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똑같은 아침이었다.
산책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은 시점이었다. 더 이상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7시가 되면 자동으로 눈이 떠졌고, 관성처럼 옷을 갈아입었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아침 공기가 쌀쌀에서 시원, 그리고 조금씩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변한 내 모습에서 희망을 느꼈다.
이날도 마를린은 수직 꼬리로 내게 다가왔고, 먼로도 같이 있었다. 먼로와는 여전히 어색한 사이였지만 그래도 여러 번 마주쳤다고 먼로의 성격이 조금은 파악되었다. 천방지축 마를린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나무를 타는 것을 좋아했고, 먼로는 그런 마를린은 지키는 언니같이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 뒤늦게 밝히지만 먼로도 여자애인 것 같다. 마를린과 먼로는 친구 사이거나 모녀 사이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마를린과 먼로의 성격이 투명하게 드러나서 아끼는 이 사진. 이 고양이들이 나를 배웅할 때 주로 보이는 모습이다. 이날도, 마를린은 한 발짝 앞에서, 먼로는 조금은 먼발치서 공원을 떠나는 나를 바라봤다.
평범한 하루였다.
이 사진이 먼로에게 최대한 가까이 갔을 때 찍은 모습이다. 우리는 그렇게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지켜보았다. 먼로가 그래도 사진 찍을 줄 알아서 꽃 옆에 앉아 있었나 보다.
마를린이 얼마나 나를 허물없이 대하는지 이 사진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날 꽤나 바쁜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아침에 산책을 마친 후, 여러 일정을 끝내고 녹초가 된 채로 집에 가는 중이었다. 밤이었다. 우리 집 단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 문득 도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로 바닥에 뭔가가 있었다.
그 뭔가가 무엇인지 확인한 나는 우뚝-걸음을 멈췄다.
고양이였다.
길을 건너다 변을 당했던 모양이다. 형체를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턱시도 무늬를 갖추고 있어서, 깜깜한 어둠 속에서 더 안 보였겠다 싶었다. 하필 그 무늬가 마를린과 너무 닮아 있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로드킬을 당해 엉망이 된 고양이 사체를 맨눈으로 보기엔 너무 무서웠다.
마를린이 아닐 거야.
마를린이 아닐 거야.
다른 고양이일 거야.
여긴 마를린의 영역과 거리도 있는걸.
오늘도 마를린 얼굴 보고 왔는데?
갖가지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퐁퐁 피어올랐다. 실은 멘붕 상태였다. 멘탈이 무너지자 여러 불안한 생각들이 터진 댐에서 물이 쏟아지듯 콸콸콸 쏟아졌다. 이 와중에 죽은 고양이가 마를린이 아니길 바라는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보였다. 한 생명이 로드킬을 당했는데 알고 지내던 고양이가 아니면 장땡인가? 나는 지금 얼마나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몇 분을 단지 입구에서 얼어붙어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다산콜에 연락하면 구청 직원들이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를 치우러 와준다. 나는 전화를 걸고 상담원에게 겨우겨우 상황을 설명했다. 길 한복판에 고양이 사체가 있어서 지나가는 차들이 그걸 피하려다가 사고 날 것 같다고, 처리를 부탁했다. 실은 죽은 고양이가 너무 안쓰러워서, 지나가는 차들 때문에 사체가 더 망가지지 않기를 원해서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충분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직원이 나를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라고 '오해'할까 봐 진심은 삼켰다. 사체를 처리한 후에 되도록이면 사진을 보내달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20분 정도 후에, 구청 직원들이 도착했다. 집에 들어와 있다가 그들이 왔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단지 입구로 나왔다. 그냥 왠지 현장을 지켜보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직원들은 신속하게 사체를 치우고 도로를 닦았다. 그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한때 고양이였던 것을 쓰레기 치우듯이 봉지에 툭 넣고 청소하는 모습이 조금은 충격이었다. 나는 굳이 현장으로 간 것을 후회했다. 부지런히 로드킬 현장을 치운 직원들은 약 10분 정도 지난 후 떠났다. 사진은 끝내 오지 않았다.
로드킬을 목격한 그날 이후로, 마를린과 먼로는 자취를 감췄다. 공원을 아무리 가도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봄이 여름이 되었다. 몇 달이 지나도록 그 둘은 산책길에 나타나지 않았다. 불안이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그때 본 그 아이는 마를린이었을 것이다. 친구는 고양이들이 영역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돌아오기도 한다고 위로했다. 그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마를린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마를린과 먼로를 만난 시간은 한 달 반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고, 더 오랜 시간 그들을 그리워했다. 여름이 가을로 바뀔 때쯤, 나는 마를린과 먼로가 먼 길을 떠났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짧은 만남은 저무르고 긴 이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