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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글렛 May 02. 2023

우리나라 게임 계에 도래한 명품 경쟁

돈 되는 게임 ‘리니지 라이크’의 범람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명품(Luxury Goods)의 사전적 의미는 상품적 가치와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은 고급 상품을 일컫는다. 본래 번역은 호화품·사치품이었다. 그러나 시장이 활성화 될 당시,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해서 명품으로 명명됐다고 전해진다.

파리 패션 위크

명품의 본래 번역을 보면, 지금의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하다. 명품이라고 해야 할지, 명작이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상품인지, 작품인지의 경계부터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작품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상품적 가치가 월등히 앞선다.


명품은 사치스럽고 화려함으로 시선을 유도하는 ‘과시’의 기능을 가진다. 몇 백, 몇 천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을 몸에 두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중의 부러움을 사며 신분상승의 기분을 누릴 수 있다. 리니지 라이크 속 ‘고래 유저(고과금 유저)’들이 받는 칭송과 지위도 그렇다.


패키지 게임은 주로 혼자서 플레이하고, 부분유료 게임은 함께 플레이한다. 함께하는 게임에서는, 내 캐릭터를 누군가가 보기 때문에(혹은 싸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쟁 구도가 설립된다. 경쟁의 우위에 선 유저는 수많은 유저들의 과시의 대상이 된다. 다중 접속 베이스(MMO)에선 과시를 통한 뽐내기, 그것을 시기하면서도 따라가기 위한 몸부림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리니지2M 신화클래스 라울

블리자드가 ‘디아블로 이모탈’을 공개하면서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던 게 떠오른다. 항간에선 “우리가 알던 블리자드는 X졌다”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의 블리자드는 작품을 만들었고 예술을 했다.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등 그들이 돈을 벌고자 했으면 충분히 벌 수 있었음에도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예술가’스러운 딴따라적인 면모가 있었다. 예술가는 대체로 가난하다. 성공한 예술가는 성공한 기업가만큼의 부를 얻지는 못한다. 대신 그 명성은 시대를 넘어 전해진다.


믿었던 블리자드의 변화는 게이머들로 하여금 배신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모든 유저가 블리자드를 비난하진 않았다. 블리자드가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켰음에도 업계 내 지위나 수익이 그에 미치지 못한 사정을 알고 있는 게이머들은, 블리자드가 이제라도 돈을 벌기 위한 포석을 깔아놓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도 했다. 다만 실망했을 .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

이 방면에서 대한민국은 가히 선두주자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부분유료 시스템을 탄생시킨 이 국가는, 오늘자 기준, 모바일 게임 매출 상위권에 올라있는 게임 중 절반이 리니지 라이크 게임이다. 대한민국의 극심한 경쟁 문화와 뿌리 깊은 자본주의 체제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리니지 라이크형 게임의 성공은 아주 자연스럽다. 비난 받아도 성공한다. 예술이 아닌 상업이기에 게임으로서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작품성이 아닌 매출을 노렸기 때문이다.


경제위기가 지속되자 유저 수도 감소했다. 게임업계는 불황이 왔다. 그러나 리니지 라이크의 매출은 개발비를 상회한다. 경제는 위기지만 불황은 상대적이다. 리니지 라이크를 차용하면 비난을 받을지언정 먹고 살만해진다. 웬만한 규모 있는 게임사들은 너도 나도 리니지 라이크 러시다. 불과 지난주에도 하나 더 출시됐다. (위메이드에서 리니지 라이크 신작 ' 나이트 크로우' 를 출시했다)


리니지 라이크 게임은 빠르게 양산되고 있고, 여러 방식으로 벤치마크가 이뤄지는 중이다. 예술 작품은 원본이 독보적 가치를 지니기에 유사품/복제품은 그 가치가 낮다. 그러나 상품은 더 맛있는 게 나오면 그걸 먹는 게 당연하다. 리니지가 만들어낸 게임계의 양상은 리니지 스스로를 갉아먹은 꼴이 됐다. 대체제가 넘치고 있다.

구글플레이 게임 매출 순위. 리니지 라이크 외의 게임도 맹독성 과금 유도는 마찬가지다.

돈 잘 버는 게임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재미의 영역은 소홀히 한 채, 경쟁의 영역만 심화되고 있는 현상이 걱정되는 것이다. 최고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은 어떤 게임을 켜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같은 방식을 쓰고, 같은 플레이를 한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양산형 게임들을 만드는 주체가 옆나라도 아닌 우리나라의 메이저 게임사들이란 사실이다.


리니지 라이크의 범람은 우리나라 게임제작 문화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저해하는 꼴이다. 국내 매출 순위권을 장식하고 있는 RPG가 모두 리니지 라이크다. 그들은 돈을 벌고 싶은 개발자들에게 우상이고 닮고 싶은 존재다. 선두에 있는 주자들이 모범을 보여야 판을 바꿀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인디게임·소규모 개발사와 대형게임사의 차이는 영영 좁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더 참신한 과금형 게임을 선보이는 인디 제작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업계의 주요한 방향성이 새롭고 참신한 게임을 선보이는 게 아닌, 누가누가 더 훌륭한 BM을 만드느냐가 된다면, 이 나라에서 ‘젤다의 전설’이 나올 일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과금의 전설’은 나올 수도 있겠다).

대략 20년 전, 우리나라 게임업계는 도전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양한 장르의 독특한 게임들이 출시되며 온라인 게임 시장에 한류를 일으켰다. 그때의 계기로 대한민국은 게임강국이 됐다. 그렇게 세계가 주목한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한국의 게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나라 게임업계가 각성하여,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게임의 본질을 떠올리며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로스트아크의 (전)총괄디렉터 금강선 개발자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당연한 한 마디로 게이머들을 감동시켰다. 본질의 가치를 아는 예술가가 관중을 매료시킨 것이다. 소수를 위한 명품이 아닌, 다수를 향한 작품이 게임업계를 보다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다.

작품성을 인정받은 게임에 수여하는 GOTY(Game Of The Year)는 명예의 상징이다. 우리나라 게임이 한 해 최다 GOTY를 받은 사례는 아직 없다. 과연 언젠가는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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