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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Apr 02. 2024

노란 봄빛 아이들

춘분, 개나리처럼 병아리처럼

봄을 만나러 산에 가기로 했습니다. 춘분의 산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이들은 산에 가는 걸 겁내지 않아요. 날다람쥐만큼 빠른 아이들의 걸음을 제가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글쓰기 공책에 간식으로 먹을 빵과 우유까지 넣으니 가방이 꽤 무겁습니다. 아이들의 도움을 청해 봅니다.

"이게 무겁다고요? 한 손가락으로도 들 수 있는데요?"

"그래? 나는 무겁던데? 그럼 너희들이 번갈아 들어줄 수 있어?"

서로 먼저 들겠다고 손을 듭니다. 힘자랑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허세가 고마운 날입니다.


버스를 타고 서너 정류장을 갑니다. 금방 내릴 거라고 해도 친구 따라 요리조리 자리를 옮겨가면서 앉는 아이들의 얼굴에 설렘이 가득합니다. 산행이 힘들 거라는 걱정은 저 혼자 하고 있는 게 확실해 보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산에 오르기 시작하지만 아이들은 발걸음을 자꾸 멈춥니다. 벌써 힘들어서 그러냐고요? 그럴 리가요.

"이거 먹어도 되죠?"

"여기도 있어."

산길 옆 밭둑을 따라 어느새 꽃대를 올린 냉이꽃, 꽃다지꽃, 자주광대나물꽃을 찾느라 그런 거지요.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속살대며 꽃의 꿀을 빨아먹는 아이들. 모이를 주워 먹는 병아리 떼 같습니다. 얼른 정상까지 올라가서 글을 쓰자는 제 재촉이 들릴 리 없습니다.

뭐 그리 바쁘게 살 것 있나요? 먹을 수 있는 봄꽃이 피는 때는 요때뿐인 걸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꽃들로는 배가 차지 않는지, 아니면 가방이 무겁지 않다고 괜한 허세를 부렸다 싶은지, 얼마 가지 않아 간식부터 먹자고 합니다. 편평한 바위를 찾아 자리를 잡습니다. 달콤한 빵 냄새를 맡고 날아온 꿀벌 한 마리가 성가신지 손사래를 치며 쫓는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 줍니다.

벌아, 벌아 꿀 떠라~

연달래 따줄까, 지게달래 따줄까.

"무슨 노래가 그래요? 그거 부르면 진짜 벌이 가요?"

"우리한테 오지 말고 꽃한테 가라는 뜻이니까 알아들으면 가겠지?"


벌을 따돌릴 마음에 꽃을 따준다고는 했지만, 우리가 오르는 산에 진달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삼월삼짇날에 해먹을 진달래 꽃전은 다른 데서 공수해 와야겠군요. 대신에 아이들 손에는 노란 개나리가 들려 있습니다. 오늘 절기 공책의 주인공은 개나리 꽃이 되려나 봐요.

아니나 다를까. 선명한 노란빛이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아이들이 더 어렸던 일곱 살 때도 저는 아이들과 개나리꽃으로 자주 놀았습니다. 통꽃이라 마른 솔잎을 꽃 안에 끼워 머리핀을 만들어 주기도 했고, 속이 비어 있는 가지를 토막토막 잘라서 목걸이를 만들기도 했고요. 꽃들을 따서 미끄럼틀 위에서 날리면 헬리콥터처럼, 나비처럼 날아가 아이들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 앉기도 했지요. 벌써 몇 해가 지나고 산길을 오르는 발은 저보다 더 커졌는데도, 아이들은 봄따라 노란 봄빛 물이 드네요, 개나리처럼, 예전의 그 병아리들처럼.


길가에 자주 보이는 보랏빛 제비꽃 대신에 흰 제비꽃을 그린 아이도 있어요.

개나리처럼 흐드러지게 피지 않아서인지 너무 많이 따면 안 된다고 하네요.

이러구러 정상에 도착합니다.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리는 녀석,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녀석, 노란색 꽃잎을 파란색 물감으로 칠하고 까르르 웃는 녀석. 자세는 다르지만 지난번에 한 번 해봤다고 주저함은 없습니다.


그렇죠. 시작이 어려운 것뿐이죠. 씨앗이 흙 속에서 싹을 트기까지가 어려운 거지, 싹이 튼 다음에는 거침없이 자랄 겁니다. 밭에 심은 열무싹을 보아도, 일찍 심은 땅콩 싹을 보아도 앞으로 잘 자랄 일만 남았음을 알겠습니다. 초록옷은 입고 있지 않아도 그 생명력을 품고 있는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요,


춘분! 성장을 향한 달리기는 이미 시작되었으니까요.

참 장하지 않습니까? 저 여린 것들이 거름도 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거친 흙을 뚫고 올라왔다는 게요.
11년 전인 2013년 일곱 살 아이들의 눈에도 개나리와 진달래가 보였네요. 어머나! 그해에도 부활절은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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