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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Oct 04. 2022

27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나는 매일 월요일 점심으로 크루아상과 커피를 마신다. 매주 같은 카페, 같은 시간, 같은 메뉴를 먹는다. 그건 내가 크루아상을 좋아해서도, 그곳의 크루아상이 맛있어서도 아니다. 단순히 귀찮아서이다. 배를 채울 수만 있다면 버터와 밀가루에 불과한 것을 매주 먹어도 상관없다. 먹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지금의 배고픔을 넘겨버리는 것이다. 나의 허기는 단순한 편리함을 이기지 못한다.




사실 배가 부른 느낌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단맛이 나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매운 음식도 잘 먹지 못하고 기름진 음식도 좋아하지 않는다. 샐러드에 절대 드레싱을 뿌리지 않고, 탄산음료도 마시지 않는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을 싫어하는지 설명하는 것을 더 잘하며,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라고 하면 대답하지 못한다. 매일 같은 점심을 먹는 것은 그 이유가 가장 크다. 딱히 먹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고,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손님으로 가득한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일을 할 정도로 먹고 싶지 않다. 아무 노력도 없이 뭔가를 먹기 위해서, 나는 지금껏 먹어왔던 것을 지금껏 갔던 곳에서 또 먹는 것이다. 조금 토할 것 같고 먹은 직후 그 맛을 잊어버릴 정도로 무의미하지만 말이다.


이런 ‘특이 식성’은 어릴 때부터 조짐이 보였다. 먹고 싶지 않은 것은 절대로 입에 넣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급식 시간은 언제나 피곤했다. 특히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문제였다. 식판의 음식을 다 먹어야 한다는 규칙 때문에 나는 급식 시간이 끝날 때까지 버텨야 했다. 유치원을 다닐 때는 항상 다른 친구들이 음식을 먹고 놀러 가버릴 때, 아직 음식이 남은 식판 앞에 앉아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반에서 급식을 먹던 시절에는 항상 내가 마지막으로 음식을 버리고 급식 차를 가져다 놓았다. 김치를 먹지 않기 때문에 문제는 급식을 먹는 내내 해결되지 않았다. 그나마 급식실로 가서 먹는 방식으로 바뀌고 나서야 좀 더 자유가 생겼지만. 적게 달라거나 주지 말라거나 하는 말을 해도 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나는 본의 아니게 환경 파괴에 일조하게 되었다.


신입생 시절 한 번 먹은 것을 끝으로 학식과는 거리를 두었다. 친구들과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대충 그들이 선택하는 음식을 먹었다. 돈을 내고 음식을 다 먹지 못하는 건 억울했지만, 급식도 사실상 마찬가지라 차라리 맛있고 더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이 나았다. 내가 매주 감흥 없는 빵이나 먹으며 버티게 된 건, 고학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휴학을 하며 흩어졌고 나는 혼자 밥을 먹으며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졸업 전시 덕분에 집보다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거기에 세계적인 유행병까지 겹쳤다.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는 것은, 혼자서 하기에도 위험한 일이었다. 나는 카페의 구석 자리에 웅크려 앉아 재빨리 배를 채운 뒤에 다시 유화 냄새가 가득한 실기실로 기어들어 갔다. 가끔 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안 좋아질 때는 교내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었다.


별로 인간다운 삶은 아니었지만, 누구도 그런 걸 강요하지는 않았다. 먹는 것은 언제나 해야 할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의 뒷순위로 밀려났다. 세상에 맛있어 보이는 것은 참 많지만, 어떤 노력을 해서 그걸 먹으려는 사람과 그냥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나에게 음식은 언제나 그냥 그래 왔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좋기는 하지만, 그러지 못하다고 해서 기분이 크게 나빠지지도 않는다. 허기란 최대한 빨리 없애버려 할 방해물이지, 만족시켜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먹기 위해 산다고 하지만, 나는 살기 위해 먹는다. 하고 싶은 것들을 계속하기 위해 먹고, 배고파 힘이 빠질 일을 대비하기 위해 먹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먹는다.




내 주변의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은 나의 이유 없는 까다로움과 이를 완전히 무시하는 귀찮음에 경악하고는 한다. 점점 귀찮다는 이유로 가리던 것까지 먹기 시작했으니, 맛없는 음식을 단순히 편리하다는 이유로 먹는 것도 설명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맛없는 빵과 커피로 연명할 날들이 계속될 예정이다. 아마 커피의 온도만 바뀔 뿐 메뉴는 바뀌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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