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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때하자 Dec 15. 2023

표준계약서, 공정한 계약을 위한 컨닝페이퍼

표준계약서만 제대로 이해해도 내 작품을 지킨다

  창작자에게 작품은 자식과 같다. 특히나 독립출판은 더더욱 그렇다. 출판사의 기획력을 보태지 않고 오직 나의 노력으로 창조해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나 역시 내 첫 책 <PSAT 원래 이렇게 푸는 거야>가 어디 가서 실수하고 있지는 않은지(오탈자가 없는지), 교우 관계는 원만한지(온라인 서점 평점이나 독자 후기가 괜찮은지), 자기 밥벌이는 해 먹고 있는지(제작비는 건지는지) 등을 하루가 멀다 하고 신경 쓴다.

  이런 피붙이 같은 내 작품을, 계약 한 번 잘못 맺으면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 원치 않게 입양을 보내게 된다는 이야기다. (인생은 실전이야..) 지난 글에서 저작권의 개념을 익혔으니, 이제는 실용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 올바른 계약을 맺기 위한 창작자의 교과서, 표준계약서에 대한 이야기다. (미리 말해두지만 오늘 글도 길다..ㅠ 수많은 예비 작가분들이 투명하고 공정한 계약을 맺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다 보니.. 잔소리가 길어졌다)


<글이 너무 길어져 미안한 마음에 해둔 요약>

1. 계약서 쓰기 전, 정부에서 배포한 출판분야 표준계약서를 반드시 읽어 보자 (하단 링크 참조)

2. 저작재산권의 일종인 '출판권'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자

3. 독립출판이라면 계약기간은 1년으로 하자. 계약종료 시점과 연장조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

4. 인세는 45%~50%로 설정하고, 인세조항을 정확히 이해하자

5. 판매부수통지&수익정산에서 대부분의 분쟁이 발생한다. 월정산을 받고, 통지일자와 정산일을 명시하자

6. '총판업체'가 끼는 경우 수익정산이 불투명해진다. 가능하다면 대형서점, 온라인서점에만 유통하자!

 



1. 표준계약서는 모든 창작자의 필독서(?)다


표준계약서란 '계약 내용의 표준이 되는 계약 서식'으로, 불공정한 계약이 체결되는 일을 방지하고 계약서 작성 시 편의를 제공할 목적으로 정부에서 직접 제작해 배포하는 서식이다. 예술, 콘텐츠 등 창작분야의 표준계약서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개정 및 고시하고 있다. 표준계약서는 문체부 사이트 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국가법령정보센터->행정규칙->검색어 '표준계약서' 입력을 통해 확인할 수도 있다.


문체부 표준계약서 게시판 바로가기

국가법령정보센터 바로가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출판분야 표준계약서 10종을 비롯해, 방송, 만화, 영화, 게임, 공연예술, 미술, 저작권, 프로스포츠 등 15개 분야 82종을 배포하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준계약서의 존재조차 모른다. 특히나 독립출판을 계획하고 있다면, 부업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많기에 더더욱 알 도리가 없다. 네이버에서 '표준계약서'라고 검색해 봐도 광고비를 낸 사이트만 위에 주르륵 뜰뿐이다. 정부에서는 매년 홍보를 하고 있다지만, 밖에서 보기엔 한없이 부족하다. 다 돈(예산)이 없어서 그렇다.

  공무원 입장에서 내부 사정을 대변하자면 가장 확보하기 어려운 예산이 '홍보비'다. 홍보 비용은 정해진 단가가 없고(거의 시가 수준;), 돈을 쏟아부으려면 얼마든지 쏟을 수 있는 분야(일주일에 1,000번 송출하던 걸 2,000번 송출로 늘리면 단숨에 지출이 2배가 된다)인 데다, 삭감해도 크게 티 나지 않기 때문에 예산당국(기재부)에서 가장 먼저 절감하려고 노력하는 예산 중 하나다.


A(일선부처 공무원) : 홍보비 예산 5억 증액이 필요합니다.

