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철을 그렇게 보내고 난 이후 현기는 사람들을 대면하는 직업을 가지기가 싫어졌다. 편의점 알바도 물류에서 하는 일도 너무 많은 사람들과 접촉해야 해서 피했다. 무엇보다도 현기는 사람들이 웃는 모습들이 싫었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무어 그리 좋은 일이라고 밝게 웃는 것인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밝고 따뜻한 것들에 거부감이 들게 만든 자신의 처지가 싫었던거다.
그래서 현기는 *투브에서 우연히 보게 됐던 특수청소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고독사한 고인의 집을 치우면서 희철의 방을 정리하며 들었던 마음을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철의 방안엔 한 사람의 일생이 이렇게 단조롭고 허무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무것도 없었다. 유품이라곤 핸드폰과 일기장, 나와 찍은 몇장의 사진이 전부였다. 현기는 희철의 유품을 간직 할 사람이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이 정말 슬펐다. 유품을 담은 박스는 300그램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걸 받아든 현기 속 깊이 무겁게 가라앉아 버렸다. 아무리 있는 힘껏 힘을 주어 건져내려해도 꿈쩍않는 현기의 마음으로 굳어버렸다.
- 희망이라는 건 내게 원래부터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난 이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가 잘못된 거였다. -
- 진짜 밑바닥에 있다. 설사 누군가 나를 구원해 준다고 해도 나는 이제 기쁠 것 같지 않다.-
- 정말 슬픈 건 , 나를 이렇게 만든 준환도 결국 잘 살지 못할 거라는 거다. 그 새끼도 언젠가는 나처럼 이렇게 고시원 바닥에 누워 복도바닥을 끄는 슬리퍼 소리나 듣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더 희망이 없다. 형제 같은 우리를 등쳐먹은 놈마저 희망이 없는데 하물며 우리 같이 나약한 놈들이 살아갈 희망은 더욱 없는 것이다.-
- 가끔 현기의 불굴의 의지가 부럽다가도 , 가엽게 느껴진다. 그래도 현기는 잘 됐으면 좋겠다. 꼭 성공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과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
현기는 희철을 챙기지 못했던 자신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희철의 마음을 헤아리고 감쌌더라면 희철이 이렇게 쓸쓸하게 세상을 저버리는 일도 없었을 거라고 후회하고 후회했다. 하지만 희철은 꿈 속에서 마저 나타나지 않았다. 꿈에라도 보인다면 현기는 희철이를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하염없이 미안하다고 할 것이다.
현기는 어느 날 희철이 예약해 놓았던 문자를 받게 된다. 희철은 자신 통장의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문자를 예약해 놓았다. 그리고 자신을 대신해서 잘 살아나가라는 부탁을 끝으로 현기에게 행복하라고 했다. 반드시 행복하라고 했다.
희철은 현기에게 225만 원을 남겨줬다. 희철은 거의 월급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다달이 나오는 30마원의 지원금으로 고시원의 월세를 내는 것도 부족했을 텐데, 도대체 무얼 먹으며 살고 있었단 말인지. 현기는 창틀에 매달려 있던 희철의 마른 몸이 생각나서 밤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부터 잘 살아보리라고 맹세했다. 희철이 남긴 숙제를 반드시 완수해낼 것이라고. 저렇게 빛나고 맑았던 청년의 죽음에 일말의 관심도 없는, 그들만의 세상을 향해 도전장을 낸 것이다. 현기는 세상과 맞짱을 뜨기 위해서는 일단 목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특수청소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현기에게는 시취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커다란 비닐 봉투에 한 사람의 고독한 인생을 쑤셔놓는 일을 반복하며 세상과 마주하는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