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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점 Jan 27. 2021

귀국 직전에 잃어버린 여권

천국 같던 가족여행에서 여권을 잃어버리고 지옥을 경험하다

그동안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녀서 아시아나 마일리지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그 해 겨울에는 마일리지를 써서 일본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해외 출장 때문에 장기간 집에 없는 날이 많아서 항상 가족들에게 미안했는데, 이번에는 모처럼 목에 힘 좀 줄 수 있었다. “야, 이거 아빠가 그동안 출장 간걸로 가는 거야.” 일본 어디가 좋겠냐고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오사카랜다. 이유는 도쿄보다 후쿠시마랑 멀어서. 마일리지도 많겠다, 기왕에 가는 거, 비즈니스로 가기로 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비즈니스 타보겠냐. 얼른 항공권부터 예약했다. 일정은 3박 4일.


드디어 여행날이 되었다. 아시아나 라운지도 가 보고, 비즈니스 식사도 먹어보고. 오사카에 도착해서도 3박 4일 동안 재미있게 놀았다. 초밥도 먹고, 와규도 먹고, 이름 모를 길거리 음식도 먹어보고, 유니버설 스튜디오, 오사카성도 가 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것저것 사기도 많이 샀다. 예비로 가지고 간 가방도 모자라서 대형 트렁크를 하나 더 사야 할 지경이었다. 백팩 세 개, 어깨로 메는 큰 가방 두 개, 대형 트렁크 두 개. 3박 4일 네 식구 짐 치고는 참으로 많았다.


오사카 가족여행의 즐거웠던 순간들


2018년 2월 23일. 금요일. 여행 마지막 날. 즐거웠던 여행의 모든 일정을 끝내고 공항으로 가는 길. 숙소에서 공항으로 가려면 쿄바시역에서 전철을 타고 텐노지 역에서 갈아타서 공항으로 가면 된다. 우리는 넉넉하게 출발했다. 쿄바시역에서 전철을 탔다. 전철은 한산한 편이어서 앉을자리가 몇 개 있었다. 아이들과 와이프는 의자에 앉았다. 나는 잠시나마 쉬고자, 내 백팩을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와이프가 자기 달라고 하는 걸, 굳이 선반에 올려놓았다. 그때는 그것이 악몽의 시작이 되리라고는 전혀 몰랐다.


우리나라는 지하철 환승할 때 추가 요금을 내지 않는다. 그리고 표를 다시 사지도 않는다. (정자역처럼 일부 예외는 있지만) 개찰구를 통과한다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지하철 타기를 끝내는 것을 의미하지, 환승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일본의 지하철은 국철과 사철 두 종류가 있다. 사철은 운영 회사가 대여섯 곳이다. 운영 주체가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려면 개찰구로 나갔다가 표를 다시 끊어야 한다. 즉, 어떤 때는 그냥 환승하고, 어떤 때는 표를 다시 사야 한다. 이런 시스템을 사전에 알지 못하면 엄청 헷갈린다.


그 당시 나는 일본어를 전혀 읽을 줄을 몰랐다. 그리고 일본의 복잡한 지하철 시스템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남들은 쉽다는 지하철이 나에게는 미로처럼 어렵게 느껴졌다. 내가 타려는 전철이 맞는 방향인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갈아타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스트레스였다. 어서 와, 일본은 처음이지?


텐노지(Tennoji) 역에는 세 개의 노선이 있다


그날도 텐노지 역에서 갈아타는 것 때문에 긴장하고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갈아타는 데는 성공했다. 갈아타고 한참을 가서야 내 백팩을 선반에 두고 내렸다는 것을 알아챘다. 헉. 젠장. 망했다. 가만, 침착하자. 거기에 뭐가 들었더라? 중요한 것이 없으면 버릴 수도 있다. 생각해보니, 그 가방에는 와이프의 노트북과 우리 네 명의 여권이 들어있었다. 아, 최악의 상황이다. 하늘은 노래지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이제 어쩌지?


