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방구리 Dec 02. 2024

촛불 하나면 충분하다

대림 제1주일 / 루카복음 21,25-28.34-36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깨어 있어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 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침 달력의 날짜도 1일입니다. 교회 달력으로는 오늘부터 전례력 '다해'로 들어가니, 새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대림절이 되면 어느 성당이든 네 개의 대림초가 제대 앞을 장식합니다. 푸른 나뭇가지로 장식을 한 대림환 가운데 명도 차가 다른 보랏빛 초들이 두 개 서 있습니다. 네 개 중에서 하나는 대림절 셋째 주인 '장미주일'에 켜게 될 분홍빛입니다. 마지막 주간에는 흰색까지 켜게 되는데, 어둠의 세상을 밝히러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강림이 가까워 왔음을 상징합니다. 오늘은 첫 주일이니 가장 짙은 보랏빛 초 하나에만 불을 댕기겠지요.


복음은 무시무시한 종말 예고로 시작됩니다. 자연재해를 실감하는 요즘에는 이런 복음 말씀이 과장된 협박으로 들리지만은 않습니다. 26절 말씀대로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이 만연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일이 일어나면 방공호로 숨지도 말고, 두려움에 떨지도 말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28절)라고 하시네요. 종말의 날에 우리는 구원될 거라는 약속입니다.


종말에 까무러칠 사람들(26절 참조)과 속량을 받을 우리들은 어떤 기준으로 나뉘게 될까요? 그리스도교를 믿는 신자들과 믿지 않는 사람이 기준이 될까요? 착하게 산 사람과 도덕적으로 죄를 많이 지은 사람으로 갈리게 될까요? 예수님이 제시하신 다음 구절을 읽어가다 보면 어떤 기준인지 답이 나와 있습니다. '늘 깨어 기도하는지'입니다.


'다해' 강론은 진짜 강론처럼 써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교리서에 나올 만한 전례 상식도 설명하고, 신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교리도 덧붙여 해설하고요. 위에 쓴 글들이 그런 글입니다. 그런데요, 그렇게 쓰다 보니 제 글맛이 살지 않네요. 저는 깊이가 없는 일개 '자매님'이니, 글도 그냥 제 깜냥 안에서 써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고쳐 먹습니다.


실은 이번 주 복음 말씀을 읽으며 제 마음에 박힌 구절은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34절)"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을 물러지게 만드는 원인은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이고요. 이에 해당하는 독일어 성경 표현은 "Hütet euch aber, daß eure Herzen nicht beschwert werden mit Fressen und Saufen und mit alltäglichen Sorgen"인데요, 제 마음대로 직역하자면 "먹는 것, 마시는 것, 그리고 날마다 반복되는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괴롭혀지지 않도록 너희 스스로 경계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먹는 것은 거의 (처)먹는 것, 마시는 것은 술독에 빠져 고주망태가 되는 것, 그리고 쓸데없는 걱정들인 듯합니다. 맞아요, 제게는 매우 익숙한 세 가지인데요, 그게 바로 제가 제 마음을 괴롭혀 왔던 것들입니다.


어느 핸가, 중국산 싸구려 소금을 속아 사서 김장을 담갔더니, 얼마 가지 않아 배추는 완전히 물러지고 김치에서는 쓴맛이 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 오히려 배추를 물러지게 하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지요. 마침 김장철이라 제게는 이 말씀이 마음에 더 다가왔나 봅니다. 내 마음에 잘못된 소금을 들이면 물러져서 먹을 수 없어 내다 버리게 될 터이니, 마음에 무엇을 갖다 넣는지 '깨어' 지켜봐야 한다는 말씀으로요.


신학을 공부하신 신부님을 흉내 내며 강론을 써 보려 했다가 제 색깔을 잊어버리고 만 글도 아마 제게는 '더 잘 써보고 싶은 욕심'이라는 소금을 뿌린 까닭이 아닌가 합니다.


달리기 경주는 출발선에 서서 신호총이 울려야 시작되는 게 아닐 겁니다. 달리기를 하기 위해 연습하고, 마음을 다잡고, 출발선에 서기까지 하는 모든 과정에서 이미 시작된 거지요. 대림절과 성탄절도 그런 거지요, 기다림부터가 이미 시작인 거요.


방에 초 하나만 밝혀 보세요. 네 개가 아니어도, 딱 하나만 붙여도 충분히 밝습니다. 그러니 초 하나를 켠 오늘이 성탄을 기다리기에, 내 마음을 지키며 깨어 기도하기에, 마음이 물러지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기에 충분한 날입니다. 독자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Das Kommen des Menschensohns]

Es werden Zeichen an Sonne, Mond und Sternen geschehen, und auf Erden werden die Völker voll Angst und Schrecken sein, denn das Meer wird donnern und toben, und die Menschen werden vergehen vor Frucht in der Erwartung der Dinge, die über die ganze Erde kommen sollen; denn die Kräfte der Himmel werden ins Wanken kommen. Und dann werden sie den Menschensohn in einer Wolke kommen sehen mit großer Kraft und Herrlichkeit. Wenn aber das alles zu geschehen anfängt, dann steht auf und erhebt eure Häupter, weil sich eure Erlösung naht.

[Ermahnung zur Wachsamkeit]

Hütet euch aber, daß eure Herzen nicht beschwert werden mit Fressen und Saufen und mit alltäglichen Sorgen und daß dieser Tag euch nicht plötzlich trifft wie eine Falle; denn er wird über alle kommen, die auf der ganzen Erde wohnen. Seid allezeit wach und betet, daß ihr stark genug seid, diesem allen, was geschehen soll, zu entfliehen und vor dem Menschensohn zu bestehe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