B(기재부 예산담당자) : 지금 있는 돈으로 하세요. 5억 더 드려도 또 부족하다고 하실 거잖아요.

A : 뉴진스를 홍보대사로 쓰면 진짜 효과적일 것 같아서요.. 정책 수혜 대상이 청소년입니다.

B : 안 됩니다. 한 번만 더 요청하면 기존 예산도 삭감하겠습니다. 사무관님이랑 주무관님 두 분이서 홍보 모델하세요.


  대강 이런 식이다. 표준계약서는 해당 산업 분야에 처음 진입하는 초심자를 위한 자료이므로 다른 것들에 비해 홍보가 더 절실하지만, 역시나 홍보가 잘 될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출판분야 표준계약서라도 소개하려 한다.


  출판권 설정계약서부터 시작해 오디오북 제작계약서까지, 위 링크에서 전문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분야를 막론하고 표준계약서는 대략 3년의 주기를 두고 개정된다. 3년이란 얼핏 길어 보이지만, 담당자 입장에서는 쉬지 않고 개정작업을 해야 하는 수준의 빠른 주기다. (개정 논의에 통상 1년~2년이 소요된다)

  표준계약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업계와 달리 몇 년에 한 번 개정되는 만큼 현장의 생생한 계약 현황을 다 담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한번 찬찬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계약의 큰 줄기와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표준계약서를 바탕으로 내 계약서에 중요한 조문이 누락되어 있거나 업체에게 유리하게 작성돼 있는지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다.   


2. 표준계약서를 통해 계약의 주요 포인트를 짚어보자


1) 의미는 알아야 계약을 하지, 정의 조문 이해하기


  이제 함께 출판권 설정 표준계약서 제2조(정의) 내용을 보자. 모든 부분이 중요하지만 우선 제1호부터 제4호까지만 보자. 정의조문의 구조만 이해해도 계약서 전반의 내용을 살피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출판권 설정 표준계약서를 비롯한 출판분야 표준계약서 10종의 전문은 하단에 첨부한 한글파일을 통해 확인하자.

  출판권 설정계약서의 정의조문에는 통상 복제, 배포, 발행 등 저작재산권과 관련된 용어가 등장한다. 왜냐하면 '출판권' 자체가 저작권법(제63조)에 따른 저작재산권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출판권 설정 계약에는 저작재산권에 포함된 개념인 복제, 배포 등의 용어에 대한 정의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저작재산권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겠다면 앞선 글을 1 회독 더 하고 오자. (저작인격권 : 누가 친부모니? / 저작재산권 : 누가 자식에게 부양받고 있니? 의 차이다)


※ 저작권법 제63조에는 출판권이 따로 정의되어 있다. 참고 삼아 읽어 보자

<저작권법>
제63조(출판권의 설정) ① 저작물을 복제ㆍ배포할 권리를 가진 자(이하 “복제권자”라 한다)는 그 저작물을 인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문서 또는 도화로 발행하고자 하는 자에 대하여 이를 출판할 권리(이하 “출판권”이라 한다)를 설정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라 출판권을 설정받은 자(이하 “출판권자”라 한다)는 그 설정행위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출판권의 목적인 저작물을 원작 그대로 출판할 권리를 가진다.
③ 복제권자는 그 저작물의 복제권을 목적으로 하는 질권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질권자의 허락이 있어야 출판권을 설정할 수 있다.


이제 정의 조문을 보자.


제2조 (정의) 이 계약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복제 : 인쇄‧사진촬영‧복사‧녹음‧녹화 그 밖의 방법으로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유형물에 고정하거나 다시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2. 배포 : 저작물의 원본 또는 그 복제물을 공중에게 대가를 받거나 받지 아니하고 양도 또는 대여하는 것을 말한다.

3. 발행 : 저작물 또는 음반을 공중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복제배포하는 것을 말한다.

4. 출판권 : 출판사가 저작권자와의 출판권설정계약에 따라 인쇄 등의 방법으로 문서 또는 도화로 발행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출판권자는 설정행위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저작물을 원작 그대로 출판할 권리를 가진다.

