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은 화장실에서부터

칼다스데레이스로 가는 길 / Casa de la Misericordia

by 글방구리

배를 곯는 것보다 배를 비우는 일로 곤란을 겪는 때가 있다. 꼬르륵 소리가 나도록 허기가 져도 배 고픈 건 얼마간 참을 수 있지만, 배가 살살 아프거나 대소변 용무가 급해지면 단 몇 분도 참기 어려워지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오늘 모닝똥 성공했어?"

"오~ 축하해!"

순례길에 나서면 언제 어디에서 마음 편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니, 우리는 아침마다 숙소를 나서기 전에 서로의 뱃속 안부를 물었다. 볼일을 보았다는 말을 들으면 내 뱃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소식이 없더라 하는 말이 오가면 숙제를 마치지 못한 채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마냥 발걸음이 무거웠다.


폰테베드라 시내에 있던 숙소에서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걷다가 쉬다가 그렇게 두세 시간 걸었으려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바람에 우비까지 갖춰 입고 나니, 짐을 내려놓고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려면 여간 번잡스러운 게 아니다. 어지간하면 밥 먹을 만한 곳을 찾을 때까지 내처 걸으면 좋으련만, 갑자기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목적지는 아직 반도 오지 않았고, 쉬었다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뱃속의 신호를 무시하고 그냥 가던 길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참지 못할 상황이 온다면? 그땐 정말 수습하기 곤란하다!

'소식이 오려면 진작에 올 것이지. 이것 참 난감하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물으니 조금만 가면 작은 알베르게가 있는데 거기 화장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단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척 보기에도 꽤 오래된 듯한 작은 성당이 있었다.

'오~ 그라시아스~!'

낡은 성당 외관과는 달리 현대식으로 깨끗하게 마련되어 있는 화장실을 마음 편하게 사용하고 나서 성당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오른쪽에는 작은 경당이, 왼쪽에는 마치 방앗간처럼 보이는 공간에 성탄절 구유가 장식되어 있었다. 세요를 찍을 수 있게 놓아둔 앞쪽 탁자에는 성모상과 성경 구절을 적은 '말씀 뽑기 사탕'이 있었고, 또 다른 작은 탁자에는 밴드와 소독약 같은 비상약품과 생수, 초콜릿과 사탕이 놓여 있었다.


소박한 환대였다. 순례길을 걷다가 힘들면 누구나 들어와서 쉴 수 있는 곳. 열려 있는 경당에는 붉은 성체등이 켜져 있고, 유리창으로 비춰 들어오는 빛이 구유의 조명을 대신하는 곳. 목구멍에 쓴 물이 넘어오도록 힘들 때 초콜릿이나 사탕 하나로 충전할 수 있는 곳. 우리처럼 용변이 급한 경우에는 눈치 보지 않고 화장실을 사용하며, 발에 물집이나 작은 상처가 생겼다면 응급처치를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작고 다정한 공간. 낡고 축축하지만 따스함을 품고 있던 그 쉼터의 이름은 '자비의 집(Casa de la Misericordia)'이었다.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난 뒤라 그랬을까, '자비의 집'에서 가벼워진 마음으로 예상보다 길게 쉬었다. 그래도 다시 떠나야지, 마음을 다잡고 짐을 챙기는데 경당을 향하는 부산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크림색과 갈색이 섞인 수도복을 입은 한 수사님이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그는 우리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어디서부터 걸었는지를 간단히 묻더니, 부엔까미노, 친절한 눈빛으로 축복을 보내준다.

"Are you a monk?"

우리의 짧은 질문에 그는 환하게 웃으며, 자기는 수사이고 그곳에서 혼자 기도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곧 미사 시간이 되고 고해성사를 주러 가야 한다며 미안해했다.

'고해성사라고?'

나는 순례길을 걷는 동안 한 번은 꼭 고해성사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귀가 번쩍 열렸지만 수사님이 너무 바빠 보여서 차마 청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읽었는지, 가려다가 다시 되돌아보고는 우리에게 강복받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죠!' 우리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여 안수와 축복을 받았다. 마치 등 뒤에 꽃다발을 숨기고 있다가 내미는 것처럼, 순례길을 축복해 주시는 주님의 깜짝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가슴이 뭉클하는 그 느낌을 잊지 않고 싶어, 그곳에서 뽑은 말씀을 그날 내내 마음에 새기며 걸었다.

"So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 not be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Isaiah 41,10)

나는 어디에서나 인사를 잘하는 편이다. 버스를 타면서 기사님에게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그러나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기사님이 더 많다. 그럴 땐 왠지 민망해서 말끝을 흐린다), 택시에서 내릴 때는 반드시 "잘 태워다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안전 운전하세요."라고 말한다. 마트에 가면 오전에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하고, 해가 진 뒤에는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한다. 버스 기사님처럼 인사받지 않는 게 익숙한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환한 웃음을 띠며 내게도 고맙다고, 안녕히 가시라고, 좋은 날 되시라고 복을 빌어준다.


우리가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주고받는 것처럼 짧은 순례길에서도 '부엔까미노'를 숱하게 주고받았다. 나아가 아픈 곳을 염려해 주며 먹을 것을 흔쾌히 나누기도 했고, '자비의 집' 수사님처럼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하면서 우리를 위해 해주는 축복의 기도를 받기도 했다. 당신도, 나도 이 멀고 험한 길을 끝까지 잘 걸어내자는 다짐과 응원, 아낌없는 축복과 환대가 이 평범한 길을 거룩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내 집 앞을 지나가는 이들이 '급한 용무'를 해결할 수 있게 화장실을 열어주는 것이 어쩌면 산티아고가 아니어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환대인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택배 기사님,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초등학생, 배변 장애를 겪는 노인들. 이런 이들이 마음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자비의 집'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