일단 다음 역에서 전차에서 내렸다. 식구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와이프는 “내가 선반에 놓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며 째려본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침착하자. 심호흡하고. 비상상황이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주위를 둘러보니 역무원이 보였다.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영어로. 역무원은 갸우뚱하더니, 사무실로 들어가서 태블릿을 가지고 나왔다. 거기에는 구글 번역기가 띄워져 있었다. 영어에 구글 번역기에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서 분실 경위와 가방의 인상착의(?)에 대한 설명을 간신히 마쳤다. 역무원은 가방을 찾으면 연락을 주겠단다. 엥? 그게 다야? 뭐 더 없어?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던가, 나같이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시설이 있다던가, 뭐 그런 거? 하긴,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역무원에게 뭘 더 바라겠는가.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역무원과 이야기하는 동안 마음은 좀 안정이 되었지만, 여전히 상황은 나아진 게 없었다. 여권이 없으니, 오늘 집에 가는 것은 물 건너간 거다. 비행기 표를 취소해야 한다. 비상상황이니 핸드폰의 로밍을 켜고 아시아나로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아시아나 직원은 편도 마일리지만큼 환불이 되겠지만, 300마일의 수수료가 들 것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지금 300마일 수수료가 문제냐? 그리고, 오사카에 있는 한국영사관을 가 보라며 전화번호를 문자로 주었다. 오, 이건 고맙다. 그래, 여권을 잃어버렸으니 영사관에 연락하는 게 맞지. 바로 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로밍 요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여권을 잃어버렸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지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이다. 그다음, 우리나라 영사관이나 대사관을 방문하여 여권을 재발급받아야 한다. 재발급에 필요한 서류는 ① 경찰서에서 발급받은 분실신고확인서 원본 ② 여권용 사진(2매) ③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④ 소정의 발급비용 등이다. https://www.korea.kr/news/reporterView.do?newsId=148852375


전화로 자초지종을 들은 영사관 직원은, 임시 여권을 발급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당장 와야 한단다. 그 날은 금요일. 5시에는 영사관이 문을 닫으니, 오늘 못 받으면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위치는 돈키호테 옆이라고 했다. 다행히 돈키호테가 어딘지는 알고 있었다. 그때 시각이 오후 4시. 시간 계산을 해 보니, 전철로 가면 얼추 5시 전에 영사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지고 있는 현금이 얼마 없어서 택시를 탈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우리처럼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임시여권을 만들어 준다. 임시여권은 여행증명서라고도 불리며, 목적지에 기재된 국가만 갈 수 있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효력이 정지된다. 유효기간은 한 달이다. http://overseas.mofa.go.kr/us-seattle-ko/brd/m_4721/view.do?seq=661734


5시 20분 전, 영사관 근처 전철역에서 내렸다. 우리는 일제히 영사관으로 뛰었다. 문 닫기 5분 전, 가까스로 영사관에 도착했다. 슬라이딩, 세이프!!! 문 닫기 직전이라 그런지 영사관에는 우리 식구와 직원들밖에 없었다. 바로 임시 여권 발급 절차에 들어갔다. 영사관에 있는 기계로 네 명 모두 증명사진을 찍었다. 걱정 어린 눈빛, 꾀죄죄한 표정, 초췌한 얼굴. 사진에 찍힌 표정이 다들 가관이었다. 영사관 직원이 경찰서에 가방 분실 신고도 해 주었다. 가방을 찾으면 연락을 줄 것이라고 했다.


급하게 발급받은 임시 여권 - 여행증명서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네 명의 임시 여권이 다 만들어졌다. 정문은 이미 닫혔으므로, 뒷문으로 영사관을 나왔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다음은 뭘 해야 하지? 우리 비행기는 이미 떠나버렸고. 밖은 깜깜하고. 갈 데는 없고. 날씨는 춥고. 배는 고프고.


