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Day 31, 피스테라, 대서양에서
아침 10시에 겨우 일어나, 피스테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수많은 길은 '산티아고 데 콤프스텔라'가 최종 목적지지만 사실 끝은 아니다. 지도상으로 봐도 서쪽에 좀 더 가는 길이 있고, 진정한 끝은 바로 '피스테라'라고 하는 곳이다. 이 도시는 바로 대서양과 마주하고 있어 더 이상 서쪽으로 갈 길이 없는 진정한 끝이다. 거리상으로는 3~4일 정도를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산티아고까지만 걷고, 피스테라는 버스를 타고 간다. 물론 걸어서 가는 순례자들도 일부 있다.
우리 10명의 일행 중 4명은 이제 자유롭게 여행을 하러 떠났고, 남은 6명만 피스테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12시에 도착해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피스테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0.00km가 있는 비석을 향해 걸었다. 이 비석은 피스테라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과거에 이 길을 개척한 사람들은 여기를 '세상의 끝'으로 생각을 했다 한다.
한 40분 정도 언덕을 올라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0.00km가 새겨져 있는 비석은 과거에 훼손된 이력이 있었는지 굉장히 깨끗한 상태로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길이 없는 언덕 위에서 우리는 실컷 사진을 찍었다. 과거 이 장소에서는 순례자들이 자기가 신고 온 신발, 가방 등등을 태웠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환경 문제로 금지되었다 한다. 그래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놓고 간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장소에 내가 30일 동안 갖도 다닌 태극기를 꽂고 왔다.
오늘 같이 온 6명 중 3명은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가야 했기에, 내려와서 3명과 껴안으며 작별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알베르게에서 잠깐 쉬고 해가 질 때쯤 다시 0.00km 비석이 있는 세상의 끝으로 다시 올라갔다. 서쪽의 끝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갔더니 나 외에 많은 외국인들이 자리 잡고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대서양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 많은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처음 이 길을 알게 된 순간부터, 걷기롤 결심할 때, 시작할 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바로 어제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간까지 많은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 느낌이었다. 2시간 동안 앉아 있으면서 "이제 정말 다 끝났구나"라는 것을 실감했다.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는 바람에 일몰을 보지는 못했다. "이번 기회에는 해가 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나 보다" 생각하고, "언젠간 대서양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내려왔다.
밤늦게 남은 3명과 맥주를 마시며, 그동안 있었던 일, 서로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있었던 속마음을 얘기하고, "남은 여행도 잘 마무리 하자"고 서로를 격려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피스테라'를 끝으로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끝내고 혼자 스페인 남부의 '말라가'로 향했다. 저가 항공을 타야 했기에 반입이 안 되는 등산 스틱 등은 모두 버렸다. 말라가에서 관광을 하고 밤에는 같은 호스텔에 있는 중국인, 일본인 사람들과도 맥주를 마시면서 여행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근교의 하얀 마을로 꽤 유명한 프라힐리아도 다녀왔다.
그리고 코르도바, 톨레도를 거쳐 한국 가기 전 마지막 도시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마드리드는 예전에 여행한 적이 있었고, 별로 볼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딱 하루만 머물렀다. 그 머문 딱 하루가 마드리드와 리버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다. 호스텔 주인이 오늘은 모든 술집에서 다들 축구를 볼 거고, 심지어 버거킹에서도 축구를 볼 테니깐 늦게 들어오라 했다ㅎㅎ
거기서 나랑 순례길 여행을 함께 했던 KT를 만나 같이 바에서 축구를 봤다. 축구에 미쳐있는 스페인 사람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축구를 봤고, 3:0으로 마드리드가 이겼기에, 그날 마드리드는 엄청난 축제의 분위기였다.
그리고 다음날 마드리드에서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탔고, 40여 일간의 여행을 끝으로 무사히 한국에 돌아와 가족들을 재회했다. 그리고 약 한달 뒤, 예정되어 있는 회사에 입사해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