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유행에 편승하다
쓸데 없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유용한 정보를 하나 전합니다. 제 사이트에 행정고시 2차 시험 답안 작성 팁을 전하는 글을 올려두었습니다.
작년 한 해는 여러 운동을 섭렵(?)하느라 바빴다. 맞다, 허세다. 실은 겉핥기만 잔뜩 했다. 테니스를 6개월 간 배웠고, 크로스핏을 세 달간 했다. 그 외에 틈틈이 헬스장에 다녔고(헬스는 군복무 이후 계속 조금씩은 하고 있다), 회사 직원들과 러닝도 시작했다.
러닝은 나머지 운동과 달리 시작한 계기가 특이하다. 나는 작년 한 해 회사 동기와 약 8개월을 함께 살았는데, 젤리와 사탕을 즐겨 먹는 요 녀석(건장한 30대 남성이다)이 글쎄 유일하게 하는 운동이 달리기라는 거다.
나름 이런저런 운동을 하며, 저속노화까진 아니어도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자 신경 쓰던 내게 동기의 식습관은 괴식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 놈이 달리기만큼은 나보다 본인이 잘할 거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게 아닌가.
그렇게 퇴근 후 집에서 몇 차례 도발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러닝에 흥미가 생기지 않아 혼자 뛰게 내버려 두었다. 대체 무작정 뛰는 게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그리고 다 뛰고 나서 젤리와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면 대체 왜 뛰는 건지 어느 하나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공기 내음이 향기롭던 5월의 밤, 같이 뛰겠냐는 습관처럼 던진 녀석의 제안에 “그래 너 얼마나 잘 뛰나 보자“며 화답(?)했다. 그게 러닝의 시작이었다.
제대로 된 러닝화가 없어 5년 가까이 착용해 뒤축이 터진 호카 운동화를 꺼내 신고, 크로스핏 갈 때 입던 운동복을 꺼내 입었다. 추울까 걱정돼 후드까지 턱 하니 걸치는 순간,
형, 그렇게 나가면 더울걸?
동기가 후드는 입지 않는 게 나을 거라는 조언을 건넸다. 하지만 순순히 말을 들으면 섭하지, 당연히 청개구리처럼 후드를 걸치고 나섰다. 어차피 패션러너이니 옷에라도 신경 쓰겠다는 심산이었다. (누가 본다고;)
익숙하다는 듯 코스를 안내한 동기는 내 페이스에 맞춰 뛰어주겠다며 앞서 뛰라고 얘기했다. 젤리인간쯤이야 이길 자신이 있었던 나는 그러지 말고 너 평소 뛰던 대로 뛰어보라며 거드름을 피웠다. 그게 녀석의 마지막 배려였던 것을..
녀석은 휙휙 치고 나갔다. 평소 헬스를 하므로 어느 정도의 기초체력은 자신했기에 따라붙었다. 그런데 이게 뭐지..? 생각보다 금세 숨이 가빠왔다. 군대에서 배운 습습후후(칙칙폭폭이라고도 한다. 두 번 들이쉬고 두 번 내쉬는 호흡법이다)를 반복하며 쉼없이 호흡했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녀석과 나의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얼마나 뛰었을까, 반환점에 다다랐다. 우리 집 앞에서 출발했는데 어느새 세종예술고등학교가 있는 나성동 끝자락까지 왔다. 이미 죽을 것 같은데 겨우 절반 왔단다. 남은 절반은 통제 범위를 벗어난 심박과의 싸움이었다. 쓰러지지만 말자는 생각으로 뛰었다. 녀석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집 앞에 다다라 녀석을 만났을 때 달리기를 멈췄다. 그런데 나한테 대뜸 “형 5km 채웠어?”라는 거다. 애플워치를 들여다보니 4.8km에 조금 못 미쳤다.
뭐 해 얼른 뛰어
녀석의 말에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남은 200여 미터를 더 뛰었다. 생애 첫 5km 달리기였다. 왜 5km를 채워 야 하는지 그땐 몰랐다. 후드가 너무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세종시 중앙에는 호수공원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일산 호수공원 앞에 살았던 내게는 단출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세종에서 몇 안 되는 ‘제대로 만든’ 장소 중 하나다. 처음 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사람들과 이곳을 다 같이 달릴 일이 생겼다.
태어나 두 번째 5km를 달렸는데, 이날 왜 5km씩 달리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같은 거리를 달려야 지난번에 비해 얼마나 실력이 나아졌는지 비교가 가능했다. 애플워치에는 온갖 디테일한 정보들이 기록되는데, 심박뿐 아니라 케이던스, 보폭, km당 페이스 등을 비교하다 보니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주 1회 뛰기 시작했다. 생전 안 달린 탓인지 뛸 때마다 눈에 띄게 실력이 늘었다. 누군가 달리기는 돈이 들지 않는 거지운동(?)이라고 했는데, 테니스나 골프에 비해 확실히 돈이 적게 들지만 그래도 지출이 없진 않았다. 러닝화를 구매하고 티셔츠, 자켓, 양말 등을 사다 보니 제법 출혈이 있었다.
아이템을 갖출 때마다 써보고 싶은 마음에 달리러 나갔다. 한 여름 7~8월에도 더위와 싸우며 뛰었다. 탈진하지 않은 게 신기할 따름이다.
러닝은 자신의 실력 개선을 눈으로 확인하기 매우 좋은 운동이다. 아마 수영, 자전거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거리를 정해놓고 운동하는 특성상 동일 거리를 몇 분 내에 주파했는지 비교가 매우 쉽다. 헬스도 무게를 조금씩 높여가며 운동하는 재미가 있는데 그보다 기록 비교가 훨씬 직관적이었다. (사실 헬스는 ‘잘하게 된 기분’이 드는 경우가 많을 뿐 실제로 실력이 그렇게 급상승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회사 사람들과 함께 뛰니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우리는 출발할 때와 도착했을 때만 인원체크를 하고 달리기는 각자의 페이스대로 뛴다. 일종의 점조직이다) 내적 친밀감이 형성되고 운동도 조금 더 열의 있게 참여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점점 운동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존재한다. 극한의 효율충인 나 같은 사람이나 생각할 법한 부분인데, 5km 달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처음에 비해 기록이 점점 단축됨과 동시에 운동시간도 줄어든다. 동일한 운동을 했는데 지난번 보다 적은 시간을 쓰게 된다니, 얼마나 좋은가. 하면 할수록 점점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동일한 자극을 얻게 되는 헬스 같은 운동과는 완전히 반대다.
그래서 요즘 주 1-2회는 달린다.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제법 상쾌하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달리기 대회에 나가 돈 주고 달리는 것. 대체 왜 돈 내고 뛰어야 하는가? 돌아오는 거라곤 별로 필요도 없었던 굿즈와, 산업쓰레기에 불과한 메달뿐인데 말이다. 나중에 메달을 갖고 싶을 정도로 근본 있는 대회(예를 들면 뉴욕마라톤? ㅎ)에 나갈 기회가 있다면 그때에나 한번 나가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