일단 밥을 먹자. 사진을 찍고 여권 발급을 발급받느라 현금을 다 써버렸다. 근처 편의점에서 현금을 찾았다. 그리고 가까운 라면집에 들어갔다. 맛집인지 아닌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비상상황이라 돈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라면은 세 개만 시켰다. 라면을 먹는 사이, 나는 호텔스닷컴에서 근처 호텔을 뒤져서, 네 명이 묵을 수 있는 적당한 방을 찾아냈다. 당일치기로 구한 것이라 허름한 호텔에 가격도 비쌌지만 그런 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30분을 걸어서 호텔로 이동했다. 방에 들어가니 냉골이다. 히터처럼 생긴 것을 보니, 전부 일본어다. 직원을 불러서 히터를 켰다. 조금 기다리니 방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고, 나도 한 시름 놓았다. 속으로는 불안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식구들도 모두 같은 기분이었다. 서로가 애써 태연한 척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각자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밥은 먹었고, 오늘 잠자리도 마련되었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귀국 편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핸드폰에 항공권 관련 앱을 설치하고 검색에 들어갔다. 가장 가까운 날짜는 2주일 뒤에 있었다. 헉. 2주… 여기에서 2주를 더 있어야 한단 말인가? 직항 말고 경유 편을 알아보았다. 찾으면서, ‘이렇게 된 김에 삿포로에서 스키나 타고 갈까?’ 하는 생각을 1초 정도 했었다. 히로시마 경유, 후쿠오카 경유, 삿포로 경유, 심지어 홍콩 경유, 태국 경유 편까지 알아봤다. 한두 자리는 다음날에도 있었다. 순간 ‘따로따로 집에 가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여행맹인 와이프와 아이만 따로 보내는 것은 짐이 아니라 사람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계획이었다. 네 자리는 5일 뒤에나 있었다. 이거라도 예약을 할까? 너무 섣불리 예약하는 거 아니야? 더 좋은 솔루션이 있지 않을까? 당장 예약을 하기에는 5일은 너무 멀었다.


부산으로 가는 것은 어떨까? 부산에서 집까지는 기차로 가면 되잖아? 찾아보니, 월요일에 출발하는 에어부산에 네 자리가 있었다. 월요일이면 3일 뒤. 3일이면 감당할 만하다. 당장 예약하자. 결정은 내려졌지만, 예약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각종 인증 때문이었다. 주민등록번호랑 이름, 전화번호를 수십 번은 입력한 것 같다. 망할 놈의 사이트. 우리나라 사이트가 다 그렇지, 뭐. 그나마 결제는 익스플로러에서만 된다고 나오지 않은 게 어디냐? 30여분 씨름 끝에, 드디어 네 명의 예약과 결제까지 다 끝냈다.


예상치 못했던 3일이 더 늘었다. 3일이나 더 있어야 한다고 봐야 할지, 3일만 더 있으면 집에 갈 수 있다고 봐야 할지, 생각하기에 따라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기간. 식구들에게 3일 뒤의 비행기가 가장 빨라서 그걸 예약했다고 이야기했다. 다들 기한이 정해진 것에 안도했다.


하지만, 와이프는 그제서야 쌓였던 분노를 터뜨렸다. “내가 가방을 선반에 놓지 말라고 했잖아. 당장 가방 찾아와!!!” “아니, 잃어버린 가방을 내가 어떻게 찾아오냐고?” 여권은 새로 발급받았으니 가방은 잃어버린 셈 치라고 했더니, 그 가방 속에 들어있던 노트북에 자기 논문 쓴 것이 들어있단다. 당시 와이프는 야간대학원 졸업을 6개월 앞두고 졸업논문을 쓰고 있었다. 헉. 여권은 재발급이라도 받을 수 있지, 써 놓은 논문이 날라간 건 어떻게 수습할 방법이 없잖아. 이런, 컴맹 마누라 같으니라구. 혹시 메일함 같은데 남아 있는 건 없어? 그러게 구글독스를 썼어야지. 그러게 백업을 했었어야지. 그제서야 말해봤자 아무 소용없었다. 이건 진짜 어떻게 수습하지?


