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리쓰는미리 Jan 26. 2021

4.세쌍둥이면 선택유산 하셔야죠

내 뱃속 하트비트


세쌍둥이라니, 상상해보지도 않은 일이다.

 

과연 내가 아이 셋을 다 품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의사가 '자연도태' 가능성을 언급하여 심란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쉬면서 입덧을 극복하는 일뿐이었는데 일을 쉴 수가 없었다. 죽음의 입덧을 견뎌내며 병원에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의사는 초음파를 보면서 아기집이 세 개인 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그런데 아기집 하나가 둘 보다 작으니, 자연도태될 가능성을 다시 언급했다. 그래서 나는 셋 다 건강한 것이 맞냐고, 심장소리는 잘 들리느냐 물었다.


"심장소리는 안 들려드려요. 세쌍둥이면 위험해서 선택유산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산모들한테 심장소리를 들려주면 아기를 못 지워요. 그래서 안 들려드립니다. 심장수술하셨죠? 세쌍둥이 힘듭니다. 선택유산 하셔야해요. 다음 주에 진료 한번 더 오시고 수술 날짜 잡읍시다. "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주수라서 일주일 내내 기대를 하고 갔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일단 심장소리를 듣지 못한 것 자체도 황당했고 산모가 결정하지 않은 선택유산을 강권하는 의사의 모습이 감정이라곤 전혀 없는 로봇 같아 보였다. 심장소리를 듣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초음파 사진도 주지 않는단다. 진료가 끝나고 간호사가 이것저것 설명을 하는데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양손을 아랫배에 대고 아이들을 꼭 지켜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병원에서 나와 거리를 걷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내가 원한 임신은 이런 게 아닌데 왜 나에게 이런 상황이 펼쳐지는지 과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생각했다. 당시 세쌍둥이를 임신한 엄마들이 모인 단톡방에 이 이야기를 하니, 선배맘이 집 근처에 있는 산부인과를 소개해주었다. 본인도 세쌍둥이를 가졌을 때, 거기서 진료를 보았는데 의사가 힘이 되는 응원의 말을 매번 해주어 용기를 내 세쌍둥이를 품을 수 있었다고 꼭 가보라고 했다. 그 길로 병원에 전화하여 예약을 잡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당일 예약이라 오랜 대기 끝에 의사를 만났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의사가 말했다.


"지금 이미리님 나이가 젊잖아요. 심장수술을 했었지만 건강하고요. 물론 세쌍둥이 임신과 출산이 어렵지요. 실패한 케이스들도 있고요. 하지만 실패하지 않는 케이스로 가면 돼요. 할 수 있어요. 건강하게 낳을 수 있습니다. 전 임신 유지를 권해드립니다."


여기에 덧붙여 아기집 3개가 모두 비슷한 크기로 자라고 있고 셋 다 건강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8주가 된 지금도 심장소리를 못 들었다고 하니, 바로 심장소리 먼저 들려주었다. 초음파실을 가득 채울 만큼 세명의 아가들의 심장소리는 우렁찼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길고 긴 초음파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뱃속에 있는 아가들 셋, 그 우렁찬 심장소리를 과연 지켜낼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3. 둘인가요? 아니 셋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