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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Jul 13. 2023

내겐 안락사 시킬 권리가 없었다.

강아지를 안락사시켰다.

 연을 끊어 내는 일이 어디 만만한 일이겠냐만은 막상 닥치고 보니 감당하기 버겁다.  강아지 쿤이와의 기나긴 여정이 끝나는 시점은 예견된 일이었지만  또한 급작스러움이었다. 언젠 간 헤어짐을 알지만 준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이런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어리석은 나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보호막을 스스로 접어두고 방치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무딘 돌로 끊어내는 짓이김을 견디는 것이었다.


아침에 안고 나간  쿤이를 어디에 두고 온 걸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그제야 내가 저지른 일을 깨닫고 통곡했다. 13년 동안 쿤이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현관 앞에서 나를 맞아 줬다. 매일 하는 행동이지만 늘 새로운 이벤트를 하듯 항상 격정적으로  반겨줬다.

   이 세상에 그 누가 나를 이렇게 반가워할까? 이렇게 사랑해 줄까? 이렇게 믿어줄까? 단언컨대 사람 중에는 없었다. 누구도 아무 대가 없이 날 사랑해 주지 않았지만 쿤이는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  통곡했다. 이름을 불렀다. 화답이 없다. 숨어있는 아이를 찾아내려는 듯 집안을 기웃거렸다. 베란다 화분옆에 쑤셔둔 아이의 배변패드가 마음을 무너뜨렸다. 나중에 보면 슬플까 봐 미리 치워둔 것이 고작 그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파왔다. 내 맘만 편하려고 아직 떠나지 않은 아이의 흔적을 지우려 수작을 부렸다. 그래봤자라는 듯이 곳곳에서 상실되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안방문을 열고 들어서다 꼬끼오 인형을 밟았다. 그런데  달려오는 아이가 없다. 꼬끼오 소리에 백번이면 백번 다 낚아채던 쿤이는 어디에 갔을까? 울면서 인형을 집어 드는데 침대 밑에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라진 양말 한 짝, 숨겨둔 양갈비 간식, 물어뜯겨 배가 터진 솜인형이 널브러져 있었다. 또 한 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엎드린 채 침대 밑만 바라보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번호키 누르는 소리는 들렸는데 인기척이 없었다. 현관으로 나가보니 딸아이가 신발장에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정말 쿤이가 죽은 게 맞나 보네! 나오질 않네!"라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난 아이들에게 슬픔에 대해 성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걸.

 "주인이 너무 슬퍼하면 천국에 못 간데. 걱정돼서......"라며 나 역시 지인에게 위로받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남편과 아들이 들어올 때마다 똑같은 위로를 해야만 했다. 쿤이에게 무덤덤했던 남편이 더 크게 통곡했다. 정말이지 쿤이는 13년 동안 진정한 우리 가족이었나 보다. 

하지만 사랑을 줄 때만 받을 수 있는 이기적인 사랑의 대상이어서 내가 심심해야  놀아주었고 충동적으로 스킨 십을 했다. 멀리 놀러 가도 되는지 묻지 않고 차에 실었다. 먼 여행에 아이가 멀미를 하는지 자리가 흔들려 불편한지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즐거우면 쿤이도 당연히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다. 드라마 보느라, 지인과 통화를 하느라 구석에서 나만 응시하는 쿤이를 무시했다. 그 기다림이 얼마나 된 것인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모든 걸 끝내고 놀아줘도 만족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랑을 가지고 갑질을 했다.





 13년 전 우리에게 온 쿤이는 지인의 시츄가 낳은 둘째 새끼였다. 젖을 떼자 내 손바닥에 얹어진 아이는 더도 덜도 말고 고만한 천사였다. 귀여움을 덕지덕지 꽂아놓은 것 같은 털뭉치 조각 같았다. 시츄중에서도  잘 생겨서 네이밍 센스가 별로인 난, 당시 인기있던 태국 아이돌의 이름을 그대로 도용했다. 그런 쿤이는 2개월 반짜리가 뭔가 모를 당당함과 유연함을 가지고 있었다. 현관 입구에 내려놓자 자기 집인 양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 낮잠을 잤다. 낯설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키우던 강아지인 양 익숙했고 순해서 예쁘고 짖지 않아 착한 아이였다.  시츄가 순종적이고 순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까지 젊잖을  몰랐다.