가방을 두고 내린 전차는 지하철 2호선처럼 둥근 순환선이었다. 혹시 아직도 그 전차가 뱅글뱅글 돌고 있지는 않을까? 일본인은 남의 물건에는 손을 대지 않으니, 아직도 가방이 선반 위에 있지는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이었지만, 마지막 희망이었다. 시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밤 9시가 넘은 시각, 호텔을 나섰다. 처음 탔던 쿄바시 역으로 갔다. 기억을 더듬어, 전철을 기다리던 자리로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전철을 타서 가방을 선반에 놓았었다. 전철이 도착할 때마다 재빨리 들어가서 선반을 체크하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두 시간 동안 수십대의 전철을 체크했는데,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빈손으로 호텔로 돌아갔다. 와이프의 2년간의 노력이 날라가는 순간이었다. 되살리려면 어떤 시간과 노력이 들는지 모른다. 와이프는 완전히 체념하고 있었다. 도저히 맨 정신에는 버티기 힘들어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잔뜩 사다가 먹고 뻗었다.


다음날 아침. 술기운으로 잠시 비어있던 머릿속은 다시 걱정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배고프다. 오늘은 뭐하지? 아참, 조금 있으면 체크아웃해야 되는구나. 어제까지만 해도 즐거운 관광객이었는데, 졸지에 갈 곳 없는 불법체류자나 노숙자 신세가 된 것 같았다. 오늘 내일 묵을 호텔이라도 예약을 해 놓자. 어디가 좋을까?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관광이나 더 하자. 일정이 3일 늘어난 셈 치면 되잖아. 오사카 옆에 교토라고 있네. 거기가 좋겠다. “얘들아, 오사카는 많이 봤으니, 오늘 내일은 교토를 보러 가자.” 호텔스닷컴으로 호텔을 예약했다. 뭘 할지 정해지니까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교토는 메이지유신 전까지 1075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우리나라 경주 같은 곳이다. 오사카와는 기차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다.


체크아웃을 하고 밥을 먹으로 근처 식당으로 갔다. 옆자리에는 양아치 같은 젊은 일본 남자가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난다요, 난다요~’ 거리며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그 앞에는 껌 좀 씹었을 것 같은 젊은 일본 여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영화, 만화에서나 봤던 전형적인 일본 양아치 느낌. 오토바이 타고 ‘오빠 달려~’하고 놀다가 밤새고 아침 먹으러 온 듯. 관광지를 살짝 벗어나서 그런가. 이 동네, 물이 안 좋구먼. 빨리 벗어나야겠다. 서둘러 밥을 먹고 나왔다.


교토로 가는 방법은 호텔에서 구글로 미리 알아보고 나왔었다. 전철과 기차를 갈아타서 교토 역에 도착했다. 호텔까지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여기도 유명한 관광지라서 그런지, 버스 안에는 현지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린 가뜩이나 짐도 많아서 더 힘들었다. 어찌어찌해서 겨우 호텔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보니, 이름만 호텔이지, 여인숙 같은 느낌이었다. 어제보다 더 비싸고 어제보다 더 허름했다. 에휴~ 어쩔 수 없지.


호텔 방에서 짐을 풀고 나니, 허기가 들었다. 점심은 편의점으로 해결하자. 누가 나랑 같이 나갈래? 큰 아이가 자청했다. 둘이 근처 편의점을 찾아 나섰다. 당시 중3이었던 큰 아이. 장녀라서 그런지 어제 오늘 내내 의젓하게 있었다. 짐짓 쾌활하게 아빠한테 농담도 건네고. 대견하고, 고맙고, 든든했다.


