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의 메카 로잔

호수와 예술과 올림픽의 도시

by 아침엽서



로잔은 레만호연안 언덕에 위치한 작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로잔은 보(Vaud)의 주도이며, 언덕이 많은 지형 덕분에 호수와 알프스가 어우러진 전망이 특징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 본부가 위치해 있으며 활기찬 대학도시이자 역사적인 구시가지가 잘 보존된 곳이다.


그린델발트 역에서 인터라켄 동역에서 환승 베른에서 환승 후 로잔까지 약 3시간에 걸쳐 이동한 후 지하철을 탔다. 유럽인들의 체형이 커서 착시효과인지 실제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지하철보다 작아보였다.


로잔은 스위스에서 지하철이 운영되는 유일한 도시이다. 로잔은 호숫가부터 언덕 위 구시가지까지 지형적 고저차가 매우 심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하철이 만들어졌고 한다. M1과 M2, 두 개의 노선이 운영되고 있는데 파란색 M1은 로잔 중심가와 연방 공과 대학교, 로잔 대학교를 연결하여 주로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많이 이용한다. 분홍색 M2는 로잔 기차역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호숫가인 우시항구, 위로는 대 성당이 있는 구시가지를 연결한다. 특히 M2 노선은 12(120)%로, 전 세계 지하철 중 경사도가 가장 높은 노선 중 하나이며, 서울의 신분당선이나 의전부경전철처럼 운전사 없이 자동으로 운행되는 무인 시스템이다. 우린 M2를 타고 리퐁 모리스 베자르 역에서 내려 로잔 대성당으로 갔다.


로잔 대성당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에서 우리가 내린 리퐁 모리스 베자르 역, 모리스라는 이름이 익숙했는데, 현대무용가 모리스와의 인연이 깊은 역이었다. 로잔에서 활동했던 세계적인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의 이름을 따서 역명이 지어졌다고 한다. 20세기 현대 무용의 거장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안무가인 모리스는 프랑스 태생이지만, 자신의 무용단 베라르 발레 로잔을 이끌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로잔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로잔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현재도 베라르 발레 로잔 무용단은 로잔에 기반을 두고 전 세계를 무대로 공연하고 있다. 로잔은 모리스 덕분에 국제 올림픽 위원회뿐만 아니라 무용의 메카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


멀리서 봐도 벌써 아름답다


대성당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계단들이 이어져 있었다. 경사가 많은 도시답게 계단아래로 식당이 있고 테이블이 밖에 나와 있다.

로잔 대성당의 서쪽 정면에 위치한 주 출입구이다. 성당 측면에 위치한 사도들의 문(아래 사진)이 화려한 조각 중심의 문이라면 이 문은 성당의 얼굴 역할을 하는 웅장한 입구이다.


정형적인 고딕 양식인 위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첨두아치와 그 아치를 따라 겹겹이 층을 이룬 리세스 구조가 특징이다. 정면 하얀 석조 부분에는 성인들과 천사들이 촘촘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아치형 공간 역시 성경이야기를 새겼다. 주변의 짙은 회색빛 석조 외벽과 입구의 밝은 색 조각 부분이 선명하게 대비되어 보인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거친 질감의 벽면과 아주 세밀하게 깎아 만든 입구 장식이 조화를 이루어 장엄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사도들의 문


로잔 대성당 안에 있는 사도들의 문이다. 11225년에서 1235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중세 고딕 조각의 정수로 꼽히는 유적이다. 중세 시대에 성당 외벽 조각에 색을 입히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곳은 바로 그 채색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20세기 초에 복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채색된 문이라고도 불린다. 문 주위로 수많은 인물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성경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돌로 만든 성경의 역할을 하고 있다.


팀파툼(문 위쪽의 반원형 부분)은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 장면으로 마리아가 하늘로 올라가 왕관을 쓰는 장면을 중심으로 천사들과 성인들이 둘러싸고 있다. 문설주 조각(양옆의 인물상들) 문 양쪽 기둥에 서 있는 커다란 조각상들은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과 신약 성경의 사도들인데 이들은 성당으로 들어오는 신자들을 맞이하며 교회의 영적인 기둥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앙 기둥문 한가운데서 있는 조각상은 보통 성당의 수호성인을 모시는데 로잔 대성당의 경우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된 성당인 만큼 성모상을 볼 수 있다.


당시 글을 모르는 민중들은 성당 입구에 새겨진 이 정교한 조각들을 보며 성경의 이야기를 배우고 경외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 시대 예술가들의 놀라운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조각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지붕있는 계단이 에스카리에 뒤 마스셰라는 계단

대성당을 나와 에스카리에 뒤 마스셰라는 운치 있는 지붕 덮인 나무 계단을 통해 팔레 드 뤼민으로 갔다.


팔레 드 뤼민은 가브리엘 드 귀민이라는 러시아계 귀족의 유산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로잔에서 태어난 뤼민은 로잔을 무척 사랑했는데 1871년 세상을 떠나면서 공공을 위한 건물을 지어달라며 당시 거금인 150만 프랑을 기부했다.(현재 환율로 29억 1,024만 9,000원) 그의 숭고한 뜻을 살려 뤼민의 궁전이라는 뜻의 팔레 드 뤼민이라는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고고학 및 역사박물관, 동물학 박물관, 지질학 박물관, 화폐박물관등이 있고 칸톤 및 대학 도서관이 있다. (1980년대까지는 로잔 대학교 본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 1923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트루키에의 국경을 확정 지은 로잔 조약이 바로 이곳 팔레 드 뤼민에서 체결되었다.)

