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상 씨는 앞집 남자가 떠난 후부터 아침이면 킁킁거리는 게 습관이 됐다. 그래도 하루하루 냄새가 옅어져 가는 걸 느낀다. 누룽지를 끓여 김치도 없이 후루룩 넘겨버리고는 현관문을 나섰다.
그런데 고인의 집 앞 계단에 어떤 젊은 여자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김씨는 그녀에게 다가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고인의 딸이라고 했다. 여자는 고인의 숯 많은 눈썹과 순해 보이는 눈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아버지와 잘 아는 사이였는지, 김씨에게 물었다. 김씨는 밥을 먹는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지만 오고 가면서 이런저런 말을 나누던 사이였다고 했다. 그러자 여자는 울음을 터트리며 진작에 찾아보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버지를 어디에 모셨는지를 물었다. 김씨는 자신이 홀로 장례식에도 참석했노라고 말하고는 추모공원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유품은 현기가 일하고 있는 청소업체에서 보관하고 있다며, 자신의 차로 함께 가볼 것인지를 물었다. 여자는 흔쾌히 김 씨를 따라나섰다.
김씨는 손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손사장은 김씨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미 사람을 구했다는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씨는 고인의 딸이 유품을 찾으러 갈 터이니 지금 사무실에 있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손사장은 자신은 지방에 내려와 쓰레기집 청소를 하는 중이니 사무실 가까이에 사는 현기에게 사무실 문을 열어주라고 하겠다고 했다.
현기가 갑작스럽게 손사장의 연락을 받고 사무실 앞으로 나가니 이미 김씨와 고인의 딸이라는 여자가 도착해 있었다. 현기는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사무실 문을 열고 캐비닛에서 고인의 유품 상자를 꺼내줬다. 여자는 유품 상자를 열고 맨 위에 놓인 고인의 사진액자를 한참을 쳐다보다가 끌어안고 통곡했다.
"아빠, 아빠" 고인을 부르기만 하던 여자는 살면서 그 정도의 실수를 하는 게 무어 그리 대수라고 대역 죄인처럼 숨어 살았냐면서 눈물을 흘렸다. 가슴 벽을 훑고 나오는 듯한 쇳소리에 김 씨는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자신의 큰아들과 딸을 생각했다.
김씨도 고인처럼 사업에 실패하고 이혼을 했다. 사업에 실패한 자금을 만회하고자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돌려서 받아내고는 주식에 투자했다. 아내와 자식들은 필사적으로 김씨를 말렸었다.
"제발 아버지 전세금은 건드리지 마세요. 그리고 주식이라니요. 절대 안 돼요. 제발 부탁이에요." 당시에 대학교를 막 졸업한 딸내미는 무릎을 꿇어가면 만류했지만 김씨는 정말 수익을 볼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진행했다. 김씨는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라는 질병이 세상에 창궐하게 될 줄을 몰랐었다. 결국 김 씨는 가족의 뜻을 저 버리고 자멸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던 거다. 이혼을 하고 나서, 그래도 얼마 동안은 자식들이 연락을 해왔었다.
하지만 일용직을 전전하던 김씨의 수입은 일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끔 몇 만 원씩을 빌리곤 했는데 한 번도 갚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자식들 볼 면목이 없어진 김씨는 더 싼 방으로 옮기면서 스스로 가족들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김씨는 전씨의 딸을 보면서 어쩌면 자신의 자식들도 자신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했다. 그리고 남의 일 같지 않은 고인의 상황처럼, 자신이 이렇게 살다 가게 된다면 자신의 아들 딸 들도 저렇게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고.
집으로 돌아은 김 씨는 핸드폰을 들었다. 거의 일 년 반 만이었다. 사랑하는 딸이라고 검색하자 전화번호가 떴다. 김씨는 잠시 망설이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딸의 소리는 그동안 많이 성숙한 것처럼 들렸다.
"아빠다. 해주야." 그러자 "해주? 전화 잘못 거셨나 보네요."라며 전화를 툭 끊었다. 정말로 해주가 아니었다.
김씨는 딸이 전화번호를 바꾸면서 자신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를 추측했다. 하지만 오해일 수도 있으니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아들 해민 역시 전화번호를 바꾼 모양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번호라는 ARS 멘트만 반복될 뿐이다. 김 씨는 자신의 의지대로 혼자가 된 게 아니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의 피붙이들은 아버지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자신을 거두어줄 여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김씨는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생각에 불 꺼진 핸드폰 액정만 고요히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