방 안에는 세탁기가 있었다. 그래, 여인숙 맞네… 마침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세제는 프론트에서 작은 봉지에 담아서 팔고 있었다. 한 움큼에 200엔. 도둑놈들. 터무니없이 비싸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빨래까지 하고 나니, 그제서야 한시름 놓게 되었다.


숙소 근처에는 기요미즈데라라는 절이 있었다. 우리 근처에 관광이나 갈까? 와이프는 내내 체념 모드여서 감히 말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아이들만 데리고 나갔다. 오르막을 30분 정도 걸어서 절에 도착했다. 휘휘 둘러보고 다른 길로 내려왔다. 그 길은 전형적인 관광지 길이었다. 기념품 팔고, 먹을 것들 팔고, 사람 많고, 북적대고. 기모노 입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 뭐 사고 싶은 맘도 별로 없고, 뭐 먹고 싶은 맘도 별로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만 않게끔 느릿느릿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기요미즈데라는 778년 헤이안 시대 초기에 설립된 절이다. きよみずでら, 清水寺. 우리 식으로 읽으면 청수사. 현재 볼 수 있는 건물들은 1633년에 재건된 것들인데, 못이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옛날 건물은 다들 그렇지 않나?)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벌써 저녁이 되었다. 해야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기 때문에, 빨리 가는 듯한 시간이 오히려 반가웠다. 저녁거리는 근처 마트에서 사 왔다. 일본 마트의 좋은 점은 가져와서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을 많이 판다는 것이다. 귀국 날까지 아직도 두 밤이나 더 자야 한다. 빨리 잠들어 버리자. 같이 사온 맥주를 한껏 들이켰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여인숙 같은 호텔에서는 조식을 주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아침거리를 사 와서 먹었다. 와이프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꼼짝을 하지 않는다.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나? 썩 내키는 일도 없었지만 할 일도 없었기에 또 나가서 무언가를 보고 오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근처에 헤이안 신궁이란 곳이 있네. 여기를 가보자. 아이들과 호텔을 나섰다.


헤이안 신궁은 1895년에 헤이안 천도 1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신사이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져서 그런지, 건축양식과 색 사용이 화려하다. 건물 뒤편에 큰 정원이 있다. 신궁 관람은 무료지만, 정원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20분쯤 버스를 타고 헤이안 신궁에 도착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휘휘 둘러보니 20분이 채 안 걸렸다. 이런, 너무 빨리 봐 버렸다. 더 시간 때울 데가 없을까? 한쪽 편에서 입장권을 팔고 있었다. 가격은 600엔. 소인 300엔. 무슨 입장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만 때울 수 있는 곳이면 그만이었다. 한두 시간 때울 정도면 가격도 비싼 편은 아니었다. 일단 표를 사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정원이었다. 추운 날씨 탓인지 사람들도 우리밖에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곳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간 곳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문을 열고 들어가서 만난 정원의 첫 모습은 너무 놀라웠다. 이런 게 일본식 정원이란 건가? 때는 2월이라 가지뿐인 나무들이 많았지만, 흙, 물, 돌, 이끼, 나무들이 적당히 어우러져 있는 조화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중간중간에 만나는 수로에는 졸졸졸 물이 흘렀고 오리가 노닐고 있었다. 길 경계로 놓인 돌에서는 세월이 느껴졌다. 한 그루 소나무에 덮여 있는 작은 섬. 병풍처럼 늘어선 대나무 숲. 다소곳한 찻집 건물. 오래된 돌다리. 참으로 아기자기하고 고즈넉했다. 비질 자국이 남아있는 흙길을 보며 어렸을 적 마당의 추억을 떠올렸다. 나중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면, 마당은 흙마당으로 할 것이다. 매일 아침 싸리비로 쓸어서 비질 자국을 남겨두리라. 적막하던 호텔방에서 벗어나 북적대던 관광지에서 벗어나 어두운 현실에서 벗어나, 타임머신을 탄 듯 공간이동을 한 듯, 고요하고 호젓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헤이안 신궁의 정원


한 시간쯤 돌아보니 어느새 정원의 끝이다.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여기엔 먹을 것이 없다. 아이들 밥을 먹여야 한다. 호텔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려서 점심 겸 저녁거리를 샀다.