5.~9. 생략   


  관계를 파악하기 쉽도록 주요 용어에 색을 칠해두었다. 제2조 제1호에 복제라는 용어부터 정의한 이유는, 제2호 '배포'를 정의할 때 복제의 개념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에서 제2호의 '배포'는 제3호 '발행'을 정의할 때 쓰이므로 먼저 정의되었다. 이제 눈치챘을 텐데, 제3호는 제4호의 출판권을 정의하기 위해 먼저 정의되었다. 즉 제1호~제3호는 모두 제4호의 '출판권'을 정의하기 위해 앞서 정의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자칫하다 영원히 팔려가요, 계약 기간(출판권 존속기간) 명확히 설정하기


  정의 조문은 실제 계약에서는 별 문제되지 않는다. 분쟁이 생기는 부분은 ①계약기간(+연장조건), ②인세 비율, ③인세 정산주기 및 판매부수 통지방식 등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 항목과 관련된 조문을 더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 먼저 계약기간과 관련된 조문이다.


<출판권 설정 표준계약서 中>

제6조 (출판권의 존속기간 등)  ① 출판사가 보유하는 위 저작물의 출판권은 계약일로부터 초판 1쇄 발행일까지, 그리고 초판 1쇄 발행일로부터 __년까지 효력을 가진다.
② 저작권자 또는 출판사는 계약기간 만료일 __개월 전까지 문서로써 상대방에게 계약의 종료를 통보할 수 있으며, 이러한 종료 통보에 따라 계약기간 만료일에 이 계약은 종료된다.
③ 제2항에 따른 종료 통보가 없는 경우에 이 계약은 동일한 조건으로 __년까지 자동 연장되며, 이 경우 출판사는 자동 연장 이전까지의 저작권사용료를 정산하여야 한다.
④ 출판사는 제2항의 계약종료 통보 기한 이전에 저작권자에게 제2항 및 제3항의 내용을 통지하여야 한다.     


  독립출판을 하는 경우, 계약기간(출판권 존속기간)은 1년으로 맺기를 권한다. 계약기간이 너무 짧아도 좋을 것은 없지만, 길어서 좋을 것도 없다. 스포츠 선수의 경우 신체노화로 인해 실력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장기계약을 맺어 활동기간을 보장받는 게 좋을 수 있겠지만, 창작 분야는 다르다. 계약기간이 길어지면 창작자에게 좋을 게 없다. 어차피 잘 팔리는 작품이라면 업체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기간을 연장하려 할 게 분명하니 계약기간이 짧더라도 창작자가 잃을 게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책이 잘 안 팔려 계약기간 종료 시점에도 재고가 남는 경우 잔여 재고 수백 권을 집으로 배송해야 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위 조문에서 다소 보완이 필요한 조항이 있는데 (표준계약서도 창작자 단체, 업계 유관 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완성하다 보니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바로 제4항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제2항에 따라 창작자(저작권자)는 출판사에 N개월 전까지 계약 종료를 통보할 수 있고 제3항에 따라 종료통보가 없으면 자동으로 계약이 연장된다. 독립출판의 경우 창작자가 본업이 따로 있어 계약 종료일자로부터 N개월 전이 언제인지를 놓칠 가능성이 높은데, (게다가 제1항의 '초판 1쇄 발행일로부터 __년까지'라는 조항 때문에 출판사가 정확한 계약종료일을 알려주지 않으면 더더욱 혼동하기 쉽다)  이를 출판사에서 반드시 통지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제4항에는 제2항, 제3항의 내용을 '언제 통지해야 하는지'가 명시되지 않았다. 막말로 출판사가 최초 계약체결 당시에 제2항과 제3항의 내용을 통지했다고 우겨도 할 말이 없다.


  극단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악질적인 출판사는 거의 없겠지만)


창작자 : 출판권 설정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종료하고 싶습니다

출판사 : 죄송합니다만, 계약기간 만료일 1개월 전까지 문서로 통보해주어야 하는데 만료일 27일 전에 통보하셔서 효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제3항에 따라 동일 조건으로 3년 더 계약이 연장됩니다.

