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외와 원고가 쌓이는 날
명절이 싫은 이유, 연휴가 싫은 이유, 연말연시가 싫은 이유는 다 같다. 하루 이틀 쉬자고 이게 뭔짓인가 싶을 정도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기 때문. 남들은 반갑게 맞이하는 연휴를 나는 한번도 즐거워 해본 적이 없다. 연휴가 생기면 남들 다 쉴때 나와 생방을 할것인가 아니면 이 날들을 뭘로 메우고 쉴 것인가, 명절엔 또 어떤 아이템으로 청취자들을 설득시킬 것인가. 왜 설득이냐고? 그래도 그 시간에 생방을 하지 않고 녹음 방송을 내볼 때는 그날 주제가 왜 그런지 정도는 이해가 돼야 하니까.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녹음 방송을 하면서 생방 만큼은 귀기울이게 해줘야하는게 예의니까. 정보가 있든 의미가 있든 뭔가는 있어야하는게 적어도 녹음 방송을 준비하는 제작진의 의무가 아닐까. 그래서 미리 녹음이 힘든 거다. 아이템부터 신중하게 정하고 원고를 쓸 때도 시의성은 빼고 혹시나 녹음해두고 방송이 될 때까지 생길만한 일들은 아예 언급을 안한다든지, 날씨 이야기는 당연히 빼야하고, 녹음을 하면서 방송될 시점에 대한 생각을 잊으면 안되는게 녹음이다. 올해도 연말연시는 찾아왔고 성탄절과 1월1일엔 뭘 할지를 한달전 부터 고민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은 인터뷰다. 한해를 빛냈던 스포츠계 인물을 12월25일에 성탄특집으로 준비하고 1월1일 새해에는 2024년의 주역을 미리 만나보시는 시간으로 하기로. 컨셉은 정해졌고, 이제 주인공을 정할 차례. 나는 1순위로 성탄절은 LG트윈스 차명석 단장, 1월1일은 탁구 삐약이 신유빈 선수를 찜했다. 가장 핫한 스포츠계 인물 중 2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션 클리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네트워크를 가동해 두 사람을 섭외하고 일단 곧 있을 크리스마스는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됐다. 청취자들에게 우리 프로그램이 줄 수 있는 최대의 성탄 선물이 뭘까를 생각하며 정한 아이템, 그만큼 공을 들인 덕분이지 섭외가 되니 그 다음 원고 작성, 그리고 방송녹음은 정말 수월하게 진행됐다. 차명석 단장의 언변이 큰 몫을 했지만 말이다. 왜 내가 1, 2부로 나눠서 제작하는 걸 생각하지 못했는지가 아쉬웠을 정도로 품격있는 인터뷰 태도, 멋진 목소리, 그리고 솔직하고 감동적인 내용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1월1일은 신유빈이다. 녹음 일정도 확정됐고, 담당 매니저와도 충분히 소통했으니 이제 원고만 쓰면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벌써부터 고민이다. 유명하면 할수록 정보는 많지만 자칫하던 이미 나온 뻔한 이야기들만 나누다 끝나는 수도 있기 때문에 스타선수 일수록 청취자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는 뭘까를 고민하며 써야하는 고충도 뒤따른다. 그래서 오히려 무명선수가 원고를 쓰는데는 수월할 때도 많다. 감동포인트만 잘 잡으면 그 선수가 살아온 길, 꿈을 이룬 순간 또는 힘들었던 순간, 그리고 앞으로의 바람들을 기승전결로만 잘 엮으면 되지만 많은 관심을 받고 이미 나와 있는 인터뷰들이 많은 선수들은 더 많은 자료를 찾아야하고 더 과거로 돌아갔다가 또 미래로 넘나드는 작업들을 여러번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그게 인터뷰 원고를 쓰는 재미라면 재미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니 차명석 단장 인터뷰를 내보내고 성탄절을 편하게 보내겠다는 내 계획은 착오였다. 적어도 성탄절엔 신유빈의 인터뷰 원고를 시작해야하니 말이다. 이미 나는 홀로 신유빈과의 데이트를 시작했다. 출퇴근을 하는 차 안에서, 자기 전에, 잠에서 깨어나 모닝커피를 한 잔 할 때도 나는 신유빈을 떠올린다. 이미 많은 걸 이뤘지만 더 많은 걸 이룰 수 있는 2024년의 신유빈을 그렇게 먼저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