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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트 Dec 08. 2021

데미안

재독을 통해 얻은 것

데미안

오랜만에 데미안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곳에서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보이는 듯했다


기존의 관습이나 제도적인 규율과 억압에서 벗어나, 개인의 상대적인 것들과 격정, 신비, 자연, 불굴의 의지 등을 펼쳐내던 낭만주의 사조는 싱클레어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까지 인생의 방랑기를 풀어내는 여정 하나하나에 녹아있었다.


알을 깨고 나오는 것, 고통이 가득한 세계,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의 탈피에서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의지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했다.


이처럼 예전에 데미안을 보았을 때에는 그저 싱클레어의 세계관이 확장되어감만을 느꼈을 뿐이었던 것이 이번엔 위와 같이 좀 더 많은 것이 보였다.


새로 느낀 부분을 처음부터 다시 톺아보려 한다.


먼저 집안과 골목길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장면에서부터 예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이전엔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것을 말하는 정도로만 보았지만, 지금은 그뿐만 아니라 그 기준이 그저 관습적으로 학습된 것이며 스스로의 어떤 검증도 없이 그저 처음부터 있었기에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를 보며 타의에 의해 사회에 의해 규정된 기준을 따르는 수동성과 약간 니체의 도덕의 계보가 스쳐 지나갔다.


또한 카인에 대한 이야기에도 새로운 관점이 보였다. 아벨은 그저 유목민족의 방식대로 양을 치다가 관습대로 양을 제물로 바친다. 그야말로 수동성 그 자체이다. 스스로 어떠한 의문도 검증도 없이 해오던 것이고 그렇다고 전해지기에 그대로 따르는 수동성을 보인다.

카인은 어떠한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농사를 짓고 관습과 다르게 스스로 생각하여 제물을 올린다. 심지어 계율(그때까지 명문화되진 않았겠지만)을 어기고 살인을 하였으며, 이에 쫓겨나 영원히 방랑할 것이라는 말에도 이를 어기고 정착하여 도시를 만든다. 이는 능동성의 모습이다. 실패하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행동한다.

니체의 관점에선 카인은 자기 입법적 인간일 것이다.


그럼 데미안은 무엇일까? 이번에 느낀 것은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되고 싶은 이상적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덩치도 더 크고, 문제도 잘 해결해내며, 어른스러운 모습은 싱클레어가 되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지금의 자신, 즉 생의 의지 - 프란츠 크로머가 이를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에 대한 부정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상적 자기상이 아닐까 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는 문장은 단순히 정중지와 정도의 내용이라 생각했었다. 기존의 관념에 갇혀있는 사고를 확장시킨다는 개념이라 생각했었지만, 다시 읽어보니 이를 넘어서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듯했다.

알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것이지만 자신이 아닌 어미새가 만들어주는 것이다.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이지만 자신의 생각 없이 그저 물려받은 가치인 것이다. 동시에 세계의 경계선이다. 알의 안쪽이 선하다고, 안전하다고 하는 것이다. 알을 깬다는 것은 이전의 세계를 완전히 부수는 것이 아니다. 알의 껍질을 부수어내는 것은 세계 그 자체가 아닌 알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를 부수는 것이다. 기존의 관습, 주변의 사람들이 강제한 옳은 것 등 나의 주관과 사고, 능동성을 배제하고 주입된 것들로 인해 구분 짓던 경계를 허물어 버림으로써 세계를 통합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확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통합한 새는 아브락사스에게로 날아간다. 선악을 모두 지닌 신에게로 말이다. 이것은 통합된 세계에서 기존에 규정된 선과 악이 하나로 합쳐진 것을 뜻한다. 선과 악으로 나누어 규정되던 것이 통합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으로 표현된다. 신은 개인의 신념, 가치관을 뜻할 것이다. 통합된 세계에서 스스로 가치판단을 할 기준이 바로 아브락사스일 것이다. 이는 자유이자 능동성이고, 자기 입법적인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 에바 부인은 무엇일까? 에바 부인은 데미안의 어머니이다. 즉, 이상적 자기상의 어머니를 뜻하는 것이며, 이는 자신의 방향성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상적인 자기상이 그렇게 형상화된 원인이 바로 에바 부인으로 대표되는 싱클레어의 핵심가치이자 방향성일 것이다.

그렇기에 싱클레어는 에바부인을 사랑한다. 추구하는 방향성이자 핵심가치이기에 그곳을 향해 자신의 능동성을 최대한 발휘한다. 즉,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가치와 그 방향성을 찾아야만 그곳으로 향하기 위한 구체적인 모습이 명확해진다. 그 구체화된 모습이 데미안이다. 그렇기에 에바 부인은 데미안이 되고 데미안의 모습이 곧 싱클레어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음을 말함으로써 자신이 스스로 되고자 하는 모습이 되어감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번에 데미안을 새로 읽게 됨으로써 더 많은 것들을 얻게 되었다.

한 번씩 이전에 읽었던 것을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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