창작자 : 아니, 제4항에 따라 저에게 제2항, 3항의 내용을 사전에 통지해주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출판사 : 최초 계약 체결일에 통지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4항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해도 제2항과 제3항의 내용이 무효가 되는 건 아니니 계약은 자동 연장됩니다.

창작자 : !!!!!

 

  계약기간은 대체로 책이 잘 팔리는 경우 문제가 된다. 안 팔리는 책이라면 출판사도 계약을 연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독립출판을 하는 경우, 작가가 모든 기획을 했기에 출판사를 중간에 옮기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어지간해서는 출판사를 옮길 일이 없겠지만, 정산을 제때 해주지 않거나 판매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주지 않는 경우 출판사를 옮기고 싶어질 수도 있다. 특히나 책이 잘 팔리는 경우에 더더욱 그렇다. 계약기간 조항이 모호하게 규정돼 있으면 자칫 원치 않는 장기계약(이를 통상 '노예계약'이라고 부른다)이 될 수 있다.  


  이때 창작자(저작권자)에게 조금 더 유리하게 계약하려면 아래와 같이 수정하면 된다.  

④ 출판사는 제2항의 계약종료 통보 기한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저작권자에게 제2항 및 제3항의 내용을 통지하여야 한다. 출판사가 사전 통지하지 않은 경우 제2항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자는 계약 종료일 전일까지 계약 종료를 문서로써 통보할 수 있다.

  그저 수정사례일 뿐이니 이대로 수정하란 얘기는 아니다. 다만 계약기간과 연장조건, 연장기간은 명확하게 설정하여 내가 원치 않는 시점까지 계약이 연장되게 하지 말자. 연예계의 사례이긴 하지만,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창작자(예술가)가 원치 않는 기간까지 계약이 연장되는 피해사례가 꽤 있었다. (당시 1위 연예기획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3) 제작비는 건져야지! 수익배분 비율(인세) 설정하기


  다음으로는 더 중요한 인세 조문이다. 표준계약서에는 '저작권사용료 등'으로 조문명이 규정되었지만, 출판업계 현장에서는 '저작권사용료'보다는 '인세'라는 표현이 더 널리 쓰인다.


제15조 (저작권사용료 등) ① 출판사는 아래와 같이 저작권자에게 정가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에 일정 부수(발행부수 또는 판매부수)를 곱한 금액을 지정 계좌를 통하여 저작권사용료로 지급한다. 이때 저작권자는 출판사에게 발행부수 또는 판매부수에 대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초판의 경우 도서정가의 ____%✕발행부수, 2쇄부터는 도서정가의 _____%✕판매부수 (      )
⬛도서정가의 _____%✕발행부수 (      )
⬛도서정가의 _____%✕판매부수 (      )
⬛기타 ________________________   
② 출판사는 __개월에 한 번씩 발행부수 또는 판매부수를 저작권자에게 통보하고 통보 후 30일 이내에 그 기간에 해당하는 저작권사용료를 지급하여야 한다. 만일 출판사가 발행부수 또는 판매부수를 약정기일 내에 통보하지 아니하는 경우 저작권자는 저작권사용료를 청구할 수 있으며, 출판사는 청구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이를 지급하여야 한다.
③ 저작권자는 납본, 증정, 신간 안내, 서평, 홍보 등을 위하여 제공되는 부수에 대하여는 저작권사용료를 면제한다. 다만, 그 부수는 매쇄 당 __%를 초과할 수 없으며, 출판사는 자세한 내역을 저작권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독립출판 계약과 일반적인 출판계약의 차이가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인세와 관련된 부분이다. 위는 일반출판계약의 경우이고, 독립출판에서의 인세 지급 조문은 위 내용보다 훨씬 단순하게 구성된다. 독립출판에서의 인세 조문은 아래와 같이 작성할 수 있겠다.

