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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May 14. 2024

브런치의 순기능

'그 사람이 했던, 어떤 좋은 일'이라는 연재를 시작하기는 했으나, 미리 생각해 둔 에피소드는 많지 않았다. 글감이 딸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으면서도 연재를 시작하게끔 했던 대여섯 개의 아이템은 내 글 어디엔가는 반드시 남겨 놓고 싶은 귀중한 경험들이었다. 오래되었으나 잊히지 않은 기억을 소환하여 글로 만들어 내는 작업은 나름 맛이 있었다. 바람에 잘 마른 달착지근하고 쫄깃한 곶감을 하나씩 빼먹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원래 다른 주제로 글을 쓰려고 했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요구르트를 벌컥벌컥 마셨다는 사연을 어떻게 쓸까, 머릿속으로 요리조리 구상하고 있을 때 톡이 울렸다.


우리나라에서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은 다 모여 있을 것 같은, 수만 명의 작가 또는 작가지망생이 '글'이라는 매개로 만나는 플랫폼인 이 브런치에서 알게 된 어떤 작가의 톡이다.


나처럼 가톨릭 신자인 그녀는 요즘 투병 중인 남편을 간호하느라 애쓰고 있는 중이다. 그가 보내온 톡에는 고운 화관으로 꾸며진 성모상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녀는 병원에 와서 기다리는 중에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다가 사진을 찍어 보내는 거라고 했다. 마치 두 손을 포갠 듯 보이는 동굴 안에 서 있는 성모상이 유난히 희고 곱게 보인다. 앞에 놓인 백색 꽃화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지나칠 수 있었지만, 기도를 하다가 사진을 찍어 보내 준 그녀의 마음이 5월의 훈풍만큼이나 따뜻했다. 사진을 다운받아 저장하면서, 문득 그가 다니는 병원에 근무한다는 또 다른 작가의 필명이 떠올랐다. 그 작가는 얼마 전 책을 냈다. 그 역시 만만치 않은 투병을 하면서도 굉장히 부지런히 글을 올려서 무척 인상적이었던 작가였다. 그가 낸 책을 읽으며 울다 웃다를 반복했던 것이 떠올랐다.  


알 수도 있지만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출간 작가님의 필명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뜻밖의 답신을 보내왔다.


"제 글에 이곳 사진을 올렸더니, 알아보시고 먼저 연락 오셨어요. 댓글로."


그러고 그에게 책을 직접 전달받아 읽었다고 다. 병원에 갈 때마다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을 그녀에게 그 작가가 내밀어준 책은 굉장히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브런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올린다. 그중에는 진실보다는 수익을 바라며 집필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나도 경험했던 바이지만, 매우 이상하고 해괴망측한(?) 사람들이 글 아래에 불쾌한 댓글을 달기도 하기에, 브런치라는 공간이나 활동하는 작가를 믿지는 않는다. 훌륭한 작가님들의 멋진 글들을 실컷, 그것도 공짜로 읽을 수 있고, 나도 내 글쓰기를 분발하게 하는 브런치가 고맙기는 하지만, SNS라는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불편한 관계들, 불쾌한 경험들이 적지 않기에 가능한 한 개인정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나 익명의 다수가 오가는 기차 플랫폼 같은 브런치에서도 간혹 이런 소중한 경험을 직접적, 간접적으로 한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같은 신앙 안에서 산다고 일부러 사진 한 장 첨부해 보내주는 고마움을... 그냥 모르는 척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 연락을 해서 책을 전달해 주는 손길을...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오랜 친구 수녀님의 톡을 받았다. 유튜브에 올라온 짧은 영상 하나가 첨부되어 있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희망이 지속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내 숨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잠시 느낀다. 수녀님이 영상을 내게만 보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것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마음, 그 누군가 안에 내가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고마운 선물다.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일 짧은 격려와 축복의 말들, 그런 것을 전하기에 SNS는 참 좋은 도구인 것 같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지 않아도, 구독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아도, 내 글이 메인에 올라가거나 어마어마한 라이킷이 달리지 않아도 제법 의미 있는 일을 할 수도 있는 곳. 오늘 찾은 브런치의 순기능이다.


아! 유통기한이 지난 요구르트 이야기는 다음주에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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