간식을 주면 침을 묻힐세라 끄트머리를 물어 조심스럽게 받아먹었다. 실내에서는 절대로 짖지 않아 옆집에서도 강아지를 키우는 줄 몰랐다고 할 정도였다. 정말 키우기가 너무 수월했다. 그리고 더욱 사랑스러운 건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예뻐할 때까지 눈동자를 맟주고 꼬리를 흔들어댔다. 아무리 설득해도 쓰다듬어야만 그 자리를 비켜섰다. 유일하게 고집을 부리는 부분이었다.








쿤이는 4년 전부터 심장병을 앓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고 진단을 받았다. 노견으로 들어서면서 생긴 병이고 치료는 심화되는 것을 늦출 뿐이지 치유의 개념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언젠가  남들보다 빨리 우리 아이 쿤이를 보내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약을 먹으면 잘 뛰어놀았기 때문에  슬금슬금 다가오는 이별의 시간 따위는 무시됐다. 병원을 갈수록 약의 농도는 강해졌지만 장기에 손상이 있을 걸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독한 약으로 인해 쿤이의 장기는 망가지고 있었던 거다. 어느 순간부터 약이 효과가 없어져 버렸다. 숨을 헐떡이며 밤새 잠을 자지 못하는 쿤이를 보는 건 고통스러웠다. 더 강한 약으로 처방을 받았다. 며칠은 약효가 있었다. 하지만 급기야는 그 어느 것도 먹으려 하지 않았고 소변도 보지 않았다. 폐에 물이 차서 배가 부풀어 올랐다. 병원에서는 쿤이가 고통스러울 거라고 했다. 


안락사를 생각했다. 안 그래도 잘 참는 쿤이가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건 아주 많이 아프다는 걸 의미했다. 의술이 발달해서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데 자연사를 기다리는 건 방관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안타깝고 헤어지기 싫어서 붙잡아 두는 건  너무 큰 고통을 준다고 생각했다. 

쿤과 나, 둘 모두 고통으로 밤을 하얗게 새운 날 아침 나는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날  작은 생명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아니 건네 보냈다.  숨이 멈춘 아이를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잠든 모습도 인형 같은 아이의 발에 빨간 실과  머리카락을 묶어주며 다시 만나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아이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안락사를 택한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과연 최선이었던 걸까? 아무리 아파도 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내게 그럴 권리가 있었던 걸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어려운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니었나?"라는  자책을 하고 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쳐다보던 쿤이의 눈빛이 떠올라서 고통스럽다. "쿤아, 그 눈빛은 살려달라는 신호였니? 내가 과연 너를 다시 만날 자격이 있기나 한 거니?"라며......


쿤이를 보낸 지 2주가 지났다. 밥을 먹고 직장으로 출근한다. 때론 웃으며 고객을 응대한다. 나는 어쩌면 쿤이가 없는 일상으로 적응해나가고 있는 것일까? 말하자면  생각하는 횟수는 줄어든 게 맞다. 하지만 허전함과 죄책감은 깊이를 더해가는 것 같다. 산책하는 강아지를 마주치면 고개를 돌린다. 그러다 '토토토' 하는 발소리에 나도 모르게 쿤이 같아서 웃으며 돌아보곤 한다. 

  너무나 보고 싶다. 후회스럽다. 단지 더 큰 책임감이 나를 움직이게 할 뿐이다. 그리고  확실한 건 나는 안락사시킬 권리가 없는 존재였다는 거다. 권리가 없는 권리를 행사한 대가는 죄책감과 후회였다. 단지 그 죄책감과 후회가 우리 쿤이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맞았으면 좋겠다는 것일 뿐, 결코 피하지 않고 싶은 감정이다. 안락사를 선택하기 전에 나는 분명히 이런 감정을 안고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마음 아픈 건 감수하리라고 결심하고 결정했다.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건방진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을 감수할 깜양이 못 되는 사람이었나 보다. 사진조차 바라보지 못하겠으니 말이다.





     

   이다음에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쿤이가 마중 나와 준다면 소원이 없겠다.

그리고 그 곳에서는 쿤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모진 원망을 쏟아붓고 돌아선다 해도 그렇게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다. 영원히 아프지 말고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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