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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a Oct 27. 2024

돌아온 마를린, 먼로

그리고 다시 돌아온 산책절

마를린과 먼로는 떠났지만 산책은 계속되었다. 

그들이 사라지고 몇 달 동안은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공원을 찾아갔다. 항상 허탕을 쳤다. 고양이들이 떠나서 그런지 고양이 집과 밥통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고양이 밥을 챙겨주시는 분들도 애들이 떠났다고 인식한 모양이었다. 먼지가 한 겹 쌓일 때마다 나는 맘 속에 품은 마를린과 먼로를 한 겹 벗겨내고 떠나보냈다.


우울증 치료는 순항이었고, 내게 맞는 약도 찾아내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하반기가 되면서 공고했던 산책 루틴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산책길로 나를 이끄는 산책 요정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고, 오래 나에게 타격을 줬다. 




1년은 금방 지났고, 다시 초봄이 되었다.

나는 계약직으로 겨울을 지내다가, 일이 끝나면서 다시 휴식기를 가지고 있었다. 산책 루틴은 이미 소멸된 뒤였다. 아침마다 '산책을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혼잣말을 했지만 몸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전 해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여전히 나는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누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산책절이 되었다.


1년 전, 처음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디딘 순간을 기억했다. 나는 1년 만에 또다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운동화를 동여매고 현관문을 나섰다.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공원 입구였다. 고양이들이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후로는 공원에 가지 않았다. 어차피 가도 나를 맞이해 줄 마를린과 먼로가 없으니까, 굳이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산책을 다시 시작한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공원을 지나칠 준비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다가 뭔가에 홀린 듯이, 다시 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이 날따라 공원을 꼭 들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천천한 걸음으로, 나는 공원에 들어섰다. 


공원은 그대로였다. 아직 초봄이라 잎사귀가 나지 않은 휑한 나무들도 그대로였고, 바닥에 잔뜩 쌓여 있는 낙엽의 갈색도 작년에 처음 공원을 갔을 때와 똑같았다. 단 한 가지 차이라면 작은 발로 바스락바스락 달려오는 고양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왠지 서글픈 마음에 울컥했다.


공원을 떠나려고 발길을 뗀 순간이었다. 낙엽 밭에서 유독 색이 다른 형체가 보였다. 눈을 찡그리고 형체가 있는 쪽을 좀 더 자세히 살폈다.




먼로였다! 먼로는 1년 전과 똑같은 표정으로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턱시도 고양이였다. 입가에 있는 왕점, 턱시도는 마를린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여유로운 얼굴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 순간은 꼭 기록해야 했다. 나는 황급히 폰을 켜고 사진을 여러 장 남겼다. 마를린은 살아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그런지, 작년과는 다르게 마를린이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기억을 못 하는 건가, 아니면 식빵 자세를 굳이 풀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한 1% 정도는 서운했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마를린이 살아 있고 1년을 잘 보내고 두 고양이가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잘 살아 있으면 다 되었다. 나는 돌아온 마를린과 먼로를 한참이나 더 바라보았다.




마를린과 먼로는 산책을 처음 시작할 때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집에만 있던 나를 바깥으로 이끌었다. 내가 혼자 산책을 할 힘이 생겼을 때쯤에는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나고 산책절이 되었을 때 다시 모습을 보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들이 산책의 요정들이라고 믿고 있다.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집에서 썩어가고 있던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나를 이끈 요정들. 하루하루의 버캣리스트를 채우며 삶의 소소한 행복을 되찾게 해 준 아이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닭가슴살을 가방에 주섬주섬 넣으며, 버캣리스트를 작성한다.


마지막 사진은 내가 부르자 내게 후다닥 달려오던 마를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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