스위스어를 읽을 수 없으니 눈뜬 봉사이겠으나 도서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한 바퀴 돌고 나왔다. 안쪽에 열람실이 있어서 시민들이 책을 보거나 공부하고 있었다. 발소리 내기 미안해서 살짝 돌아나왔다.



왼쪽에 보이는 고가가 철로, 모리스 베자르 역

다시 모리스 베자르역에서 M2를 타고 로잔 기차역에서 환승한 후 우시(Ouchy) 항구의 몽트뢰로 갔다.


호숫가에는 아이스크림이나 기념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몽트뢰의 레만호숫가에는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동상이 있다고 해서 호숫가를 따라 걸었다. 한참 걷다 보니 1986년 웸블리 공연 당시의 역동적인 포스를 담은(한 손을 위로 높이 치켜든 모습) 전신 동상이 레만 호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병세가 깊어졌을 때 몽트뢰의 평온한 풍경에서 큰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생전에 몽트뢰를 사랑한 그는 ‘평화를 위한다면 몽트뢰로 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도 세계팬들이 가져다 놓은 꽃과 편지가 동상 발치에 가득 놓여있었다. 해마다 그의 생일인 9월 5일 즈음에 그를 추모하는 ‘프레디 셀러브레이션 데이즈’도 열린다고 한다. 며칠 전에 왔더라면 나도 함께 했을 수도 있었겠다. 몽트뢰에는 퀸이 앨범작업을 했던 공간과 마지막으로 가사를 썼던 종이, 마이크, 의상 등이 전시되어 있는 <퀸:더 스튜디오 이스이리언스>라는 체험 공간이 있다는데 우린 시간이 없어서 방문하지 못하고 시옹성으로 향했다.


너무 멋진 프레디 머큐리


버스 정류장 이름이 마르쉐다. 마르쉐는 스위스 말로 시장이라고 한다. 2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 마르쉐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내 입맛에도 딱 맞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서 우리 가족이 꽤 좋아했던 곳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하는 바람에 많이 아쉬웠던 마르쉐였는데..... 그 마르쉐가 생각이 났다.


주도답게 상가가 크고 사람도 많고 매우 번화하다



호숫가를 따라 45분가량 산책을 하며 시옹성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우린 버스를 타고 시옹성으로 갔다. 이거야말로 정말 그림책에 나오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옛 고성이었다. 사방에 바다로 둘러싸인 천연 요새로 내부도 개방이 되어서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었다. 스위스 패스로 무료 관람이 가능했는데 브로셔가 한국어 지원이 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역시 한국인들이 여행을 좋아하나 보다.


시옹성은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로대 로마 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이자 통행료를 징수하는 전략적 거점이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으나 12세기 사보이 시대에는 거주지로 사용되었고, 베른 시대에 감옥과 창고로 사용되었다. 시옹성은 영국의 시인 로드 바이런이 1816년 이곳을 방문하여 16세기 종교 개혁가이자 자유 투사였던 프랑수아 보니바르가 6년 동안 성 지하감옥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시옹의 죄수>라는 시를 서서 유명해졌다. 지금도 지하 감옥의 세 번째 기둥에는 바이런이 직접 새겼다고 전해지는 이름이 남아있다.


시옹성은 거대한 암반 위에 지어진 성 요새로 천연 바위 층을 살린 지하 감옥이 성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으로 현재 감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고, 포도주를 만들었던 창고도 볼 수 있었다. 성 전체가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창문들로 가득했고, 당시의 가구들 역시 전시되어 있어 옛 스위스인들이 생활양식과 예술 양식을 엿볼 수 있었다.


로잔과 몽트뢰와 시옹성을 보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딸이 ‘아무래도 내가 가방을 제네바로 보낸 것 같아....’라고 했다.


둘째 딸은 조심스럽게 아빠 가방이 제네바로 간 것 같아. 확인해 보고 제네바로 찾으러 가야 할 수도 있어. 아빠 힘들면 베른에 있어도 되고. 그럼 내가 제네바에 다녀올게라고 말했다. 가방을 보내면서 취리히라고 말했는데 왠지 찜찜해서 영수증을 받아 확인해 봐야지라고 해놓고는 그만 깜빡했다는 것이다.


사실 몇 일전에 제네바 가자고 했는데 남편이 너무 멀어서 싫다고 했었다. 그린델발트에서 제네바까지 5시간 남짓 걸리는데 그 시간에 차라리 트레킹을 하는게 낫다고 했던 말 때문에 딸아이는 제네바까지 가야하는 이 상황을 더욱 당황스러워했다.


나는 어차피 여행 왔는데 어디를 가면 어떠냐라며 딸을 위로하며 우리도 함께 제네바로 가자고 했는데 남편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가서 확인해 보고 제네바로 보냈으면 다시 취리히로 보내달라고 하자는 아빠와 이미 취리히로 보내기는 늦었으니 직접 가서 찾아와야 안심이 되겠다는 딸. 자신의 실수 때문에 스케줄이 꼬여버린 것이 마음에 걸린 둘째 딸은 자기가 혼자 다녀오겠다고 하고, 나는 같이 가겠다고 하고, 함께 간다고 하지 않는 아빠에게는 무척 미안해하는 상황이 되었다. 함께 간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딸의 마음이 가벼워질 텐데, 끝까지 그 말이 어려운 남편이 참으로 야속해서 그만 언성이 높아져버렸다. 그동안 조금씩 삐걱댄 것들이 그날 터져버린 것이다.


오는 내내 셋다 화난 얼굴로 말없이 기차를 타고 그린델발트에 왔다. 도착하자마자 확인했으나 가방은 제네바로 가 있었다. 내일은 루체른으로 갈 예정이었으므로, 새벽에 출발하여 제네바로 가서 가방을 찾자, 그리고 루체른으로 가자고 정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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