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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글렛 Apr 15. 2023

히키코모리는 길드에 적응하지 못해

교류와 관계에 관한 콤플렉스 그리고 게임

게임을 경력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신입이다. 어린 시절 온라인 게임의 태동기를 겪었고, 동시에 디지털 게임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았다. 그 흐름에 순순히 안착해 온갖 게임을 해왔음에도, 게임에 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어쩐지 자신이 없다. 내 게임 인생에는 아주 큰 한 가지가 결핍돼있다. 바로 ‘교류’다.


‘은둔형 외톨이’를 일컫는 ‘히키코모리(Hikikomori)’는 게이머에게 상당히 어울리는 호칭으로 통했다. 게임을 하기 위해선 주로 집에 있어야 하고, PC방이나 오락실에 가더라도 마주하는 주체가 ‘화면’이라는 점에서, ‘은둔’을 뺀 외톨이라 하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내 착각이었다. 히키코모리는 ‘장기간 집에 틀어박혀 사회와의 접촉을 기피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오랜 시간 집에 있더라도 꾸준히 사회와 접촉하는 사람이라면 히키코모리일 수 없다.

게임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게임, 특히 온라인 게임은 가상의 사회다. 유명한 밈 “게임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는 부모들이 듣기엔 속이 탈지언정 게이머들은 공감할 부분이다. 게임은 혼자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수많은 유저들과 교류하는 사회적 행위이기도 하다. 온라인 게임뿐만 아니라 싱글 플레이 기반 패키지 게임 또한 커뮤니티를 통해 유저간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사전적 의미의 ‘히키코모리’에 꽤나 부합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게임 안에서도, 바깥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게임을 할 때면 홀로 떠돌아다니거나 오로지 레벨 업에 집중했다. 파티퀘스트나 협동게임을 할 때도 조용히 따라다니거나 묵묵히 미션만 수행할 뿐, 불필요한 대화는 하지 않았다. 커뮤니티에 방문하는 것도 정보와 공략법을 찾기 위한 눈팅(보기만 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길드’ 활동도 해본 적이 없다. 내 게임 인생 중 가장 후회되는 부분은 전성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이하 와우)'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게이머로서 콤플렉스에 가깝다. 과거 지인들과 술자리가 있을 때면 빠지지 않는 주제가 와우와 ’레이드‘였다. 게이머들에게 와우는 단순한 게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같이 게임을 하며 친해진 동료들과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척이나 부러워서 뒤늦게 와우를 해보았으나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확장팩 <격전의 아제로스> 트레일러를 보고 감명 받아 시작했지만 요즘의 MMORPG와 다른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편의성이 다소 결여된(옛날에 비해 발전했다고 해도 많이 부족해보였다) 시스템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어렸을 땐 모험과 도전으로 다가왔을 부분이 이젠 짜증과 불편함이 됐다. 광활한 맵을 탈것도 없이 걸어 다니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관뒀다. 주변 와우저(와우를 하는 사람들)들도 이번 확장팩은 망했다며 ‘탈덕(좋아하기를 관둠)’을 선언했다. 게임도 결국 때가 있는 법이다.

집단이 함께 소통하며 미션을 수행하는 와우 레이드

내가 좋아하는 관심사를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다. 게임을 주제로 소통하고 싶어 동호회에 발들인 적도 있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마음과 의지만으로는 그들과 교류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덕력(덕후력)과 정보력에서 밀리면 마니아 집단에서는 소외된다. 마치 MMORPG에서 과금 피라미드 맨 아래층에 있는 유저와 같다. 필요하지만 영향력은 적은 존재.


그래서 진성 게이머와 대화할 때면 스스로를 입문자라 칭하고 있다. 한 평생 게임을 즐겼지만 덕후(열혈마니아)라 말하기는 민망하다. 게임 피지컬도 하찮다 보니 ‘애호가’나 단순히 ‘좋아한다’는 표현이 내겐 알맞다. 그래도 배움의 자체를 취하는 입문자는 어느 정도 환영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들과 같은 추억은 없지만, 끈기는 있는 편이라 지금이라도 본격적인 시작을 하겠다는 일종의 포부다.

"새로운 영웅은 언제나 환영이야"

그럼에도 ‘교제’라는 측면은 여전히 난항이다. 외동답게 혼자가 너무 익숙하다. 온라인 게임을 켜서 길드에 들어가거나 커뮤니티에서 글을 쓰는 행위는 어쩐지 어색하다. 잠시 사회적인 척(?)을 하다가 다시 혼자 하는 게임을 켜고 켠김에 왕까지 도전한다. 그마저도 왕을 본적은 별로 없다(피지컬이 문제다).


히키코모리를 정신병리학적으로는 ‘회피성 성격장애’라고 한다. 사회·집단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방안에 틀어박혀 폐쇄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위협에 대한 걱정과 피해를 줄까봐 불안해하는 망상이 동반된다. 히키코모리 증상의 발현은 후천적인 경우가 다분하다. 원인의 대부분은 교제 과정에서 받은 ‘상처’다. 원인모를 충격과 성격적 결함 등이 그들을 방 안에 가두고 문을 닫은 것이다.


나도 일이 없을 때면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게임을 하든 영화를 보든, 밥 먹고 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면 활동 반경이 2미터도 되지 않는다. 휴대폰은 스팸문자나 광고전화가 올 때를 제외하면 불이 밝혀질 때가 없다. 그럼에도 혹시나 어디선가 연락이 올까 싶어 충전은 100%를 유지해놓는다.


그런 의미에서 회피성 성격장애는 아닌 모양이다. 외로움을 잘도 느껴 모임이나 동호회를 기웃 거리기도 한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항상 실망하고 다시 혼자가 될 뿐이다. 게임은 인간관계에서 소외된 내 도피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에서마저 히키코모리적 현상이 반복된다는 게 우습다.

사회나 게임이나 관계는 참 어렵다

‘어차피 게임은 혼자 하는 거니까’라고 합리화를 거치며 플레이한다. 교류가 필요 없는 싱글 플레이 게임은 자기 방어기제와 마찬가지다. 피한다고 결핍이 사라지진 않는다. 게임에서의 교류와 협력은 그 게임의 정수를 경험하는 것과 같다. 핵심이 결핍된 내 게임 인생의 역사는 잔가지만 무성한 나무나 다름없다.


사회는 일원에게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라며 독촉한다. 특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평범하다는 건 내세울 게 없다는 것이고, 평범한 이야기는 그 누구도 매료시킬 수 없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평범함이 기구함보다 더 기구해 보인다. 히키코모리는 그런 평범함에도 소외된 존재처럼 보인다.


하여튼 ‘관계’란 놈은 지나치게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사회적 만남의 대부분은 ‘이익’과 특정한 ‘목적’이 수반된 형태에 지나지 않는 모습이 되어간다. 의도가 명확하니 순수하게 친밀해지기가 어렵다. 다른 사회인들도 반자의적으로 히키코모리가 돼가는 것 같다.


여담이지만, 최근 출시되는 애니를 보면 유독 ‘이세계물’이 많다. 옆 나라 일본도 상황은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글렀다는 표현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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