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델발트의 꽃

by 아침엽서


오늘은 베이스캠프인 그린델발트를 발길 닿는 데로 걸어보자며 집 아니 숙소를 나왔다.


그린델발트역에서 숙소까지 갈 때 타는 122번 버스는 그린델발트 성당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언덕아래에서 하차해서 우릴 내려주고 더 아래쪽으로 떠났다. 우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 성당에서 돌지 않고 직진하는 길, 트레킹코스가 있는지 백팩을 멘 트레킹 여행객들이 오가는 그 길이 어디로 향해있는지 궁금해서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걷기 시작해 얼마 되지 않아 경사가 심하고 구불구불한 길로 들어섰다. 예쁜 샬레숙소들과 작은 가게들이 심심찮게 나타났다. 둘째 딸은 여기저기 살레를 가리키며 급하게 숙소를 구하느라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이곳 숙박 샬레 대부분에 메일을 보냈는데 빈 숙소가 없었다며…


딸의 회사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근황 토크를 하며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햇살은 점점 뜨거워지고 그늘을 가릴만한 가로수도 없었다. 오랜만에 이야기꽃을 피웠지만 더운 날씨에 지쳐, 그늘을 찾아 아래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성당 앞으로 돌아온 우리는 그린델발트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작고 아담한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당안쪽에 소박한 꽃들로 장식된 정원이 나타났다. 신도분들로 보이는 분들이 작고 앙증맞은 꽃들을 심고 계셨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다듬는 손길 덕분이다. 수시로 살펴보고 물과 양분을 주고 진잎을 따주고, 말도 걸어주는 일들이 그들을 빛나게 한다.


좀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작은 묘지가 나왔다. 칸칸이 나누어진 작은 공간이지만 십자가와 정성스럽게 키운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십자가나 비석이 없었다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적당히 나눠 학급당 하나씩식물을 키우기 체험하는 작은 꽃밭 같은 모습이다. 죽은 자와 산자가 함께 하는 공간, 우리와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성당입구- 아마도 미사 중인지 주차 중인 차들이 많다.
유럽에서 흔히 보는 성당과 성당안의 묘지


성당을 나와 122번 버스를 타고 마을 아래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지나 던 버스가 내려 준 곳은 작은 협곡 Gletscherschucht(글레처슐루흐트)였다. 고대 아이거 빙하의 아랫부분이었던 곳이 녹으면서 형성된 웅장한 빙하 협곡인데, 안쪽에 1km 길이의 산책로가 있고, 300m 높이의 거대한 암벽 사이로 빙하를 볼 수 있다는데 우린 그냥 나왔다. 이제 빙하 그만 봐도 되겠다. (스위스 트래블 카드 할인 가능)


협곡 입구- 아치형 다리 밑으로 협곡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그리고 그린델발트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화려한 꽃들을 만났다. 자세히 보아야 이쁜, 오래 보아야 이쁜 꽃들과의 만남이다.

두 팔 벌려 나팔을 부는 듯 마음껏 하늘을 향한 꽃, 진노란색 수술과 분홍 꽃잎을 가진 이 꽃은 만데빌라이다. 스위스의 작은 산골마을, 험준한 봉우리들 사이, 카페와 호텔 사이, 여행객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에서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덩굴식물인 만데빌라는 안쪽에 박힌 기둥을 타고 올라가 내 키보다 더 큰 키를 자랑하며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꽃은 우리나라에서도 관상용으로 많이 키우는데, 나도 오래전에 키운 적이 있었다. 유난히 반짝이는 진녹색 잎과 화려한 꽃이 예뻐서 들였는데 자꾸 눕는 바람에 나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렇게 잘 크고 있는 걸 보니 내 옛날 만데빌라에게 미안해졌다.



임파첸스


길가에서 만난 임파첸스, 인파첸스 개화시기가 봄부터 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피기 때문에 겨울을 제외하고 일 년 내내 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보는 임파첸스는 서양봉선화 또는 아프리카 봉선화라고 불리는데, 이 꽃이 지고 난 후 꼬투리를 살짝만 건드려도 씨앗이 톡 하고 터져 나오는 모습이 우리 봉숭아(봉선화)와 닮아서라고 한다. 그늘에서도 잘 자라서 키우기 쉬운 식물인 인파첸스가 운치있는 고목 화분 속에서 다양한 색들로 존재감을 뽐내며 피어 있었다.



창틀에 피어있는 제라늄.

샬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베란다 화분, 태양의 빛을 흠뻑 머금은 제라늄의 붉은색이 강렬하다.


갈색으로 변해가는 잎 때문에 더 빛나는 빨간 열매.

윤기가 흐르는 열매의 빨강색이 열매라기 보다 오히려 보석같다.(백단나무: 겔더 로즈)


대상화

이 꽃은 종이꽃 같지만 실제 초원에서 만난 꽃이다. 진한 분홍꽃잎과 노랑수술이 영락없이 조화 같다.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 꽃의 이름은 대상화. 가을에 피는 모란이라는 추목단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었는데, 내겐 생소한 꽃이었다. 어떻게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신기했다.



환타지아

멀리서 보면 무궁화를 닮은 이 꽃은 환타지아다. 솔라늄이라는 품종을 보기 좋게 개량하여 환타지아라는 꽃이 만들어졌다는데 진노랑 암수술과 짙고 선명한 보랏빛 꽃잎이 오가는 여행객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아스터

우리나라 구절초나 쑥부쟁이와 비슷한 이 꽃의 이름은 아스터꽃. 구절초는 수술이 끝까지 노란색이고, 아스터는 점점 갈색, 보라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맺힌 이슬방울이 선명하다.


내가 좋아하는 연한 보랏빛 꽃을 피우는 아스터꽃은 알프스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아스터는 그리스어로 별을 의미하는데, 꽃잎이 사방으로 뻗어있는 모양이 밤하늘의 별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산지대에서 볼 수 있으며 추운 기후와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견디는 강인한 생명력이 특징이다. 꽃말은 추억과 믿음, 사랑의 승리, 지혜, 귀족적 우아함을 상징한다.



걷다가 멀리서 찍은 그린델발트 성당


항상 기차로 이동했던 그린델발트 터미널에서 그린델발트까지를 오늘은 걸어보기로 했다. 기차로 그린델발트 터미널 역으로 이동해서 그린델발트의 숙소까지 천천히 걸었다. 그린델발트, 아니 스위스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으로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해요다,


그린델발트 터미널은 아래쪽에 위치해 있어서 살짝 오르막길이었지만 완만한 길이라 걷기에 편했다. 내일은 로잔으로 갈 예정이니, 오늘이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트래킹이었다.



언제 봐도 평화로움 그 자체, 나른한 카우벨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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