방에 들어서서 핸드폰을 보니 처제한테 문자가 와 있었다. 지하철 분실물 센터에 가면 가방을 찾을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오, 맞네. 그렇겠네. 지하철역 직원, 공사관 직원, 왜 아무도 우리한테 이 이야기를 안 해준 거야? 인터넷을 찾아보니, 오사카 역에 분실물센터가 있었다. 내일 귀국 전에 저기부터 들려야겠다. 사라졌던 희망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날. 월요일. 귀국하는 날. 역시나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으로 아침을 때우고, 짐을 꾸리고, 체크아웃을 하고, 택시를 타고, 기차를 타고, 오사카 역까지 갔다. 물어 물어 분실물 센터를 찾아갔다. 직원은 영어가 능숙하고 사무적인 사람이었다. 분실 경위와 가방 색깔, 종류, 브랜드 등을 이야기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방은 여기엔 없다. 덴노지 역에 있다.” 아니, 이런 반가운 소식을 저렇게 엄숙하게 말하다니. 하여간에 고맙다. 야호~ 드디어 가방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처제도 고마워~~


일본 사람들은 웬만하면 다른 사람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래서 전철에서 가방을 잃어버리면 대부분 유실물센터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다른 일본인에게 했더니, 아니란다. 실제로는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바로 덴노지 역으로 이동. 물어 물어 분실물 센터에 갔다. 다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직원이 우리 가방을 가져다주었다. 가방 속을 보니 우리 물건들은 전부 그대로 있었다. 지옥 갔았던 3일이 한낱 시트콤 에피소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조마조마했던 가슴이 마침내 풀어졌다.


비행기 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바로 오사카 공항으로 이동. 체크인하고 나서 출국심사를 받으려고 줄을 섰다. 우리 차례가 되어 임시 여권을 내밀었다. “나, 여권 분실해서 재발급받았거든.” 말하니까, 갑자기 출국 심사관이 누군가를 부르더니 우리더러 옆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란다. 헉. 뭐가 잘못된 건가? 아무것도 모른 채 조마조마하게 사무실에서 기다렸다. 5년처럼 느껴진 5분 정도가 흘렀다. 이윽고 다른 직원이 오더니, 가도 된단다. 휴~ 뭔지 모르겠지만, 무사히 넘어간 것 같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행기에 탑승. 김해공항에 도착. 입국심사를 받으려고 줄을 섰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우리 차례가 되어 임시 여권을 내밀었다. “오사카에서 여권을 분실해서 재발급받았거든요.”하니까, 입국 심사관이 옆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란다. 우 씨, 또야… 직원에게 물어보니, 여권 분실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하는 것이란다. 고의적으로 분실한 것인지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잠시 후 우리는 풀려났다.


분실된 여권은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 그래서 여권 분실은 인터폴을 통해 국가 간에 공유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5년간 2번 분실하면 재발급 시 유효기간이 5년으로 짧아지고, 5년간 3번 또는 1년에 2번 분실하면 유효기간이 2년으로 짧아진다. http://overseas.mofa.go.kr/it-milano-ko/brd/m_7500/view.do?seq=1345290


어찌어찌해서, 김해공항을 나와 한국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변함없이 맑은 날씨였다. 택시를 타고 부산역으로 가서, 수원역까지 KTX를 탔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 마침내 6박 7일간의 대 여정이 끝났다.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했지만,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영화 같은 여행이었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일이 앞으로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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