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만 잘 만들어도 베스트셀러가 된다
일반적으로 표지 디자인은 출판사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영역이다. 기획출판이든 자비출판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감 있게 끌고 나가는 기획출판과 달리, 자비출판은 기획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출판사가 제작비도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 출간에 따른 위험부담이 없기 때문에) 디자인까지 신경써주기 어렵다. 설사 기획력이 있다고 해도, 글의 주인인 저자의 의사에 거스르면서까지 디자인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이러나 저러나 표지 디자인에 대한 저자의 입장이 명확할수록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1. 장르에 따라 표지 스타일도 달라진다
책은 장르에 따라 표지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진다. 내 책을 내고 싶다면 내가 쓴 글과 관련된 장르, 분야의 도서들이 어떤 스타일의 표지를 두르고 있는지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우선, 문학 작품의 표지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문학작품 중 소설의 경우에는 표지로 책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경우가 대다수다. 베스트셀러인 <불편한 편의점>의 표지를 보면, 편의점 일러스트를 통해 직관적으로 책이 띠는 분위기를 드러낸다. 제목과 다르게 따스한 분위기의 일러스트가, 글이 따뜻한 내용임을 암시한다. <불편한 편의점>을 포함해 최근 색감이 예쁜 일러스트로 장식한 소설책이 늘고 있다.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문미순)도 그 중 하나다. 마치 인스타그램에서나 볼 법한 필터로 색을 보정한 예쁜 사진들처럼, 말 그대로 '예쁘게' 일러스트를 그려 소장욕을 자극한다. 이런 표지는 (매우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일본의 라이트노벨(Light novel)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표지부터 타깃 독자층이 젊은 세대임을 짐작케 한다. 그런가 하면, 무게감이 느껴지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표지를 택한 소설책도 여전히 많다. 표지만 봐도 (묵직한 메시지를 담았을 것만 같은) 정통소설의 느낌을 풍기고, MZ세대보다는 기성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느낌(애들은 가라)이 든다. 최근 베스트셀러 중에서는 <속삭임 우묵한 정원>(배수아 장편소설)의 표지가 이런 느낌을 풍기고 있다. (내용에 대한 평가가 아님을 유의하자) 만일 소설책의 표지를 생각하고 있다면 내 소설의 예상 독자가 누구인지, 주제는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자.
한편, 시집의 경우에는 같은 문학 장르라 해도 표지 스타일이 완전 다르다. 단색의 배경에 담담하게 작품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제목(주로 대표작의 제목)을 넣는 경우가 많다. 표지를 개성없이 단조롭게 꾸미는 정확한 의도는 뭘까? 유추하기로는 주제가 다양한 시를 하나의 분위기로 엮어내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상징으로 무장한 시의 특성상 시인이 자신의 의도를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실은 이런 트렌드는 '문학동네', '문학과 지성사' 등 시집을 출간하는 출판사들이 만들어낸 흐름일 수도 있다. (대형 출판사에서는 시집을 시리즈물로 출간하기 때문에,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단조로운 표지를 사용한다)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신용목)는 문학과지성사의 시인선 606번째 작품인데, 제목만 가리면 다른 시집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반대로 말하면 누가 봐도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책임을 알 수 있도록)로 단조로운 디자인을 하고 있다. 다른 사례를 보자. '난다'에서 출간한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한정원)은 그래도 작은 사진이 한 장 들어갔다. '봄날의책'에서 출간한 <미래의 손>(차도하)은 표지에 제목이 적혀있지 않은 굉장히 파격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다. (참고로 사이드에는 제목이 적혀 있다) 개인적으로는 추상성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시집 표지 디자인으로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문학작품 이야기를 길게 했지만, 내 책 <PSAT 원래 이렇게 푸는 거야>는 수험서라 위 경향을 따르지 않았다. 수험서라고 영역을 한정하면 너무 좁게 느껴지니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비문학 도서'(인문/교양, 과학기술 등 세부 분야를 모두 포함한다)로 범위를 넓혀 이야기해보겠다. '비문학 도서'는 지식을 전달하는 책인 만큼 신뢰도를 줄 수 있는 표지가 중요하다. 제목의 폰트부터 단단한 글씨체로 쓰는 경우가 많고, 표지도 진지한 느낌을 풍길 수 있도록 여백을 잔뜩 활용하거나 정제된 일러스트를 활용한다. "지금까지 쓰레기처럼 살아왔다면~?! 당장 이 책을 펼쳐 갱생해라!"와 같은 명령조 문구를 넣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표지에 '말을 많이' 적는 게 일반적이다. 책에 담긴 핵심정보 중 일부를 예비독자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책을 읽으면 이런 지식을 얻을 수 있겠구나'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앞 표지에 너무 많은 텍스트를 담기가 부담스럽다면 뒷 표지에 정보를 많이 담아도 괜찮다. 제목으로 관심을 끌어 뒷표지까지 읽게 만드는 전략이다.
나는 이같은 비문학 도서의 트렌드에 맞추어 앞표지와 뒷표지를 통해 어느 정도의 정보를 전달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2. 베스트셀러로부터 트렌드를 배우자
내 책의 표지 디자인을 결정하기 위한 가장 좋은 레퍼런스(참고)가 되는 자료는 요즘 잘 나가는 책, 베스트셀러들이다. 내용이 좋아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지만, 표지와 제목이 좋다는 이유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당장 인터넷 서점(교보, YES24, 알라딘 등)에 접속하여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피자. 1위부터 20위까지의 표지만 살펴도 대략적인 트렌드가 보인다.