제00조(인세 지급)
① ‘출판사’는 서점에서 판매된 도서(마케팅 활용, 저자 증정본 등은 제외)에 한하여 ‘저자’에게 정가의 __%를 인세로 지급한다. 인세는 매월 __일 ‘저자’가 지정한 은행계좌로 송금한다.   
② (이하 생략)


  참고로,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일반출판에 비해 독립출판에서의 인세가 훨씬 높다. 왜냐면 일반출판과 달리 기획부터 출판비용까지 전부 작가가 책임지기 때문이다.


※ 독립출판과 일반출판에서의 인세 차이
  독립출판의 경우 제작비를 창작자가 부담하고 원고료나 선급금도 지급받지 못하는 대신 도서정가의 40~50%를 인세로 가져간다. 일반적인 출판계약의 경우에는 10% 내외의 인세를 설정한 뒤 원고료 또는 선급금(선급금은 원고료와 다르다. 원고료는 대가 없이 받는 돈이고, 선급금은 내가 받을 인세를 땡겨받는 개념이다)을 받는다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스스로 기획할 능력이 있고, 책을 많이 판매할 자신이 있다면 독립출판을 하는 편이 훨씬 인세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인세 비율을 정했으니 중요한 건 다 끝나지 않았냐고? 아니다. 더욱 중요한 (가장 많은 분쟁이 발생하는) 부분이 남았다. 바로 수익정산에 대한 내용이다.


 4) 불투명한 정산은 불신을, 불신은 분쟁을 낳는다. 깔끔하게 수익정산받기


  인세 비율은 계약 체결 전에 줄다리기가 있을지언정, 계약 체결 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계약 체결 전에 비율을 명시하기 때문에 추후 오해할 여지가 적고, 출판 업계 내의 인세 비율도 어느 정도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신생분야인 웹툰, 웹소설 등의 분야에서는 수익배분 비율을 두고 분쟁이 잦다)

  창작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인세 비율보다 수익 정산과 판매 부수 통지에 관한 부분이다. 책이 출간되는 시점부터 판매 부수는 작가의 최대 관심사가 된다. 자신이 세상에 펼쳐낸 글이 얼마나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작가가 과연 누가 있을까?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부모라 말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통해 대필했다면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다. 대필은 암암리에 이어지는 출판업계의 악습이다. 저 유명인사가 대체 언제 짬을 내서 책을 썼지? 싶다면 대필일 가능성이 있다)


  후일 속 썩고 싶지 않다면 수익 정산 주기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판매부수를 언제 통지받을지 명확한 날짜를 정해야 한다. 월 정산을 권장한다. 인세를 매월 정산받고, 판매 부수도 매월 통지받는 형식이다. 특히 작가가 본업이 아닌 대부분의 독립출판 작가들은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직장 월급일과 맞추어 두면 더 좋다. 월급이 늘어나는 기분이랄까?

  

  일반적으로 수익정산과 판매부수 통지에 관한 내용은 인세 지급 조항에 함께 규정된다. 위 예시로 든 독립출판 인세지급 조항에서 제2항을 생략했는데, 이 부분에 수익 정산에 관한 내용이 함께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아래 생략되지 않은 버전을 보자.


제00조(인세 지급)
① ‘출판사’는 서점에서 판매된 도서(마케팅 활용, 저자 증정본 등은 제외)에 한하여 ‘저자’에게 정가의 __%를 인세로 지급한다. 인세는 매월 __일 ‘저자’가 지정한 은행계좌로 송금한다.   
② ‘출판사’는 매월 10일 판매부수를 ‘저자’에게 통보하고, 같은 달 25일 ‘저자’가 지정한 은행계좌로 인세를 지급하여야 한다. 만일 ‘출판사’가 판매부수를 약정기일 내에 통보하지 아니하는 경우 ‘저자’는 인세를 청구할 수 있으며, ‘출판사’는 청구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이를 지급하여야 한다.    

