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지켜도 성공적인 계약이 된다
앞서 저작권의 개념부터 시작해 표준계약서까지 소개했다. 원래는 출판계약 시 신경 써야 할 부분만 컴팩트하게 서술하고자 했으나, 기본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듯하여 덧붙인 내용이다. 무튼 어려운 얘기는 실컷 늘어놓았으니 이제는 실용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 반드시 파악해야 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출판사에게 위임된 권리의 범위 및 계약 기간
- 인세 비율, 지급 일자, 정산 주기
- 출판사 의무 (몇 개월 내에 출판하는지)
- 판면파일에 대한 권리
- 재고처리 및 저자증정본 비용처리 방법 등
차근차근 하나씩 살펴보자.
출판계약은 출판사가 '출판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따라서 위임되는 권리의 범위는 출판권에 한정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원고는 하나의 출판사에서 독점적으로 출판하므로, '배타적 발행권'을 부여하게 된다. 이때 모든 권리는 '계약기간'동안 한시적으로 출판사에 위임되므로 계약기간을 면밀히 살피자. 독립출판의 경우 통상 계약일로부터 1년(1쇄 발행일로부터 1년)을 계약기간으로 설정한다.
계약기간도 중요하지만 계약 연장 조건도 중요하다. 책이 잘 팔려 2쇄를 발행하는 경우, 계약기간이 2쇄 발행일로부터 1년으로 자동 연장되는 계약도 존재하는데, 이 같은 세부적인 항목을 잘 살펴 계약이 어느 경우에 연장되는지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나또한 <PSAT 원이푸>의 계약을 맺을 때 계약기간과 연장조건을 가장 먼저 체크했다.
일반적으로는 ‘계약기간 만료 1개월 전까지 상호 서면합의에 의해 연장할 수 있다’거나, ‘2쇄 발행 시 별도의 언급이 없으면 기존 계약과 동일한 내용으로 2쇄 발행일로부터 1년간 계약기간을 연장한다’는 내용을 넣곤 한다.
세간에서 '노예 계약'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대부분은 계약 연장 조항 또는 해지 조항에서의 문제로 인해 원치 않는 계약을 종결하지 못하는 경우를 일컫는다는 사실을 유념하자.
책을 판매했을 때 정가의 몇 %를 저자에게 지급하는지(인세 비율)를 살피자. 인세 비율은 도서정가에 대한 퍼센티지로 책정한다. 독립출판의 경우 제작비를 저자가 부담하므로 도서정가의 45%~50%가량을 저자에게 지급하고 있다. 계약은 쌍방의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므로, 인세비율이 이보다 낮다면 계약서 수정을 요청해도 좋다. 만일 도서의 할인가를 기준으로 인세를 지급한다는 둥 '도서정가'가 아닌 다른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 이는 통상적인 계약과는 다른 불공정한 소지가 있는 내용이 되므로 '도서정가'를 기준으로 인세를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하자. (모든 도서는 도서정가제에 따라 정가의 15%까지 할인 판매될 수 있다. 인세 50%를 가정할 때, 2만 원짜리 도서는 정가를 기준으로 권당 1만 원을 정산받지만 할인가를 기준으로는 8500원을 받게 된다. 즉 나의 인세도 15% 깎여 지급되고 그 차액을 출판사가 갖게 된다)
다음으로 인세 지급일자를 명기할 필요가 있다. 계약서에 지급일자가 '매월 20일', '매월 25일'과 같은 식으로 명확히 표기되어야 한다. '최대한 빨리 지급한다', '한 달 이내에 지급한다' 등 일자를 명기하지 않은 경우 분쟁의 요소가 되거나 극심한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수정을 요청하자. 제대로 일하는 출판사라면 정해진 날짜에 정산해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산주기도 매우 중요하다. 정산주기는 '매월'로 정할 것을 권한다. 혹시나 계약 논의 중인 출판사가 '분기'단위로 정산하거나 그보다 긴 주기로 정산을 한다고 하면, 월 단위로 바꿔줄 것을 요청해 보고 안 되면 출판사를 갈아타자. 독립출판은 저자가 제작비를 대는 시스템이므로 출판사가 지는 리스크는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따라서 저자가 출판사에게 끌려다닐 이유도 없다. 쉽게 말하면 저자가 곧 '물주'인 셈이다. 분기 정산은 1년에 겨우 4번 정산해 준다는 의미인데, 무조건 정산주기는 짧은 게 좋다. 월 정산으로 계약하자.
