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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Sep 13. 2024

편견과 오해사이

요즘은 차를 가지고 나가기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가 많다. 처음에 이곳에 이사 왔을 때는 버스를 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긴 배차간격과 돌아돌아 가까운 거리도 멀리 가는 버스지만 이용해야 할 때가 있다. 어제가 그랬다. 전철에서 내려서 우체국에 들러야 했다. 전철역과 우체국과의 거리는 걸어서 30분 거리였다. 더운 날씨에 걷는 것이 내키지 않아 버스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20분쯤 기다리니까 버스가 왔다. 자리가 많아서 앉으려고 보니 교통약자석이었다. 조금 더 뒤로 가서 앉았다. 앉은자리는 노약자석이었다. 버스에서 앞에서 네 줄은 교통약자나 노약자의 자리다. 어차피 빈자리도 많은데 그냥 앉아 가자 싶어서 그냥 앉아가려고 하는데 뭔가 불편했다. 그래서 뒷자리로 옮겼다. 문에서 먼 자리는 일반석이었다. 자리를 옮기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괜히 남의 자리에 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버스를 탈 때마다 이상했다. 도대체 교통약자석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게다가 왜 교통약자석과 노약자석을 따로 구별해서 더 많은 자리를 비워두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내가 일부러 비워둔 노약자석에 누군가 앉았다. 많아야 22살쯤 된 남자였다. 노약자석이라는 문구를 본 것인지 못 본 것인지 별 불편함 없이 편하게 앉아있었다. 순간 뭔가 내가 너무 미련했나 싶은 생각과 함께 그래도 노약자석인데 뒷자리로 옮기지 않는 그 남자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뭐 남의 일이고 사실 자리가 많이 비어있어서 별 상관은 없어 보였다.


다음 정류장에서 어린아이 두 명이 탔다. 뒷좌석으로 가던 아이가 문제의 남자옆을 지나가다가 미끄러졌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넘어질뻔한 것이다. 남자가 앉은자리옆 통로에 하얀 서류봉투 두 개가 떨어져 있었는데 아이는 봉투를 밟고 미끄러진 것이다.  잠시 후에 그 남자가 서루봉투 두 개를 주워서 자기 가방옆에 두는 것이 보였다. 사실 그 봉투는 그 남자가 타기 전부터 거기에 있었다. 그러니까 그 남자의 것은 아니었다. 그 남자는 걸어가던 아이가 넘어질 뻔한 것을 보고 또 다른 사람이 넘어질까 봐 봉투를 치워둔 것이다. 나도 그 봉투를 봤지만 나는 그냥 저건 왜 저기 있지? 궁금해할 뿐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 마음에 불편하게 자리 잡았던 편견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남자가 노약자석을 무시하고 앉았을 때 조금 불편했다. 뭔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그래서 그 남자에게는 배려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남자가 봉투를 치워준 것이 그 남자의 인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을 한 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나에게 가르쳐줬다.


오늘 지하철을 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내 앞자리에 앉았다. 키가 크고 마른 몸이었다. 화장기가 전혀 없는 얼굴인데도 예쁜 그런 사람이었다. 스타벅스 장우산을 접어서 의자팔걸이에 걸고 분홍색 마스크를 꺼내 썼다. 내 앞에 앉아있어서 나도 모르게 보게 된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의 발아래에 핑크색 스티커, 임산부석을 알리는 표시가 있는 것이 보였다. 단정하고 예쁜 그녀가 임산부석에 뻔뻔하게 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실망스러웠다. 요즘 학생들 중에는 아마 이런 규칙들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그녀의 에코백에 걸려 있는 임산부배지가 보였다. 그녀는 임산부였던 것이다. 너무 어려 보이고 마른 체형이라 내가 오해를 한 것이었다. 그녀가 임산부배지를 가방에 걸어두지 않았다면 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배려 없음을 비난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앉은 임산부석 반대편 임산부석에는 60대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임신을 하신 것은 아닐 텐데 아마 그분이야말로 임산부석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보면서 임산부석을 편하게 사용하시는 모습이 신기했다. 임산부석이라는 것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자신도 교통 약자니까 같이 쓰자는 마음이었을까? 나는 다른 어떤 자리보다도 임산부석은 비워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임산부들은 그 자리가 비워있어도 배지가 없으면 사용하기 편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임산부석이 없기도 했지만 있어도 사용하지 못했을 것 같다. 만삭의 몸으로 지하철을 타도 양보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임산부석은 누군가 앉았다가 임산부가 타면 양보하면 되는 자리가 아니다. 그냥 비워둬야 한다. 그래야 대학생처럼 보이는, 몸이 마른 초기 임산부들도 마음 편히 앉아 갈 수 있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사람을 보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막힌 사람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작은 규칙을 어겼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닌데 그 사람의 인성을 스스로 평가했다. 겉모습만 보고 그녀가 임산부를 배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바로 배려받아야 할 임산부인데도 말이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편견이나 비뚤어진 시선으로 보고 싶지 않은데 쉽지가 않다. 책을 읽고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부족함을 채워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난 많이 모자란 사람이었다. 마흔이 훌쩍 남은 나이에 나는 아직도 실수가 잦다. 아직은 더 배우고 더 자라야 할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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