한편, 시대를 초월한 스테디셀러들의 표지디자인을 참고할 때는 유의해야 한다. 참고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종류별로 나누어 잘 참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자아빠 가난한아빠>(로버트 기요사키)와 같이 긴 세월 독점출판을 이어오고 있는 스테디셀러들은 더 이상 표지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는 책이 아니다. 독점출판의 이점을 누리고 있기에 디자인에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단호해 보이기 위해 단조로운 표지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단색 위에 대비되는 색으로 제목만 크게 쓴다든지)
반면에, <데미안>, <어린왕자> 등과 같이 저자가 사망한 뒤 저작권이 풀려 누구나 출간할 수 있는 책의 경우에는 디자인을 참고하기 아주 좋은 표본이 된다. 동일한 책을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함에도 특정 출판사의 책이 유독 잘 나간다면,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판형, 디자인, 가격 등)에서 다른 책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어린왕자>의 경우 초판본 표지 디자인(위 세 가지 표지중 가운데)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출판사별 표지 디자인에도 큰 차이가 없지만(그나마 우측 표지가 새로운 편이다), <데미안>은 정말 갖가지 표지 디자인이 등장한다. 좌측 민음사의 클래식한 표지부터, 가운데 초판본 디자인을 따온 표지, 그리고 우측과 같이 젊은 세대를 겨냥한 표지까지 가지각색이다. 여러분의 입장에서 '읽고 싶은 디자인'은 어느 쪽인가? 나는 초판 디자인이 제일 마음에 든다.
3. 글의 분위기에 맞는 표지 톤을 정하자
이렇게 베스트셀러를 통해 트렌드를 알았다면, 내 글의 분위기에 맞는 톤을 정해야 한다. 나는 <PSAT 원래 이렇게 푸는 거야>가 수험서와 자기계발서의 특성을 두루 지니고 있고, 신뢰를 주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해 '네이비' 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네이비는 신뢰와 차분함을 주는 색이라, 면접용 정장, 넥타이 등에도 흔히 쓰인다.
물론 글의 분위기만 고려할 건 아니다. 서점에 진열되어 있을 때 눈에 띄기도 해야 한다. 그러니 너무 심심한 색은 고르지 말고, 조금은 눈에 띌만한 색(그러나 너무 흔하지 않은 색)으로 선택하자. 나의 경우엔 서점에 들러 비슷한 부류의 책들이 주로 어떤 색을 띠고 있나 보았다. 주황색~빨강색 계열의 눈에 잘 띠는 색을 사용하고 있었다. 은근히 파란색 계열이나 흰색 계열을 사용하는 책이 적었고, 그래서 나는 내 책 초판을 아이보리색 바탕에 파란색 글씨로 디자인했다.
4. 앞뒤 표지에 들어갈 문구를 정하자
톤을 잡았다면 앞뒤 표지에 들어갈 문구를 정해야 한다. 기획출판이라면 출판사에서 모든 문구를 정해주겠지만 자비출판(독립출판)에서는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저자가 모든 문구의 내용과 배열을 정해야 한다. 문학작품을 준비한다면 별다른 설명 문구가 필요 없을 수 있지만, 비문학 도서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면 (앞서 표지 디자인을 고민하느라 지쳤다할지라도) 이 과정 역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표지 디자인을 살펴, 다른 책들은 어떤 문구를 어느 위치에 얼마나 배열했는지 분석하자. 그 뒤 비슷한 느낌의 문구를 채우면 생각보다 쉽게 완성할 수 있다.
나는 책의 띠지를 제작하는 대신, 책 하단 1/4 가량을 검은색으로 처리해 띠지처럼 보이게 했다. (최근 띠지가 거의 이런 디자인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이 부분이 예비독자의 시선이 꽂히는 부분이라고 판단해 책의 강점을 어필했다. 그리고 뒷 표지에는 (다른 책들이 통상 그렇듯) 기존 독자분들이 남겨주신 후기를 적었다. 초판을 낼 때는 독자 후기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서평을 남기거나 추천사를 남기는 게 일반적이며, 마땅히 넣을 서평이나 추천사가 없다면 책의 내용 일부(한두 단락 정도)를 발췌해 넣기도 한다.
5. 디자인 참고용 책 몇 권을 정하자
디자인의 의도와 희망사항을 출판사에 전달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글이라면 직접 첨삭이라도 할 텐데, 저자가 그림까지 잘 그리기는 쉽지 않다. 직접 그릴 실력은 없으면서 추상적인 요구만 반복하다가는 디자이너와 갈등만 생길 우려가 있다. 빠르고 깔끔한 일처리를 위해서는 명확하게 요구사항을 전달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참고용 도서를 마련해두는 게 매우 도움이 된다.
내가 원하는 느낌의 디자인과 비슷한 느낌의 표지들을 출판사에 전달하면서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 주세요'라고 해야 출판사 디자이너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 다만 나처럼 표지를 100% 디자인할 생각이 아니라면, 디자이너에게 창작의 영역을 존중해주자. 직접 디자인할 실력은 없으면서 깐깐한 요구만 반복했다가는 디자이너가 실력을 발휘할 공간이 남지 않아, 오히려 좋은 결과물을 얻기 어려울 수 있다.
표지는 책의 얼굴이다. 성격(본문)이 아무리 좋아도 인상(표지)이 좋지 않으면 나쁜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다. 본문을 쓸 때 심혈을 기울인 만큼, 표지에도 최소 그만큼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10만부, 1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아닌 이상, 표지를 대충 만들 이유는 없다. 내 책의 장르와 내용, 그리고 내가 씌워주고 싶은 분위기와 이미지 등을 두루 고려해 좋은 표지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