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반 만에 탄 출근길 지하철은 새삼스럽게 숨 막히는 곳이었다. 키가 유독 작은 나는 나보다 큰 사람들 사이에 끼어 그들의 머리 사이로, 들어 올린 팔 사이로 창밖에 시선을 두려 애썼다. 초점이 맞지 않는 오른눈으로 보는 세상은 흐리게 스쳐 지나갔지만, 어떻게든 흔들리는 타인의 몸에 닿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느라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출근 지하철에 탄다는 건, 점점 물이 차오르는 방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다. 역에 설 때마다 아무도 타지 않기를 기도한다. 특히 지금 같은 여름은 반소매나 반바지로 드러난 타인의 살에 닿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 더 이상 그렇게 덥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일까. 한여름의 출근 지하철은 정말로 숨이 막힌다. 키가 작아 다른 사람들의 등에 머리가 부딪치는 나 같은 사람은 정말로 숨 쉴 구멍조차 없다.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볼 정도의 공간도 없어야 진짜 만원 지하철이라고 할 수 있겠지. 어떻게든 숨을 좀 쉬어보겠다고 매번 문 근처에 자리를 잡지만, 지하철을 타야만 하는 사람들의 힘에 밀리기 일쑤이다. 얌전히 밀려 한 사람도 아니고 반 사람 분의 공간에 끼어있다 보면 과연 내리기나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사는 곳과 내 학교가 가진 유일한 장점은, 그런 만원 지하철 상태에서도 아주 많은 인원이 내리고 타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나는 눈치를 보는 사람들 뒤에 자리하고 있다가 뒤에서 밀리고 앞에서 빠져나가는 흐름에 몸을 맡기면 그만이다. 어망에 잔뜩 잡힌 물고기처럼 꽉 차 있던 칸의 사람들이 확 쏟아져 나간다. 모두 급하게 갈 길을 가버리고 나는 다소 느긋한 발걸음으로 익숙한 길을 따라간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이 움직인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길을 잘못 들 일은 없다. 머릿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며 발이 가는 대로 앞으로 나아가면 어느새 역 바깥이다. 여름의 이른 햇빛과 텅 빈 대학가로 올라오는 순간, 다시 정신을 차린다.
밤새 어둠에 익숙해졌던 눈이 역을 나와 처음으로 햇빛에 닿을 때, 나는 잠시 시야를 잃는다. 얼굴을 찌푸리고 고집스럽게 바닥을 보면서 걷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다. 학교 주변에도 가지 않은 지 두 달이 넘어가니 새로운 가게들이 보인다. 하지만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기에 나는 시간이 없고 귀찮다. 학교 근처의 인가 많은 가게는 혼자 다니기 어렵다. 친구들과 시간표를 맞추거나 하는 것은 저학년의 사치나 다름없기에 나는 혼자인 상태에 익숙하다. 대학은 익명의 사람들이 떠돌아다니는 거대한 미로나 다름없다. 나도 누군가의 시야 끝에 잡히는 잔상일 뿐이다. 전자 출석에 대체된 출석 부르기 덕분에 억지로 자기소개를 시키지 않는 이상 강의실에서도 익명을 유지할 수 있다. 아무도 아닌 채로 몇 년씩 학교를 다니다 보면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같다.
텅 빈 아침에 백팩을 멘 젊은 사람들이 흩어져 있다. 목적지는 하나. 나와 같은 길을, 혹은 내가 알지만 쓰지 않는 길을 가 같은 곳으로 모일 것이다. 지나치게 일찍 출발하는 것이 몸에 배었기에 수업 한 시간 전에 학교에 도착한다. 그리고는 할 일이 없어져 커피를 한 잔 마시며 텅 빈 학교 카페에 앉아 있는다. 학교 카페는 9시에 문을 연다. 그 시간에 연다는 사실을 안건 작년이다. 졸업 전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매일 학교에 나오던 시절이었다.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도 시간 낭비 같아 매일 점심, 학교 안 카페에서 크루아상과 아메리카노만 먹었다. 항상 같은 시간에 갔기에 항상 같은 빵만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한 학기 내내 먹었다. 조금 토할 것 같을 때는 학교 안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림 그리는 기계처럼 살았다. 안타깝게도 그걸 다시 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개강도 했고 첫 수업도 들었지만, 현실감이 없다. 학교를 너무 오래 다녔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번 학기의 수업이 두 개뿐이라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여전하다. 학교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건 참 쉽다. 이번 학기의 나는 그대로 역행할 수 없는 흐름에 휩쓸려 학교 밖으로 쏟아져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