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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Apr 24. 2024

<<19호실로 가다 >> 어른의 세계 - 도리스 레싱

오랫동안 숙제 같았던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를 읽었다. 이 책에는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옥상 위의 여자,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한 남자와 두 여자, 방, 영국 대 영국, 두 도공, 남자와 남자 사이, 목격자, 20년, 19호실로 가다, 이렇게 11개의 단편소설이 들어있다. 마지막에 있는 ‘19호실로 가다’를 읽기 위해 앞의 이야기들을 먼저 읽었다. 80대 후반의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도리스 레싱은 이후에도 소설을 썼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노벨상을 ‘잦은 인터뷰로 자신의 생활리듬을 다 깬 재앙’이라 표현했다는 일화가 재미있다. 이 책에 있는 소설은 60년대의 단편소설로 ‘성, 자유, 그리고 불안’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남녀 간의 사랑, 불륜, 배신, 외로움, 우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대리만족, 결혼했음에도 이성에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는 사람,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미안함에 남편을 다른 여자와 연결시키려는 아내, 아무렇지 않게 바람을 피우고 아내에게 말하는 남편.., 성에 대해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주인공들은 의외로 불안함을 느낀다. 누구에게나 성에 대한 자유는 있겠지만 작가는 불륜을 저지르는 순간 친구의 아기를 보고 마음을 돌리며 자제하는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스텔라를 ‘예의 바름(decency)’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덕목으로 그린다. (작품해설 341쪽)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과 ‘영국 대 영국’에서는 환상적인 내용이 등장한다. 비유 혹은 착란에서 나온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현실세계에서는 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작품 해설에서 도리스 레싱이 단순한 페미니즘적 작품을 쓴 사람이 아닌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라고 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동안 이렇게 많은 작품을 썼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녀가 쓴 다른 소설들에도 관심이 생긴다.


이 단편집의 제목이 ‘19호실로 가다’인 이유를 알겠다. 이 작품이 나에게도 가장 인상적이었다. 잘생긴 남편 매슈와 결혼하고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정원을 가진 대 저택에 사는 수잔 롤링스는 집안일을 돕는 파크스 부인이 있는 남부러울 것 없는 여인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만 키우느라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파크스 부인과 남은 그녀는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집안일과 눈치 보기로 괴로워한다. ‘엄마의 방’을 만들어 두고 조용히 쉬고 싶지만 결국은 또 다른 가족실이 된다. 어느 날 열차를 타고 패딩턴으로 가 작고 더러운 호텔로 들어간다. 그녀가 처음 묵은 19호실에서 이후 낮 시간 동안 일 년여를 지낸다. 남편에게 받은 돈으로.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온전한 자신이 됨을 느낀다. 비극적인 결말이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수전이 자신을 찾는 일을 조금 빨리 시작했다면 그렇게 멀리 가서 매일 혼자 있다 오는 일이나 극단적인 행동을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본문 ---


- 수전은 자신에게 엄격하게 말했다. “이건 모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처음에 나는 어른이 된 뒤 12년 동안 일을 하면서 나만의 인생을 살았어. 그리고 결혼했지. 처음 임신한 순간부터 나는, 말하자면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어. 아이들에게, 그 후 12년 동안 나는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 나만의 시간이 없었어. 그러니까 이제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해. 그뿐이야.” (290쪽)


- 수전은 시간의 압박으로부터, 잊지 말고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단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녀는 결코 무아의 경지에 빠질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분노가 그녀를 잠식했다. 그녀는 포로였다. (295쪽)


- 수전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앞으로 그런 고독한 시간을 더 자주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절대적인 고독, 아무도 그녀를 모르고 신경도 쓰지 않는 고독이 필요했다. (306쪽)


- 고독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하는 것이 쉬우면서도 어려워졌다. 너무 쉬워서 마치 자신이 어머니와 아내를 사칭하는 사기꾼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319쪽)


* 목소리 리뷰

https://youtu.be/aMLC4dJbMxk?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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