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베드라에서 칼다스데레이스로/ 그분은 짐만 보내라 한 적이 없거늘
"하루에 얼마큼 걸어야 하는 거지?"
고작 100킬로 남짓, 완주 인증서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거리를 걸을 거였으면서도 몇 번이나 계산해 보았는지 모른다. 운동 삼아 하루 삼십 분 걷는 것도 규칙적으로 하지 못했던 내 머릿속에서 평균 잡아 20킬로 이상 걸어야 한다는 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걷다 보면 가지 않겠나, 하는 막연한 믿음은 있었던 것 같다. 걸어야 하는 거리보다 더 감이 안 잡히는 건, 지고 가야 하는 무게였다.
새털만큼 가벼운 물건도 매의 눈으로 잡아 꺼내 놓은 건 비행기 수하물 때문이기도 했다. 단단한 캐리어만 사용해 봤지, 한 번도 배낭을 싸서 가본 적이 없는 우리는 도대체 짐을 어떻게 꾸려야 수천 킬로 떨어진 서녘 끝 나라까지 무사히 가져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들을 총동원, 60리터짜리 큰 배낭은 수하물로 보내고, 나와 딸이 메는 작은 가방은 기내에 들고 타기로 했다. 말이 작은 가방이지 무게는 10킬로그램에 육박했다.
남편이 라이터를 어디에 넣었는지 몰라 헤매는 통에 공항에서 짐을 완전히 풀었다가 다시 싸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튼튼한 김장 비닐을 둘둘 말아 포장한 수하물도 우리처럼 무사히 수천 킬로미터를 잘 날아서 왔다.
순례가 다 끝날 때까지는 튀르키예든 포르투갈이든 오로지 대중교통으로만 다녔다. 무거운 짐은 숙소에 풀어놓고 가벼운 차림이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렌트를 하지 않고 버스, 택시, 트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보는 것이 꽤 흥미로웠다. 대형 버스를 타고 태워주는 대로 따라다니는 패키지여행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아기자기한 재미였다.
하지만 그런 재미는 짐이 없을 때까지만 유효했다. 막상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되고 난 뒤, 내 몸이 감당하지 않으면 단 십 센티도 자기 스스로 이동하지 못하는, 내 몫의 짐 가방은 '웬수덩어리' 그 자체였다. 척추를 내리누르고 어깨뼈를 으스러뜨리는 것 같은 고통을 안겨주는 나의 십자가. 그렇다고 냅다 내던져 버릴 수도 없는 인생의 숙제 같은 것,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생존해야 하는 목숨의 무게 같은 것.
꼬박 이틀을 고생하고 난 뒤, 사흘째 되는 날 잠자리에 누워 끙끙 앓다가 급기야 남편에게 마음속에 맴돌던 말을 하고 말았다.
"여보, 우리 짐 말이야, 그거 다음 장소로 부쳐 주는 서비스 있다고 했잖아."
"동키 서비스?"
"응, 우리도 내일은 그거 한번 이용해 보면 어때?"
"그렇지? 너무 힘들지? 짐 없으면 그래도 걸을 만할 텐데. 알았어. 한번 찾아볼게."
남편도 어지간히 힘들었나 보다. 은근히 내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린 눈치 같기도 했다. 남편과 아들이 짊어진 가방이 훨씬 더 무겁기는 했지만, 짐을 따로 보내자는 말을 먼저 꺼내는 건 왠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휴대폰으로 동키 서비스를 열심히 검색하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찜찜하다. 짐을 내려놓기로 했으면 홀가분해야 하는데 오히려 보이지 않는 무게가 더해진 느낌이다.
'이 찜찜함은 뭐지? 동키로 짐을 보내놓고 걷는 순례길이 의미가 있나? 달랑 대엿새 걸으면서 그나마도 감당하지 못해서 내려놓는다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이 오지 않는다. 그간 걸으면서 자주 묵상했던 성경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그러네. 예수님이 무거운 짐을 진 자 오라고 하셨지, 무거운 짐만 보내라고 하지 않으셨네. 짐 없이 가면 반겨주지 않으실지도 모르겠군.'
곤하게 잠든 두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들은 짐이 무겁다고 투덜거리지도, 짐을 따로 보내자고 요청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의 책가방을 내가 대신 들어준 적이 거의 없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책가방을 열어 그 안에 든 물건을 덜어줬을지언정, 아이가 스스로 지고 가야 할 짐 자체를 없애 주지는 않았다. '자기 짐은 자기가 지고 살아가야지, 부모가 언제까지 책임져 줄 수 있나' 하는 다소 엄격한 생각 때문이었다.
"여보, 괜한 말 꺼내서 미안해. 우리 동키 하지 말고 일단 그냥 가보자."
"괜찮겠어? 보내자니 좀 찜찜하지? 사실 시간도 늦었고 주말이라서 지금 신청하기가 좀 어렵기도 하네."
내일이 된다고 해서 내 짐의 무게가 어제보다 줄어들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늘어나지도 않는다. 내 몫의 무게는 꼭 그만큼이듯, 내가 인생길에서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의 무게도 정해져 있을 터. 그 짐을 내려놓으면 순례를 마친다고 해도 왠지 당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도, 남편도, 딸도, 아들도 각자 자기의 짐은 자기가 끝내 지고 가야 하는 게 인생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십자가 총량의 법칙'이 있을 게다. 무거운 짐을 진 자에게 안식을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그 말씀을 믿어볼 수밖에. 내일도 다시 내 어깨에 질 수밖에. 마지막날까지 그렇게 걸어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