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의 여왕, 리기산

루체른에서의 마지막 밤

by 아침엽서



스위스 여행 중 현금은 숙소에서 도시세를 낼 때만 필요했다


스위스(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숙박할 때 도시세를 냈다. 도시세는 1명당 1박 기준으로 부과되는데, 숙소가 여행객을 대신해 지자체에 100% 전달해야 하는 세금으로 카드 결제 시 카드사에 수수료를 떼이게 되어, 집주인이 카드수수료 부분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현금으로만 받는다고 한다. 또한 도시세는 현지 법령에 따라 현장에서 징수해야 했다. 도시세를 내면 시내의 버스, 기차 등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거나 할인 혜택도 받는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려면 그 나라의 화폐로 환전을 했었는데 요즘은 환전하지 않아도 크게 불편함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트래블 카드 한 장으로 모든 결제가 가능했다. 현금이 필요할 때는 인출기에서 찾으면 되니 현금 들고 다니며 조심할 필요도 없고, 참 편리해졌다..


우린 며칠 전에 도시세도 미리 냈고, 전날 밤에 분리수거도 다 마쳤으므로 아침에 숙소를 나서며 약속된 장소에 열쇠를 가져다 놓으면 체크아웃 끝이었다.


꼭두새벽에 체크아웃을 하고, 주인을 잃고 미아가 된 가방을 찾으러 제네바로 향했다.



그린델발트여, 안녕!




빠르게 지나는 푸르른 언덕들과 붉은 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샬레들, 짙푸른 초원과 그라피티로 한껏 멋을 낸 다리와 벽들을 스치듯 창밖으로 보며 제네바로 갔다.


가방을 찾은 후에야 카페에 앉아 간단한 아침을 먹고, 다시 루체른으로 갔다. 원래 계획은 아침에 바로 루체른으로 와서 관광하는 거였는데….. 이미 한나절이 가버렸다.


스위스 중부에 위치한 루체른에 도착하자 도시 전체가 여행객들로 붐볐다. 우리가 갔던 스위스의 도시 중 가장 번잡했고, 축제라도 열리는지 커다란 노랫소리와 흥분이 섞인 열기로 도시가 와글와글 활기가 넘쳤다.

역에 가방을 맡기고, 웰컴 초콜릿을 준다는 쿠폰을 가지고 린트로 갔다. 젊은 애들은 이런 것도 어찌나 잘 이용하는지…. 역시 마케팅의 여왕은 쿠폰이다. 웰컴 초콜릿을 받고, 또 선물용 린트 초콜릿을 샀다.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는 린트 쵸코렛.



우린 리기산에 갈 계획이 없었는데, 며칠 전 융프라우요흐 가는 길에 일본인 아내와 호주인 남편인 여행객을 만났다. 일본인(아내)과 둘째 딸이 같은 온라인게임을 하고 있어서 둘이 화들짝 놀래며 게임이야기도 나누고, 아이템도 교환하고 하다가 그들이 최고라며 엄지 척을 하며 꼭 가보라고 추천해 준 곳이었다.


우린 루체른역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탔다. 루체른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물결을 따라 비츠나우로 갔다. 비츠나우에는 작은 기념품샵과 산악열차를 타는 아기자기한 역이 있었다.


1871년에 개통된 유럽 최초의 톱니바퀴 산악열차가 바로 이곳 비츠나우에서 정상까지 운행되었다. 비츠나우에서 리기 쿨롬행 산악열차로 갈아타고 산 중턱의 온천마을 리기 칼트바드에서 잠시 정차했다. 이곳은 마리오 보타라는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리기 칼트바트 미네랄워터 앤 스파가 있는데, 알프스의 설산들을 바라보며 노천당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손에 잡힐듯한 나무들 사이를 지나 가파른 언덕길로 30분가량을 올라가니 리기산 정상 기리 콜룸에 도착했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인 리기산에 도착했을 때 리기산은 해는 구름에 가려있었고 우뚝 솟은 산답게 바람이 엄청 불어대고 있었다.



