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아픈 것을 걱정하기보다 어떻게든 본인들 책임을 피하려고 했던 그들의 민낯을 본 이후에도 저는 정신을 못 차리고 그 당시에는 아팠던 기간만큼 더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아무리 죽을 만큼 아팠더라도 일단 회사에 나오면 그 사람은 회사 사람들에게 아픈 사람이 아니었는데 단지 배려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회식 가서 술을 덜 먹어도 된다는 정도? 물론 왜 술을 덜 먹어야 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긴 해야 했지만요.
그러던 중에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기로 했는데 그 사업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사람이 없다며 다른 부서에 있는 저에게 '네가 이 일을 하면 너의 성장에 커다란 도움이 될 거다', '주변의 기대가 크다' 등등 달콤한 말과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장기간 회사를 나오지 않아 다른 사람보다 성과가 모자란 부분을 고과에 넣어야 한다'와 같은 협박성 말까지 들어가며 어쩔 수 없이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맡은 일은 팀에서도 도와줄 사람도 없어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도 전 아직 완치가 안 돼서 약을 한 뭉텅이씩 먹으며 겨우 버티고 있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게 맡은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위에서 일을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판단하기에 회사에 이익이 되는 방향은 A라는 방향인데 위에 계신 분들은 회사에 도움이 안 되는, 오히려 손해가 날 수도 있는 B라는 방향으로 진행시키는 것이지요.
그래서 혹시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 있을 것 같아서 '마무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B방향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으십니까?'라고 물어보니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그때 ‘먼가 이상하다’라고 느꼈는데 결국 제가 아니다고 느낀 방향으로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면서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인수인계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반강제로 넘겨준 그 일이 잘 마무리되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제가 볼 때 정상적이지 않은 방향과 방법으로 일을 진행하다 결국 그 사업은 시작도 못 하고 끝나버리고 말았고 담당에서 밀려났지만 제가 맡은 일인데 일이 잘 못 되는 걸 보고 속도 많이 상했었습니다.
온갖 감언이설로 일 부려먹을 때는 언제고 내가 본인들이 일 시키기 귀찮아지고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자마자 바로 내쳐버리는 걸 보고 그때 아마 처음으로 회사에 배신감을 크게 느꼈고 내가 아팠을 때 사람에 대한 실망, 이번 일로 느낀 회사에 대한 배신감 등등으로 회사를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결심은 했는데 몸은 아직 회복이 안 되어 멍한 상태인 데다가 약 부작용으로 살이 10kg 이상 쪄버리는 바람에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입원 후유증으로 체력이 바닥이 되어 저녁만 되면 몸 가누기도 힘든 지경이었고요
그렇게 힘들게 여기저기 이직할만한 곳을 알아보고 다녔는데 아무래도 경력도 짧고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라 이직이 쉽지 않았고 그나마 서류가 통과한 곳들로부터 여러 번의 면접 탈락을 경험하면서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고 좌절도 많이 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한 6개월을 알아보고 다니다 한 군데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고 앞에서도 썼지만 이미 마음이 떠났기 때문에 크게 고민할 것도 없었지만 마침 금요일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지라 주말 동안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봤는데 여기는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월요일에 팀장에게 회사 그만두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팀장이 버럭 화를 내며 월요일부터 재수 없는 퇴사 얘기한다며 팀장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는 둥, 눈치가 없다는 둥, 생각이라는 걸 안 한다는 둥 별의별 희한한 얘기를 아주 배부르게 들어먹었죠.
아니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마당에 회사를 나가게 만든 사람한테 왜 퇴사까지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좋게 나가자 싶어 어렵게 어렵게 팀장 면담을 끝내고 인사팀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인사팀장님이 저를 좀 예뻐라 하셨던 분인데 딴 회사에 갈 바에야 계열사나 모회사로 파견을 간 다음에 아예 그 회사로 자리를 옮겨주겠다고 하시더군요.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고 귀담아듣지 않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주로 힘들었던 사람이 팀장을 포함한 몇 명이고 만약 그들을 피해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모회사라는 조직에 들어가면 여기보다 훨씬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사팀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모회사로 파견을 가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팀장이 결국 본인 싫어 내가 회사 나가려고 했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 다시 한번 난리를 쳐주는 걸 봐줘야만 했고요.
비록 그 팀장을 싫어하긴 했지만 그때 일이 그렇게 되어버린 부분은 지금도 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 당시는 정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는 못 버틸 거 같았습니다.
그렇게 모회사로 옮기고 나면 상황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이미 나에 대해 소문이 모회사 안에 쫙 나 있었고 천한 자회사 출신이면서 힘든 거 하나 못 참고 회사를 나가려다가 모회사 보내준다니까 남았다는 끈기도 없고 이기적인 놈으로 찍혀있더군요.
처음에는 이런 소문 때문에 적응하기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회사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 그런 소문들은 거의 없어졌는데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의 전후 사정을 제일 잘 알고 있는 같은 팀의 차장이 그런 소문을 내고 다녔고 나한테도 유난히도 그런 표시를 많이 냈었습니다.
그리고 파견직은 연말평가에 따라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은근히 본인 하기 싫은 일, 잘해봐야 본전인 일을 마치 경험을 쌓게 해 준다는 식으로 저에게 많이도 시켰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술이라도 같이 먹게 되면 본인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제 행동이나 태도를 가지고 ‘넌 그게 문제야’라고 일장 훈계를 하시는 분이라 참 힘들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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