  위와 같이 판매부수를 언제 통보(매월 10일) 받고 수익 정산은 언제 받을 것인지(같은 달 25일)를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날짜를 지정하지 않는 등 모호하게 규정하면, 하염없이 판매부수 통지와 수익정산을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수가 있다. 만일 아래와 같이 체결하면 어떨까? 아래 내용만으로 불공정 계약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저자의 머리털이 빠지는 계약이 될 소지는 충분하다. 

제00조(인세 지급)
① ‘출판사’는 서점에서 판매된 도서(마케팅 활용, 저자 증정본 등은 제외)에 한하여 ‘저자’에게 정가의 __%를 인세로 지급한다. 인세는 매월 __일 ‘저자’가 지정한 은행계좌로 송금한다.   
② ‘출판사’는 분기당 1회 판매부수를 ‘저자’에게 통보하고, ‘저자’가 지정한 은행계좌로 인세를 지급하여야 한다. 만일 ‘출판사’가 판매부수를 통보하지 아니하는 경우 ‘저자’는 인세를 청구할 수 있으며, ‘출판사’는 청구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이를 지급하여야 한다.
③ (이하 생략)

  제2항의 내용이 분기당 1회 판매부수를 통보하고 인세를 지급하는 것으로 달라졌다. 단순히 주기가 월에서 분기로 길어진 게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판매부수 통지 일자와 인세 지급일자가 명시되지 않은 게 문제다. 분기란 3개월에 달하는 긴 기간이다. 그중 어느 일자에 판매부수를 통지하고 돈을 지급할 것인지 명시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속 터지는가? 1분기(1~3월) 판매부수는 4월 10일에 통지하고, 돈은 6월 30일에 지급할 수도 있는데 기다릴 자신이 있는가? 난 없다.  

  출판사에서는 '계약한 내용대로 돈을 지급했다'거나,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왜 그리 기다리느냐'라고 말할 수 있다. (너 T야?) 그렇지만 작가에겐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단 몇 권이라도 내 작품이 세상에 나가서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 지난달보다 한 권이라도 더 팔렸는지 알고 싶은 게 창작자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계약을 맺어버리면 기다리다가 애간장이 다 녹아버릴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월정산으로 계약을 체결하자. 출판사에서 '저희는 분기 정산으로 하고 있어요'라고 고집하면 다른 독립출판사를 찾자. 월정산을 해주는 출판사도 많다.


  다만! 월정산으로 계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월정산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나도 그럴 뻔했고, 출판사와 협의 끝에 문제의 원인을 해소했다) 무슨 소리냐고? 바로 출판사와 서점 중간에 껴있는 '총판업체'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글을 마치기 전에 총판업체가 야기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정부가 두 팔 걷고 나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문제 원인을 지적함과 동시에 뜬금없는 정책제안도 해보겠다. (독립출판을 준비한다면 총판업체의 존재에 대해서도 꼭 알아두어야 한다)


 ※ 불투명한 수익정산의 원인인 '총판업체 유통' 문제를 꼭 알아두셔야 합니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 고도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이 열사 힘차게 힘차게 외칩니다! ㅠㅠ..)


  '총판업체'는 출판사 창고에 있는 책을 전국 서점으로 뿌리는 중간 유통업체다. 작은 출판사가 전국 수천 곳의 서점에 책을 직접 유통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역할을 대행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지역 서점으로 유통된 도서의 판매부수를 해당 도서가 절판(계약기간 종료로 인한 판매 중단)되기 전까지는 알려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통상 출판계약이 종료되면 서점에 남아있는 책은 '절판' 처리가 되면서 출판사 창고로 회수되는데, 이 시점에 이르러서야 (출고된 책 - 회수된 책)의 부수를 따져 실제 판매 부수를 계산해 낼 수 있다는 논리다.

 즉 '지역 서점에 뿌린 책이 실제로 판매되었는지 여부를 중간에 확인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둘러대는 것인데, 이런 사유로 계약기간 종료 후(최소 1년)에야 인세를 지급받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총판업체가 껴있는 경우 인세지급 조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제3항)이 추가된다.

