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길고양이 밥을 준다. 변함없이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에 맘을 놓으면서 고양이 밥을 주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와서 아침의 일들을 한다.
약속이 있으면 조금은 빨리, 약속이 없으면 조금 한가한 마음으로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기운이 있으면 화장실을 청소한다. 바닥도 물걸레질을 한다. 이런저런 청소기를 써봤지만 역시 물걸레질은 바닥에 엎드려 구석구석 닦을 때 제일 깨끗하다. 무릎은 늘 아프지만 그래도 너무 아프면 그냥 물걸레 청소기를 돌린다. 나만 그럴까. 집안일은 해도 끝이 없고, 해도 티가 안 나고 안 하면 금방 엉망이 된다. 그런데다 우리 집엔 고양이가 있다.
나를 따라다니는 우리 집 고양이 미앙이는 터키쉬 앙고라 믹스이다, 보일러 실에 있던 아기를 데려와서 7년을 함께 살고 있다. 털을 뿜어대는 고양이라 아침, 저녁으로 청소를 하지 않으면 고양이 털이 뭉치처럼 날리고 모든 물건 위에 하얗게 내려앉기 때문에 게으른 나라도 청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라도 거르면 다음날 청소가 배는 힘들기 때문에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청소하면서 TV에서 나오는 소리가 귀를 기울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텔레비전 소리가 커졌나 보다.
마침 미얀마 시민들의 항거와 미얀마 군부, 중국의 입장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어서 청소하는 틈틈이 텔레비전을 보며 나만의 생각과 궁리를 하는 와중이었다. <지리의 힘>을 읽다가 궁금해서 찾아본 미얀마가 중국 바로 아래라는 것을 알고서 국제관계에서 지금의 미얀마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방송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얀마 군부는 실질적인 경제적 실권을 갖고 있다, 언론사도 갖고 있고 기업도 갖고 있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갑자기 암전하는 느낌, 텔레비전 소리가 뚝 끊겼다. 자고 있던 딸이 나와 TV를 끈 것이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보지도 않으면서 크게 틀어놨다고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닌가.
오늘은 산책하면서 만두 생각이 났다. 저번에 자기만 만두를 못 먹었다고 짜증을 냈으니 오늘은 만두 사다 먹자고 할까 궁리를 하면서 잘 달래 가며 이야기하고 사이좋게 지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딸애의 짜증 난 얼굴을 보니 나도 순간 혈압이 머리끝까지 솟아올랐다. 청소하는 와중에는 숨도 가쁘고 얼른 마쳐야지라는 생각으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기에.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딸은 말 한마디 없이 제 방에 누워 계속 자다가 12시가 넘어서야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한다. 자기 몸을 씻고 나가는 시간이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리고는 훌쩍 말도 없이 나가버렸다.
글을 쓰다 보니 새삼 정 없고 자기만 챙기는 딸애가 야속하고 서운하다. 이럴 때 미앙이는 둘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가 희한하게 좀 더 속상할 거 같은 사람 옆에 와서 눕는다. 둘 다 너무 화가 난 거 같으면 옷장 위로 올라간다. 미앙이 덕분에 화를 가라앉히고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감자를 넣고 호박을 넉넉히 넣은 수제비를 넣어 늦은 점심을 끓인다. 반죽이 쫄깃하게 된 수제비는 맛이 있다.
지갑에도 내 책상 위에도 딸애의 사진이 있다. 누군가가 딸애가 복이 있으니 딸애 사진을 갖고 있으면 좋을 거라는 말, 그때 그 말을 한 사람은 이제는 기억도 못할 말을 기억하는 나는, 딸애의 사진을 갖고 다닌다. 자기만 챙기는 거 같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자기는 확실히 챙기며 살고 있으니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다.
딸애의 말을 화내지 않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버릇없다고 엄마를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이야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빨간 머리 앤의 상상력은 나이가 들어서도 필요하다. 이럴 때는 어떤 상상이 나를 위로해줄까. 아침은 자느라 못 먹고 점심은 짜증 내느라 먹지 못하고 나간 딸을 생각하며 오늘 저녁도 혼자서 조용히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