간혹, 저자는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는데 출판사에서 하염없이 교정을 미루거나, 교정이 끝난 원고를 인쇄소로 빨리 넘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 통상 교정은 3~5번 정도 보므로, 교정이 딜레이 되면 책의 출간일자도 그만큼 지연된다. 교정 한 번당 일주일씩만 지연돼도 1~2개월은 금세 지난다. 물론 교정에는 짧으면 며칠에서 길면 1~2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교정을 거듭할수록 시간이 덜 걸리긴 하지만 특히 1교, 2교 때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출판사에서 동시에 여러 원고를 작업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내 원고를 다 읽을 정도의 시간은 주자.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출간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경우에는 문의 후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출판 기한'이다. 이게 없으면 따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출판계약 시에는 출판사의 의무 조항에 '완전 원고를 받은 이후 3개월 이내에 이를 출판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삽입하자. 물론 3개월이 될지, 4개월이 될지는 계약하기 나름이다. 출판사와 협의하자.
당연한 것이지만 출판사는 저작물의 ISBN을 등록할 의무를 진다. 추가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을 운영하고 있으므로 이곳에도 도서의 데이터를 등록해 줄 것을 요청하자. 훗날 더 투명한 정산을 받기 위한 잠정적 조치이며 장차 출판사에게도 도움 되는 일이다.
저자가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면, 교정을 마친 뒤 '판면'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실제 인쇄할 때의 형태로 책의 레이아웃을 잡고 원고를 얹는 행위인데, 비유하자면 파워포인트(ppt) 슬라이드를 디자인하는 것과 같다. 이 부분은 저자가 할 수 없으므로 출판사의 디자이너가 담당하게 된다.
이렇게 작업한 파일을 '판면파일'이라고 하는데, 원고에 대한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더라도 교정 및 디자인한 판면파일에 대한 권리는 출판사가 갖는 게 일반적이다. 또한 이 부분은 계약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출판사가 출판권(배타적 발행권)을 지니므로 문제 되지 않는다. 문제는 계약이 종료된 후, 저자가 해당 도서를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하고자 할 때 발생한다.
저자는 판면파일을 출판사로부터 얻고 싶을 수 있는데, 계약들을 보면 판면 파일을 구매할 수 있다는 내용 자체가 삽입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관련 내용은 아래와 같이 삽입하면 된다. 출판사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는 내용이다.
제00조 [판면파일의 구매 및 양도]
① '갑'은 위 저작물이 수록된 출판물의 판면을 그대로 이용하여 전자책 등 비종이책의 제작을 제3자에게 허락할 수 없으며, '갑'이 이를 허락하고자 할 경우 위 저작물의 교정 및 편집에 따른 비용을 감안하여 '을'로부터 판면파일을 구매하여야 한다.
② 제1항에 따라 '을'이 '갑'에게 출판물의 판면파일을 양도하는 경우 그것의 구체적인 금액 등에 관한 사항은 별도 서면으로 합의하여 정한다. 이때 '을'은 '갑'이 제작비 전액을 부담하였음을 고려하여 객관적 근거에 입각한 합리적인 양도금액을 제시하여야 한다.
※ 갑 : 저자 / 을 : 출판사
일반적인 기획출판에서는 출판사가 책 제작비를 부담한 만큼 인쇄된 도서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 그래서 저자도 책이 필요한 경우 출판사로부터 자신의 책을 정가의 60%(서점 공급가격)에 구매해야 한다. 그러나 독립출판은 다르다. 저자가 제작비 전부를 부담했으므로 인쇄된 책 모두가 저자 소유다. 그러니 중간에 책이 필요해지면 출판사에 전화해서 몇 부가 필요한지만 이야기하면 된다. 택배비만 부담하면 공짜로 책을 받을 수 있는 게 정상이다. 만일 계약 내용에 저자 증정본(저자가 요청한 도서)에 대한 택배비 외의 비용이 책정되어 있다면 이는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삭제해야 한다.
한편, 계약기간이 종료된 시점에 남는 재고는 ①저자의 집으로 배송하거나, ②폐기 처분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전자의 경우라도 통상 택배비는 저자가 부담한다. 아무래도 재고가 많이 남는 게 아니라면 계약 기간을 몇 달만이라도 연장해서 재고를 최대한 털어내는 것이 좋겠다.
위 사항들만 잘 확인해도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제법 괜찮은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다만 위 사항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성공적인 계약을 위해서는 신뢰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출판사 중에 마음먹고 작가와 불공정 계약을 맺으려는 곳은 거의 없다. 출판 시장은 완전경쟁 시장에 가까워서, 부도덕한 행위를 하면 금세 퇴출되기 때문이다. 장사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정직하게 플레이하려 노력한다. 다만 출판사에서도 옆 출판사의 계약서나 과거의 계약서를 본떠오는 과정에서 문제 될만한 조항을 미처 없애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뿐이다.
혹시나 위 내용 중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 계약서에서 발견되더라도 출판사를 의심하거나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지는 말자. 좋게 이야기해서 대부분 수정 및 보완할 수 있다. 이것이, 일방적으로 내용이 주어지고 동의 여부만을 확인하는 '약관'과 달리 상호 합의가 가능함을 전제로 하는 '계약'이 지닌 장점이다. 계약은 파트너와의 상생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자. 저자와 출판사 간에는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윈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