‘산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리기산은 해발 1,797m의 산으로 알프스의 산 중에는 많이 높은 편이 아니었으나 어느 한 방향 막힌 구석이 없이, 사방이 탁 트인 파노라마뷰를 가지고 있었다. 리기 쿨룸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유람선을 타고 온 루체른 호수와 멀리 추크 호수, 바우에르츠 호수가 둘러싸고 있고, 크고 작은 13개의 호수와 독일의 블랙 포레스트, 프랑스의 보주 산맥까지 이어지는 압도적인 전망이 펼쳐진다. 19세기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는 “리기산에서 일출을 보지 않으면 스위스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라는 말이 돌 정도로 필수 여행 코스였다고 한다. 우뚝 솟은 정상답게 바람은 강하고 햇빛은 따뜻했다.


내려오는 길은 리기 쿨룸에서 아르트 골다우를 거쳐 루체른역으로 오는 경로를 선택했다. 숲으로 난 기찻길과 간이 기차역에서 정차하는 기차 역시 운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반려견 문화였다. SBB기차에서도 느꼈지만 우리나라는 반려견을 기차나 지하철에 태우고 다닐 때에 가방(?)에 넣어서 다녀야 한다. 사람이 너무 많아 위험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진로에 방해가 되기도 하고 커다란 반려견은 위화감도 준다.


그런데 스위스의 반려견들은 가방에 넣지 않고 기차를 탔는데 타자마자 의자 밑으로 쏙 들어가서 내릴 때까제 얌전히 앉아 있는 게 놀라웠다. 리기산에서 만난 커다란 개도 얌전히 기차에 올라 한쪽에 엎드려 조용히 있었다. 주인이 내리자고 할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기다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니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참으로 신기했다.

자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얼마 전 도서관 가는 길목의 공원에서 커다란 대형견 두 마리를 데리고 앉아 쉬는 집사를 만났었다. 지나가는 어르신을 보며 으르렁 거리는 대형견 때문에 산책에 방해받은 어르신의 언성이 높아졌지만, 반려견 집사는 길을 비켜 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왜 나에게 비키라고 하냐며 따졌던 일이 떠올랐다. 스위스의 경치 못지않게 그들의 반려견문화가 부러웠다.



다시 루체른역에 도착해서 사물관에 맡겨놓은 가방을 찾아 체크인을 했을 때는 이미 날은 저물었고, 우린 무척 지쳐있었다.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저녁도 먹을 겸, 가방만 놓고 부랴부랴 다시나 갔다.


로이스 강 위를 가로지르며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카펠교도 다시 보러 갔다. 다리 난간을 따라 붉은 제라늄 등으로 장식이 되어 화려함을 뽐낸다.


카펠교 내부모습

카펠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로, 1333년에 건립된 요새의 일부이다. 다리 북단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St. Peter's Chapel)의 이름을 따서 카펠(Chapel, 성당) 교로 불리게 되었다. 카펠교는 지붕이 비바람으로부터 다리의 본체인 내부 구조물을 보호해 주는 덕분에 14세기에 지어진 다리가 아직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붕에는 삼각형의 판화가 걸려있으며, 다리 중간에 34m의 팔각형 석조탑, 바서투름이 있다. 이것은 침입자를 감시하는 망루이자 귀중품을 보관하는 보물고, 심지어 감옥이나 고문실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실 카펠교는 1993년 8월 선착장에 세워둔 배에서 시작된 불씨로 화재가 나서 다리의 상당 부분과 천정 판화 일부가 소실되어 다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남대문 화재가 떠올랐다.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먹기 위해 로이스강가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바로 향했다. 맥주와 소시지, 치킨을 놓고 남편과 둘째 딸은 화해를 했다. 물론 일방적으로 둘째 딸이 손을 내밀었고, 남편은 화를 낸 적이 없다는 듯이 그저 받아들이는 정도였지만. 남편은 화를 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화를 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사과할 필요도 못 느끼는 것이다. 둘째 딸 혼자만 화도 내고 화해도 하고, 북 치고 장구치고 원맨쇼를 했다. 여행객들의 흥에 겨워 떠드는 소리와 건배소리들로 작은 바가 흥청거렸다. 검게 물들어 조용히 흐르는 로이스 강과 함께 스위스에서 마지막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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