제00조(인세 지급)
① ‘출판사’는 서점에서 판매된 도서(마케팅 활용, 저자 증정본 등은 제외)에 한하여 ‘저자’에게 정가의 __%를 인세로 지급한다. 인세는 매월 __일 ‘저자’가 지정한 은행계좌로 송금한다.   
② ‘출판사’는 분기당 1회 판매부수를 ‘저자’에게 통보하고, ‘저자’가 지정한 은행계좌로 인세를 지급하여야 한다. 만일 ‘출판사’가 판매부수를 통보하지 아니하는 경우 ‘저자’는 인세를 청구할 수 있으며, ‘출판사’는 청구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이를 지급하여야 한다.
③ 제2항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총판 업체를 통해 유통된 책은 매월 판매/반품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특성을 고려하여 3개월에 한 번 인세를 지급하고, 계약 만료 또는 연장 시점에 반품 및 재고를 확인 후 차액을 정산한다.

  위 계약서에는 3개월에 한 번 인세를 지급한다고 되어있으나, 판매부수를 추정하여 인세를 지급한 뒤 실제 계약 만료/연장 시점에 실재고를 확인하여 차액을 정산받는 구조이므로, 실제 판매 부수는 계약 만료/연장 시에나 알 수 있다는 의미다. (과다지급받은 경우 저자가 돈을 토해내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총판업체가 끼면 수익정산 구조가 순식간에 불투명해지고, 괜히 저자와 출판사 간의 신뢰에 균열이 발생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월정산해드릴게요. 근데 현실적으로 어려워요'라는 내용의 인세지급조항을 보면 누구라도 출판사가 말장난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출판사의 말장난이 아닌, 출판업계가 처한 구조적 문제다)


  현재 교보, 영풍, 알라딘, 예스24, 등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을 제외한 중소 지역서점에는 전부 총판업체가 책을 유통하는데, 나는 중소 지역서점에 책을 유통하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대신 출판사에게 신림, 노량진에 위치한 고시 서점 몇 군데에만 책을 직접 유통해 줄 것을 요청했다.


  총판업체를 욕할 일이 아니다. 총판업체가 유통하는 도서가 수십만 종 수천만 권에 달할 텐데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는 하루에도 수천 종의 책이 신규 출간되고 있으며 약 36만 종의 도서가 유통 중이고, 매달 900만 부 이상의 책이 판매되고 있다) 이 모든 책의 판매 부수를 땅끝마을 서점까지 정확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업계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유통망이 구축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에서 대형 서점부터 지역 독립서점까지 모두 활용할 수 있는 통합전산망을 깔아줄 필요가 있다.


  다행히 이런 요구에 부응하여,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지난 2021년 출판유통통합전산망(https://bnk.kpipa.or.kr/)을 구축하고 서비스를 개시했다. 현재는 전산망에 도서를 등록하는 것이 의무도 아닌 데다, 개별 도서의 판매량을 확인할 수도 없지만, 언젠가는 이런 기능도 제공해주지 않을까 싶다. (나는 계약서 내에 '출판유통통합전산망'에 도서정보를 등록해 줄 것을 출판사의 의무로 추가하였고 현재 등록한 상태다)

  출판업계의 불투명한 유통구조는 고질적인 문제다.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자기 책의 판매부수를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통지해 주는 판매부수를 믿지 못해 마음고생에 시달렸다. 이 문제를 뿌리 뽑으려면 현재의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을 고도화하여 국내 유통되는 모든 도서를 의무 등록하고, 개별 도서의 판매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영화 누적 관람객을 매일 집계할 수 있듯이 말이다.

  




  쓰고 보니 엄청 길고 어려워 보이지만, 한 번만 읽으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독립출판을 계획하고 작가를 꿈꾸고 있다면, 지루하더라도 이 글의 내용을 반드시 숙지해 두자. 이 글 한편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계약을 맺어 여러분의 작품을 지키고, 수십만 원, 수백만 원을 더 정산받을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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