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기 전에 눈을 떴다. 낮이 긴 여름에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려면 새벽이어야 한다. 새벽 5시, 어스름 날이 밝아오려고 하는 시간이었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마치 이미 일어나서는 알람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아들도 남편도 잠든 시간에 집을 나섰다.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길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때 방금 지하철이 출발했다는 안내글을 봤다. 아쉬웠다. 아마 십오 분은 기다려야 다음 지하철이 올 것이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서 미리 일찍 출발했다. 아침형 인간이 아닌 나에게 힘든 일이었지만 오늘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지하철이 왔다. 사람들이 많았다. 종점에서 탔는데 어느새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졌나 싶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도 어딘가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 사람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도시 풍경 속에 해가 떠올랐다. 건물들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따라오는 해를 보자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일출은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그걸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일출은 이벤트였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일출을 보기 위해 밤기차를 타고 간 적이 있었다. 경북의 어느 일출명소였는데 너무 고생해서 다시는 일출을 보러 가지 않기로 했다. 그날 정말 멋진 일출을 봤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춥고 배고프고 사람에 치였던 기억뿐이다. 몇 년 전부터 새해 첫날에 가까운 사찰에서 일출을 보고 있다. 사람들이 많지만 사찰 특유의 고요함이 일출을 더 숭고하게 만들어서 좋았다. 일출을 보고 나서 마시는 따듯한 차도 좋았다.
나에게 일출은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것이다. 언제나 산아래서 살짝 얼굴을 내민 해가 갑자기 급하게 불쑥 나타나는 것이 일출이었다. 도시의 건물 사이에 출근하듯 올라오는 해가 내 기억에 처음인 것 같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낮에 출근하는 일만 했기 때문에 나는 새벽해를 보면서 출근할 일이 없었다. 오늘부터 서울의 한 자사고에 진로독서 수업을 하게 돼서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수업은 더 늦은 시간에 있었지만 개학식 겸 교무회의가 있어서 일찍 가야 했다. 경기도에 사는 나는 모든 학교는 아침 9시에 1교시가 시작된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이라 그런 것인지, 자사고라 그런 것인지 아침 8시가 1교시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5시 30분에 집을 나서게 되었다. 새벽 5시라는 시간이 주는 막막함이 있었지만 막상 집을 나서고 보니 기분이 좋았다.
전철을 갈아타려고 기다리는데 한 할머니가 숨을 거칠게 쉬면서 승강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른 아침부터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목에는 목걸이형 선풍기가 걸려 있었다. 이렇게 이른 새벽부터 어디를 가시는지 빠른 걸음이었다. 그분도 오늘의 일출을 봤을까? 아니면 그분은 매일 해가 뜨는 시간에 집을 나서기 때문에 일출이 일상일까? 우연한 기회에 새벽 전철에서 본 일출 역시 나에게는 이벤트 같은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니 이 도시에서 일출은 일상이고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