받으면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경험을 하면서, 가정폭력의 부정적 영향이 줄어들고 내면에 힘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가정폭력 생존자들이 생존자임을 자주 잊을 만큼 트라우마에서 회복되고 성장하길 바란다. 그들이 스스로 새로운 이름을 붙일 만큼, 삶에서 가정폭력의 영향력이 줄어들길 바란다.  희망을 품고 상담하고  쓴다. 그리고 나는 계속 나를 민들레꿈이라고 소개할 것이다. 나와 폭력 생존자들의 삶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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